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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남의 불행에 대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역시 자기가 행복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것은 예의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이다. 예의란 내부에 대한 외부의 반작용에 의하여 곧 느낄 수 있는 외관상의 행복이다. 그것은 불변의 하나의 법칙이지만 언제나 잊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의 바른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곧 보답을 받게 마련이다.


 유쾌감 속에는 좀 더 많은 주의력과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젊은이의 풍요함만으로는 당해 낼 수 없을 때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울하여 남의 기쁨을 조금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 폭군은 무엇보다도 큰 기쁨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패배를 당하고 정복되는 일이 흔히 있는 것이다. 모든 장식은 기쁨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의 동류인 인간은 우리에게 가장 즐거운 것밖에는 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예의는 생활의 지혜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이다.


 행복하게 된다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 대한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있는 힘을 다하여 싸운 연후가 아니면 결코 패배하였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아마도 가장 분명한 의무일 것이다. 특히 나에게 분명한 것은 행복해지려고 원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선 자기가 행복해지려고 원하고 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행복하다는 것이 타인에 대한 의무라는 사실은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다. 세상에서 행복한 살람 이외에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지당한 말이다.

[알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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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충북 괴산군 불정면 달천(달래강)/두산백과사전]



달래강(고개)전설
충주의 한 산골에 부모를 여의고 의좋게 살아가는 오누이가 있었다.
오누이는 산에서 생산한 여러 식물과 땔감 등을 장날에 내다팔아 살았다.
하루는 오누이가 장에 다녀오는데,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억수처럼 퍼부었다.
늘 건너다니넌 달래강에 물이 불어 건너기가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남동생이 누이를 등에 업고 달래강을 어렵게 건넜다.
그런데 비에 흠뻑 젖은 누이의 탐스런 몸을 보고 그만 동생이 잠깐 이상한 생각을 품게 되었다.
길을 가다가 정신을 차린 동생이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며 누이를 먼저 가라했다.
동생이 따라오지 않자 누이가 되돌아가 동생을 찾았다.
동생은 죄의식 때문에 바위 아래에서 돌로 자신의 음경을 내리쳐 자결하고 말았다.
그제야 모든 상황을 알아챈 누이가 죽은 동생을 안고 "죽기는 왜 죽어, 한번 말이나 해보지. 달래나 보지."하면서 울부짖었다고 한다.
이후로 그 강을 달래강(達川)이라고 한다.
[전설속 달래강(달천)은 충북 괴산읍과 충주시를 흐르는 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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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경주 오릉(五陵)/네이버지식백과]


 신라시조 혁거세왕의 죽음

 나라를 다스린지 61년 만에 왕이 하늘로 올라가더니 이레 후에야 유해가 흩어져서 땅 위로 떨어졌고 왕후 역시 작고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합해서 장사를 지내려고 하였더니 큰 뱀이 쫓아다니면서 금(禁)하므로 다섯 부분을 다 각각 장사 지내어 다섯 능으로 되었다. 또 사릉(蛇陵)이라고 부르니 담엄사 왕릉이 바로 그것이다.[삼국유사/권1 기이 신라시조 혁거세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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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서국 유적지/쿠키뉴스]


 이서국

 노례왕(努禮王) 14년에 이서국(伊西國) 사람이 금성(金城)을 침공해 왔다. 운문사(雲門寺)에 예부터 전해 오는 '제사납전기( 諸 寺納田 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관(貞觀) 6년 임진년(632년)에 이서군(伊西郡)의 금오촌(今郚村) 영미사(零味寺)에서 밭을 바쳤다."

 금오촌은 지금의 청도(淸道) 땅이므로 청도군은 옛날의 이서군이다.

 [삼국유사]


 (정관(貞觀):당나라 태종(太宗) 이세민의 연호로 627년에서 649년까지 사용했다.)


