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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가야의 영역/두피디아]


 다섯가야

 '가락기(駕洛記)' 찬(贊)에 보면, 하늘에서 자주색 끈 한 가닥이 내려와 둥근 알 여섯 개를 내렸는데, 다섯 개는 각기 읍으로 돌아가고 하나가 이 성에 있게 되었다. 성에 남은 하나는 수로왕(首露王)이 되었고 다섯 개는 각기 다섯 가야의 군주가 되었으니, 금관(金官)을 다섯의 숫자에 넣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고려의 '사략(史略)'에는 금관까지 숫자에 넣고 창녕(昌寧)을 더 기록했으니 잘못된 것이다.


 다섯 가야는 아라가야(阿羅伽耶) 라(羅)를 야(耶)로 쓰기도 한다. 지금의 함안이다., 고령가야(古寧伽耶) 지금의 함녕이다., 대가야(大伽耶) 지금의 고령이다., 성산가야(星山伽耶) 지금의 경산으로 벽진이라고 한다., 소가야(小伽耶) 지금의 고성이다. 다.


[사진 가야금관/두피디아]


 또 고려의 '사략'에서 이렇게 말했다.

 "태조 천복(天福)' 5년 경자년(940년)에 다섯 가야의 이름을 고쳤는데, 첫째 금관(金官) 김해부(金海府)가 되었다., 둘째 고령(古寧) 가리현(加利縣)이 되었다.-일명 기성(岐城)이라고도 하며 지금의 상주다., 셋째 비화(非火) 지금의 창녕인데 아마 고령을 잘못 적은 것 같다. 며, 나머지 둘은 아라와 성산 앞의 주와 같이 성산은 벽진강라고도 한다. 이다."

[삼국유사,기이제1권/김원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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