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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의 역사





조선시대 향시(鄕市)는 15세기 말부터 삼남지방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한다. 기록상으로는 성종 1년(1470년)의 흉년으로 전라도의 농민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듬해부터 서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들고 나와 장을 열었는데, 이것을 장문(場門)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때까지도 지방은 성읍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하여 살던 때여서 성 외곽에 정기적인 장이 설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였던 것 같다. 또 장이 있었다고 해도 5일 간격으로 1일 행정(行程), 즉 하루 왕복거리인 30~40리마다 교통요충지에 장이 들어서게 된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의 현상이다. 즉 임진왜란 전후인 선조 때에 이르러 미약하나마 5일 간격으로 각 지역이 연결되는 시장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장시의 개설은 더욱 진전되어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이르게 되면 국토 전역으로 확대된다. 이것은 그동안의 주거기 확산과 수공업의 활성화, 대동법 시행, 그리고 이에 따른 상품화페경제의 발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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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통 시장의 분류(종류)와 의미






[김홍도 <장터길> 보물 527호]


 조선시대에는 시장보다는 장시(場市) 또는 장(場)이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장시에는 기준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붙는 수식어가 다르다. 우선 장이 언제 열리는가를 기준으로 할 때 매일 열리는 상설시장을 시(市)라고 하고, 점포를 시전(市廛)이라고 하였다. 시민(市民)은 시전을 운영하는 상인을 말한다. 매일 열리지 않고 주기를 정해 열리는 정기시장은 장(場)이라고 하여 그 주기에 따라 오일장, 10일장 등으로 불렀다. 일정한 주기가 없이 배가 도착할 때라든지 별신제가 열릴 때, 또는 허가된 장소가 아니거나 장을 처음 개설할 때 벌이는 장은 난장(亂場)이라고 하였다.


 장이 서는 위치를 기준으로 구분해 보면 중앙시장과 지역시장이 있고, 경시(京市), 향시(鄕市), 성읍시(城邑市), 가로시(街路市) 등이 있었다. 경시에는 정부로 부터 정식 허가를 받은 시전과 그렇지 않은 난전(亂廛),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잠시 열리는 조석시(朝夕市)가 있었다. 조석시에서는 도시나 성읍의 주민들이 필요한 신선한 생선이나 채소 또는 땔감 등을 거래하였다. 무역이 이루어지는 지역에는 개시(開市) 또는 후시(後市) 등이 있었다.


 거래물종에 따라 시장을 분류하면 일반시장과 특수시장, 농산물시장과 수산물시장으로 구분되고, 거래단계별로 보면 산지시장, 중앙도매시장, 도매시장, 소매시장 등으로, 제조과정을 기준으로 보면 원료시장과 제품시장으로 나뉘는데, 이는 대개가 산업화 이후에 진행된 현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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