이서국 전설

때는 서기 297년. 신라 유례왕은 가야를 정벌하기 위해 길목에 있는 이서국을 공격했다. 이서국은 강하게 저항했다. 신라의 공격에 위기감을 느낀 이서국은 방어뿐 아니라 한 발 더 나아가 금성(지금의 경주)을 공격했다. 이서국의 공격이 워낙 드세 쉽사리 물리칠 수 없었다. 이때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군과 함께 이서국을 물리쳤다. 이 군사들을 대나무잎을 귀에 꽂았다고 해 '죽엽군(竹葉軍)'이라 했다. 이서국을 물리친 이후 대나무잎을 귀에 꽂은 군사들은 사라졌다. 다만 대나무잎만 신라 미추왕릉 앞에 쌓여 있었다. 미추왕의 음덕으로 신라가 이서국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다. 금성에서 이서국 군대를 물리친 신라는 이서국을 공격했다. 이서국과 신라는 이서산성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다. 절벽 위에 축조된 이서산성의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이서산성은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유례왕이 이서산성에서 멀지 않은 운문사로 군사를 철수시킨 뒤, 보양 스님께 어떻게 하면 이서산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보양 스님은 "개라는 짐승은 밤에는 잘 지키지만 낮은 지키지 못하고, 앞은 지켜도 뒤는 꺼려 한다. 낮에 북쪽을 공격하라"고 했다. 이서산성이 있는 산의 모습이 달리는 개의 형상을 하고 있는 것을 염두에 둔 말이다. 유례왕이 보양 스님의 말대로 했더니 이서산성은 함락됐다. 신라에 패한 이서국의 왕과 왕족들은 이서산성에서 빠져나와 화양읍 동천리 신둔사 뒷산의 봉우리로 숨었다. 왕과 왕족들이 숨었다고 해, 봉우리 이름이 '은왕봉(隱王峰)'이다. 화양읍 서상리에는 '금장들'이라는 들이 있다. 이서국 왕과 왕족들이 이서산성을 나와 피신하면서, 이서국의 수많은 금은보화를 옮기지 못해 이곳에 묻었다고 한다. 그래서 금장들이라고 한다.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나즈막한 산이 하나 있다. 농촌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동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진입로 한켠에 '이서국 성지'라고 적혀 있는 비석이 하나 있다는 것이다. 비석의 옆면에는 '신라 유례왕 7년(서기 297년) 금성을 공략하다가 반격을 받아 폐성 함락으로 멸망하였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이곳이 이서국의 왕성(王城)인 백곡토성이 있었던 곳이다. 흙으로 만든 성이기에 지금은 성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백곡토성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비석에 적혀있는 폐성(吠城)이 있다. 주구산성(走拘山城)이라고도 한다. 산성이 있는 산의 모습이 달리는 개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서산성으로 부른다. 이서산성이 신라의 공격을 받아 함락되면서 이서국은 멸망했다.[출처:쿠키뉴스/기사원문: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143&aid=0000058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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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생활문화-수저

 식사도구로 유렵에서는 실버웨어(silverware)라 일컫는 나이프, 스푼, 포트를 사용하고, 아시아에서는 젓가락을 사용하며, 나머지는 맨손을 사용하는데, 이 세 부류가 거의 비슷한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젓가락을 사용하는 문화권 안에 있으면서도 특이하게 숟가락을 함께 사용한다.

 

[사진 조선시대 백동, 청동 수저/온양민속박물관/한국학중앙연구원]

 

 젓가락은 편리한 도구이기는 하지만 사용하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숙련이 필요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숟가락보다 뒤에 고안되어 함께 사용되었다. 중국의 경우 전국시대에 이미 젓가락이 사용되었고, 한대(漢代) 마왕퇴(馬王堆)의 고분에서 수저가 함께 출토되었으며, 일본에서도 나라, 헤이안시대에 수저가 함께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령왕릉에서 독특한 모양의 숟가락과 젓가락이 함께 발굴되었다.

 

[사진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수저/국립공주박물관/한국학중앙연구원]

 

 그러나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13,14세기쯤에 이르러서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숟가락이 사용되지 않고 젓가락만이 사용되었다. 숟가락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특별한 용도로 쓰일 뿐 식사 때 항상 사용되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래서 중국, 일본, 조선의 사신들이 숟가락을 쓰고 안 쓰는 것을 서로 신기해 한 기록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도 숟가락과 젓가락을 함께 사용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도 숟가락을 쓰고 있는 것은 우리 상차림의 특성 때문이다. 우리의 상차림에는 항상 국이 따른다. 중국이나 일본에도 국이 있지만 우리의 국과는 내용이 달랐다. 예전 중국의 국은 채소를 삶아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져 먹는 국이었고, 일본의 미소시루는 손으로 그릇을 들고 마시는 국이다. 그러나 우리의 국은 매우 다양하고, 그 가운데는 여러 가지 건더기가 들어 있어 건더기와 함께 떠 먹는 것이 많다. 미역국, 된장국 등 대개의 국이 그러하다. 또, 우리의 것은 뜨거운 국이 많아 국그릇을 들고 국물을 마실 수가 없다. 먼저 숟가락에 떠서 식히는 과정을 거쳐 조금씩 먹어야 했던 것이다.

