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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루,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시대 사람들은 해와 달이 바뀌는 것을 달을 보아 알 수 있었으며, 날짜도 달력의 보급으로 알 웃 있었다. 씨뿌리기, 모내기, 김매기 등의 농사일은 달력에 표시된 양력 절기를 보고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은 알기 어려웠지만 당시 사람들은 짧은 시간의 흐름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았다 . 해가 뜨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들어가 잠자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시간은 지금과는 달랐다. 낮에는 정시법을 적용하여 2시간 간격으로 시간이 바뀌는 12시진을 사용하여 진시, 사시 등으로 시간을 표시했다. 그러나 밤시간은 부정시법을 적용하여 하늘이 어슴푸레한 박명(薄明)을 뺀 나머지 밤시간을 5등분 하여 5경으로 표현했으므로 5경이 가리키는 시간은 계절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해시계, 앙부일구(仰釜日晷)/네이버


 나라에서는 자격루를 표준시계로 삼아 종을 쳐서 그 시간을 일반인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종은 하루에 두 번 울렸다. 성문을 닫고 통행금지가 시작 되는 시간과 성문을 열고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시간 뿐이었다. 정오에는 오고를 쳐서 시간을 알리고, 후에는 오고가 오포, 사이렌으로 대체되었지만 정오의 시보는 서울에 국한되었다.


휴대용 해시계,1849년(현종 15), 가로 11.5㎝, 세로 15.8㎝,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네이버 지식백과


 그러므로 민간에서는 시간을 재는 데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해시계는 가장 널리 쓰인 시계였지만 양반층만이 주로 사용했으며, 그나마 밤이면 사용할 수 없었고 날이 궂어도 쓸 수 없었다. 사람들은 낮시간을 해의 방위에 따라 대략적으로 판별했다. 밤에는 별자리의 움직임을 보아 시간을 알아냈다. 사람들은 하루 시간의 흐름에 그다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하고도 큰 불편 없이 살 수 있었다. 당시 사회가 짧은 시간의 변동을 측정하는 것을 그다지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농업이 산업의 거의 전부였고, 농업은 세밀한 시간의 흐름에 좌우되지 않았다. 또 노동이 강도도 그다지 세지 않았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시간에 쫓기지 않았으며, 지금에 비교하면 매우 느긋한 삶을 누리고 있었고, 사회발전 속도도 더뎠다. 그러다가 한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산업화가 진행되고 사람들은 점차 바쁘고 고된 삶에 빠져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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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적인 대부분의 집안에서는 10월이 되면 날을 정해 팥시루떡을 쪄서 가주(家主) 주관으로 가을고사를 지냈다. 대청 성주와 안방 제석, 그리고 터주에는 술과 함께 떡을 시루째 갖다 놓고 장독대, 대문간, 헛간, 측간, 외양간, 우물 등에는 떡을 떼어 놓는다. 전 해에 넣었던 터줏가리 안 항아리의 묵은 벼를 햇벼로 갈아 넣는다. 시루떡은 두어 말 정도 해서 동네 주민들과 나누어 먹는다. 단골무당을 불러 고사를 지내는 집도 있다. 산간 지방에서는 마을 전체가 산치성을 지내고 나서 각자 집고사를 지내는 곳이 많았는데 대부분 10월 상달에 고사를 지내지만 정월이나 2월에 지내기도 한다.


삼신바가지,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동,황헌만/국립민속박물관



 정월 대보름 안으로 단골무당집에 1년 신수점을 보러 가는 집도 있고, 7월칠석 때에 단골집에 가서 가정이 무고하게 해 달라고 비는 집도 있는데, 이를 두고 '마지' 또는 '정성을 드리러 간다'고 한다. 3월에 못자리 고사를 지내는 집은 팥시루떡을 해서 가을고사 때와 마찬가지로 늘 놓는 자리에 제물을 놓고 지낸다.


터주고사,경기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황헌만/국립민속박물관


 경기도 화성시 동탄면 장지리, 밀양박씨들의 집성촌 주민들은 다락에 '선대신 항아리' 라고 부르는 쌀을 담은 항아리를 모시는데, 집안 조상을 위하는 것이라고 한다. 안방 안쪽 천장 가까운 벽에는 지석주머니, 삼신주머니를 걸어 놓는다. 지석(또는 제석) 주머니는 집안의 무고(無故)를 위해, 삼신주머니는 자식이 잘 되게 하기 위해 걸어 놓는 것이라고 한다. 제물로는 주로 햅쌀로 찐 시루떡 외에 통북어, 술, 적, 무나물 등을 올린다. 먼저 시루떡을 상 위에 받쳐 놓고, 통북어는 시루떡 오른ㅉ고에 끼워 놓으며, 시루떡 위에는 청수 한 그릇을 부어 올린다. 시루떡 앞에는 돼지고기적이나 쇠고기적을 놓고, 시루떡 옆에는 무나물과 막걹리 한 그릇을 올린다.


동지고사, 충남 연기군 금남면 석교리/국립민속박물관


 뱃고사 또는 배걸이는 강이나 나루와 관련하여 행해지던 강마을의 민속신앙이다. 뱃사공 또는 배를 소유한 집에서는 1년에 두 번, 즉 이른 봄과 10월 상달 고사 때 뱃고사를 지내거나 만신을 불러 뱃굿을 했다. 만신이나 절의 보살을 불러 배에 시루떡, 삼색과일, 술 등을 차려 놓고 징치기, 굿치기를 하는 곳도 있다.

 어부심은 한자로 어보시(魚報施) 또는 어부시(魚鳧施)라고 쓰며, 강에 사는 물고기나 오리(鳧)에게 보시, 즉 베푼다는 뜻이다. 강에서 고기도 잡고 멱을 감는 일도 많았던 시절의 풍속으로, 강 주인인 물짐승들에게 1년 내내 사고 없이 잘 지내게 해 달라고 비는 신앙행위이다.

 경기도 일원의 강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정월대보름밤에 어부심고사를 지냈다고 한다. 보름 전날 햅쌀로 먼저 공양(供養), 즉 밥을 지어 놓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다음, 새벽에 밥을 들고 강가로 나가 제상을 차리고 사해용왕님을 찾으면서 동해 남해 서해 북해 순서로 돌아가며 1배씩 4배 하며 물로 인한 사고가 없도록 기원한 다음 강으로 나가 바가지에 담은 밥을 강물에 푼다.

[전통사회와 생활문화/이해준 송찬섭 전경목 정연식 정승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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