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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부전대동계문서/한국민속대백과사전]


고려 말 조선 초의 향도는 조선시대 촌락공동체 조직의 원형적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본래 불교조직이었던 향도는 고려 말기에 이르러 순수 불사(佛事)를 벗어난 무속적이거나 회음, 상장부조 같은 공동체적 생활의례에 간여하면서 기층민들의 생활공동체 조직으로 정착되어 갔다. 이들은 조선 후기의 촌계, 대동계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촌락공동체 조직은 시기별로 변모와 변천을 거듭하였다. 예를 들면 성리학적 지배질서가 확립되면서 실시된 향약이나, 사족들의 동계, 동약 조직의 보급으로 기층민 조직이었던 촌락조직은 축소되고 통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임ㅁ진왜란을 전후한 시기에 난후 복구와 자구책으로 상하합계(上下合契)의 동계가 나타났으며, 또 사족의 동계조직이 와해되거나 사족 간의 상호부조 역할로 한정되자,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촌락민들이 주도하는 대동계(大同契)가 운영되었다.


대동은 '크게 하나 됨'이라는 뜻으로, 평등으로 모든 사람이 일치하고 화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대동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의지가 '대동계'인 것이다. 대동계와 촌계는 거의 모든 마을에 있었던 아주 보편적인 마을공동체 조직으로, 마을의 대동계(촌계)는 마을제를 주관하고, 제언, 도로, 교량, 우물의 수리, 마을 공동재산의 마련과 운영, 환과고독의 보호, 진휼과 혼상의 상부상조를 담당하였으며 또한 자치, 자율의 불문율로 마을사람을 규제하고 결속하기도 하였다.


대동회의는 마을사람 전체의 회의로, 대개 마을제(동제)를 지낸 이후 음복과 함께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대동계의 대동회의는 민주적 의사 결정을 기본으로 한다. 그리고 상부상조의 측면에서 의례적이고 균분적인 사족 결사조직들의 부조와는 다른 모습의 결정들이 보인다. 이 대동계는 기본적으로 마을사람들로 구성되며, 임원은 동족마을인 경우는 문장(門長)이나 촌장으로 불리는 고령자, 유식자가 상징적인 원로가 되고, 실질적인 일은 유사와 공원들이 나누어 맡는다.


대동계가 담당한 공사(公事)에서 큰 특징은 공생과 평등의 원칙이 최우선이라는 점이다. 마을 구성원은 경제적 능력과 신분, 기타 공지되는 능력에 따라 동등한 책임과 권한을 가지면서 참여하고, 권익을 분배받는다. 즉 환과고독과 같이 생활이 어려운 이웃이나, 급작스러운 피해를 입은 사람의 경우는 구휼은 물론 부담을 경감하거나 제외하는 전통이 있었다. 또 대동계의 공동체 규약은 불문율이었지만, 그 어떤 법보다도 강했고, 민주적이었으며, 실용적이었다. 이처럼 대동계는 민주적 참여, 평등과 공생, 자치와 자율의 논리 속에서 확대된 마을사람들의 생활원리이자 촌락공동체의 전통문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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