 또, 우리나라는 밥을 국에 말아 먹고 물에 말아 먹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국밥이 있는데, 국과 밥이 따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밥이 국에 말아져 나온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보이듯이, 이런 국밥을 먹으려면 반드시 숟가락이 필요했다.

 결국 언제나 상차림에 빠지지 않는 국이 있고, 또 그 국이 대개 뜨거웠기 때문에 숟가락을 지금까지 쓰고 있는 것이다.

[전통사회와 생활문화/이해준,송찬섭,전경목,정연식,정승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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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훈은 무엇이고, 왜 만드는 것일까?

 가훈(家訓)이란 집안어른이 자녀 또는 후손들에게 주는 가르침, 교훈을 일컫는다. 가훈은 집안을 어떻게 경영해야 다음 세대에서도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정체였고, '가정교육의 텍스트'였다. 전통사회에서 가정은 사회생활의 기본으로, 가훈을 통한 가정교육을 가문 전통의 유지, 존속, 명예를 담보할 중요한 구실을 삼았다. 가훈은 대체로 수신제가(修身 齊家), 즉 처세와 때로는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치인(治人)의 도리를 중심으로 생활문화 전반에 걸친 규범과 지침들을 간단명료하게 조목으로 나열, 정리한 것이 일반적이다.

 가훈서는 각 집안의 환경과 배경, 사회적 지위와 고유한 경험의 토대 위에서 실제적인 삶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내용과 형식, 작성형태 등에서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며, 특히 가훈을 편찬한 인물의 평생 경험과 사고를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가훈이 없는 집안이 거의 없을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었고, 이름있는 가문들은 가문의 전통으로 선조의 유훈(遺訓)과 가훈을 특화, 전승하였다. 예컨대 기록으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김유신(金 庾信) 집안의 '충효', 최영(崔瑩) 집안의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신의,지조,청백,성실,우애', 김굉필(金宏弼)의 '인륜(人倫)', 이언적(李彦迪)의 '근검과 절약', 이이(李珥)'의 '화목과 우애' 등은 오랫동안 그들 집안의 생활신조이다.

 이렇게 가훈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구전으로 대대로 전해지는 것이 많고, 오늘날의 가훈처럼 간단한 명구로 작성된 것도 있다.

 

[사진 풍천노씨가학십도-도식으로된 풍천노씨의 가훈/네이버]


 가훈의 종류와 형태

 가훈은 여러 명칭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가정의 규범이라는 의미로 정훈(庭 訓), 가범( 家範), 가규(家規), 가헌(家憲), 가의(家儀), 가학(家學), 가법(家法)이라고도 불리며, 자손에게 내리는 교훈, 계시라는 뜻에서 유훈(遺訓), 유서(遺書), 유명(遺命), 가계(家戒), 유계(戒), 훈자(訓子), 계자서(書) 등으로 불린다.

 대상은 아들, 딸, 손자 등으로 구체적인 대상을 명시한 경우도 있고, 대상을 명시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역시 가훈이라면 협의의 대상범위는 자녀와 친족(당내지친)이었고, 전승되는 과정에서 모든 후손이 규범으로 삼는 교육서로 활용되기도 한다.

 가훈서의 가장 원형적인 모습은 서간(書簡), 문답(問答), 유훈(遺訓) 등의 형식이며, 17세기 이후가 되면 의도적인 목적을 가지고 체계를 갖추어 편찬된 가훈들이 나타난다. 서간은 부모가 생전에 자손들에게 준 일상생활의 가르침이나 언행에 대한 훈계를 사후에 기록하여 가훈서로 삼은 경우이다. 문답은 각 가정에서 학문, 독서의 중요성, 독서방법, 인물관 등에 대한 문답을 엮어 가훈으로 전해 준 경우이고, 유훈은 성현의 격언을 기초로 유언, 유서로 남긴 것이 가훈이 된 경우이다.

 잡저(저술)로 편찬된 것으로는 필사본으로 전해지는 경우와 문집에 수록된 경우가 역시 가장 일반적이다. 현재 기록상으로 확인되는 가훈은 70여 종이 넘지만, 이 중 필사본은 10여 종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저자의 문집이나 족보 등에 수록된 것들이다. 이와 달리 별도의 저술로 간행되어 널리 보급된 '분봉가훈(盆峯訓)'(연안이씨, 1706), '수졸재가훈(守拙齋訓)'(진주강씨, 1789), '우곡선생훈자격언(愚谷先生子格訓)'(진주강씨, 1724), '풍천노씨가학십도(豊川盧氏 學十圖)'(1847) 등도 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훈자첩(訓子帖), 제영( 題 詠), 도상(圖像) 등으로 남겨진 경우도 있다.

