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김홍도 풍속화/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먹는 일은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먹을 것을 유달리 중시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이라는 속담뿐 아니라 대표적인 예로 진달래꽃을 참꽃, 철쭉꽃을 개꽃이라고 부르는 것인데, 철쭉꽃이 진달래꽃보다 아름다워도 먹지 못하는 철쭉꽃은 '개꽃', 먹을 수 있는 진달래꽃은 '참꽃'이라고 불렀다. 꽃 자체의 아름다움의 기준이 아니라 먹을 수 있는가와 없는가가 중요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루의 시각을 밥 먹을 때로 구분했는데, 그래서 저녁밥을 먹는다고 하지 않고 통상 '저녁'을 먹는다고 말한다. 또 인사말로 '밥 먹었느냐'는 말을 한다. 사람들은 우리가 예전에 너무 가난하고 굶주리고 살았기 때문에 이런 인사말이 생겼다고 오해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영어에서 '굿 모닝', '굿 이브닝'이라는 말을 우리는 "아침밥 먹었습니까?", "저녁밥 먹었습니까?"로 인사했던 것이다. 시간을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밥 먹는 때로 생각했던 관습이 매우 오래 된 것이라는 것은 '끼'라는 말에서도 그대로 보인다. '끼'와 '때'는 본래 같은 말이었다. 16세기 중종 때 편찬된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는 '時'를 'ㅂㅅ기니 시'라 풀이했다. 요즘도 노인들은 '세 끼 밥'이라 하지 않고 '세 때 밥'이라는 표현을 쓴다. 어원으로 살펴보더라도 '끼'는 '때'와 함께 하나의 낱말에서 갈라져 나온 말이다. 또 우리는 뭐든지 먹는다고 표현했다. 여러가지 다양한 의미의 말들이 먹는다는 말 한마디로 표현된다. 영어에서는 물이나 술을 마시는 것을 'drink' 담배 피우는 것을 'smoke'로 표현하지만 우리말에서는 모두 먹는다고 표현할 수 있다. 마음도 먹고, 욕도 먹고, 나이도 먹고, 귀도 먹고, 겁도 먹고, 잊어먹고, 떼어먹고 등의 표현이 보여 주듯 우리의 오래된 언어생활에도 먹는 것을 중요시 했다는 것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또 우리는 예전부터 다른 민족에 비해 많이 먹었다. 성인 남자는 한 끼에 420cc의 곡물을 먹었는데, 이는 지금의 식사량에 비하면 3배에 이르는 것으로, 일본인은 물론 중국인에 비해서도 꽤 많은 양을 먹었다. 끼니는 예전에는 '조석(朝夕)끼니'라는 말 처럼 한 두 끼를 먹었으며, 해가 긴 여름철이나 힘든 일을 할 때에는 간단한 점심(點心)을 포함하여 세 끼를 먹기도 했다. 예전에는 어린이도 180cc를 먹어 지금의 어른 보다도 더 많이 먹었던 셈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이 먹었을까? 그 원인은 아직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가난해서 그랬다는 지적은 분명 사실이 아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전에 너무나 어렵게 살아서 먹을 것이 생기면 정신없이 허겁지겁 많이 먹는 습성이 있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예전의 가난이나 기근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농업생산력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 이전에는 중국, 일본, 서양 어디나 흉년, 기근이 들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심지어는 영아 살해 등의 풍습이 횡행했다. 우리민족이 많이 먹었다는 것은 늘 많이 먹었다는 것이지 어쩌다가 한 번 먹을 것이 생겼을 때 닥치는 대로 많이 먹었다는 말이 아니다. 가난하면 늘 많이 먹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주식은 쌀이었다. 조선시대에 쌀이 가장 많이 생산되었으므로 쌀을 주식으로 삼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 수출, 공출 등으로 쌀을 먹을 수 없게 되었으며,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 남한 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쌀의 완만한 증산, 보리의 급격한 증산이 식생활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쌀은 칼로리가 높고, 고른 영양소를 갖추고 있는 우수한 식품이다. 또, 벼는 파종량에 비해 수확량이 많고, 벼농사는 토지 이용도가 높아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훌륭한 곡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부식인 김치는 무, 오이, 가지 등으로 만들었는데, 18세기부터 고춧가루가 양념으로 쓰여 지금처럼 빨간 김치가 생겨났으며, 19세기에는 배추가 주재료로 부상했다.

 식사도구로는 밥상과 수저를 들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작은 소반을 써서 식사를 했고 성인은 각자 따로 상을 받아 먹었다. 집 구조가 조리를 하는 부엌과 밥을 먹는 방으로 분리되어 있고, 부엌에서 방에 이르는 동선이 복잡하여 소반을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중국이나 일본이 13, 14세기부터는 젓가락만으로 밥을 먹었던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금까지도 젓가락과 함께 숟가락을 써서 식사를 하고 있다. 이는 우리 상차림에는 항상 국이 있었는데, 그 국이 건더기가 많고 뜨거웠기 때문에 숟가락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통사회와생활문화/이해준 송찬섭 전경목 정연식 정승모]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