 이런 가훈의 내용은 개인적 덕목인 수신에서부터 가정생활인 제가, 그리고 사회생활인 처세, 거향, 관리 생활 전반에 두루 미치고 있다. 조선시대 가훈서의 내용을 보면 5~6개조에서 30여 개 조목에 이르는 다양함을 보여 주는데, 이들 내용을 요소별로 분석한 연구(정무곤, 조선시대 가훈서의 교육학적 해석, 2006)에 의하면 평균적으로 15개조 내외가 가장 많고, 공통적으로 포함된 조목을 보면 '봉선, 제사, 목친, 독서, 의복, 언행, 우애, 부부, 교자, 어목, 치산, 농상, 거향, 접인, 교우, 거관' 등으로, 크게 보아 몸가짐(修身), 집안일( 齊家), 바깥( 處世)로 나누어 볼 수 있다고 한다.

 수신의 항목으로는 성의, 정심, 독서, 언행 등의 항목에 집중되어 있으며, 다음 집안일(齊家)에 관련한 조목으로는 부모 섬기기와 조상제사를 비롯하여 효우, 노비 다스리기, 가정경제 운용의 항목이 주류를 이룬다. 다음으로는 사회활동(處世)과 관련한 항목인데, 종족 간의 돈목을 시작으로 거향, 접인, 교유, 거관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출처:전통사회와생활문화/이해준,정승모,정연식,전경목,송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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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쿠쿠전자 정수기 전국렌탈센터, 쿠쿠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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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방법(2)

 

 점진적 근육이완

 제이콥슨(Jacobsom)이 제안한 점진적 근육이완은 스트레스가 심하고 불안하면 근육이 긴장된다는 전제하에 근육을 이완시켜 긴장을 풀어주는 기법이다. 점진적 이완은 신체를 교감신경계 각성상태에서 부교감신경계의 회복상태로 바꿔 맥박, 호흡, 혈압, 땀, 그 밖의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 징후들을 감소시킨다. 이 기법은 긴장성 두통, 불면증, 요통, 근육경련, 피로, 과민성 대장, 불안, 우울, 가벼운 공포증 등이 있는 대상자에게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만성적으로 긴장되는 근육이 어디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점진적 이완은 주로 긴장되는 특정근육을 알아낼 수도 있고, 의도적인 근육긴장과 의식적인 이완을 통해 긴장과 깊은 이완의 느낌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각 근육을 5~7초 정도 긴장시켰다가 20~30초 정도 이완한다. 이완의 순서는 손,전박,이두박근 ➔ 머리,안면,인후,어깨 ➔ 가슴,복부,허리 ➔ 대퇴부,둔부,장딴지,발이다.

 근육이완 전 다섯 번 심호흡을 하고, 오른손, 전박, 이두박근, 왼손, 전박, 이두박근 순으로 긴장과 이완을 반복한다. 시중에 판매되는 근육이완 오디오CD를 구입하여 사용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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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방법(1)

 

 심호흡

 차분하고 깊게 호흡하면 혈액의 정화와 산소공급에 효과가 있는데, 혈액 내 산소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피로와 무기력, 불안, 근육긴장, 정신적 혼란, 우을 등의 증상이 완화 및 예방될 수 있다.

 심호흡은 짧은 시간 내에 익힐 수 있고 즉각적인 효과도 경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진정한 효과는 몇 주 내지는 몇 달간 꾸준히 거듭되면 저절로 되기도 한다.

 일어서기도 하고 앉거나 바닥에 눕기도 하는데, 가장 좋은 자세는 바닥에 눕는 것이다. 등을 곧 펴고 무릎은 굽힌 채 발가락은 약간 바깥을 향하게 하고 약 20cm 가량 벌린다.

 몸의 긴장을 풀고 한 손은 배 위에, 다른 한 손은 가슴에 올린다. 코로 천천히 그리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어 배로 넣는다. 가슴은 조금 움직이고 배를 주로 움직이도록 한다. 후 하고 바람을 불면서 입으로 숨을 내뿜는다. 이때에 주의할 점은 얼굴, 입, 턱이 긴장하지 않도록 한다. 반복하면서 점점 이완되어 감에 따 호흡소리와 느낌에 집중한다. 하루에 두 번 정도, 한번에 10분간 지속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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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네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였거든 까닭없이 더불어 다투지 말며,

포학한 자를 부러워하지 말며 그 아무 행위든지 좇지 말라

[잠언3: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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