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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에 대한 연구와 관련해서는 크게 두 가지의 상이한 연구 흐름을 구분할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소쉬르가 제창한 기호학이라면 다른 하나는 미국의 철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연구에 연원을 두고 있는 기호론이다. 소쉬르가 기표와 기의를 구분한 것과 달리 퍼스의 기호 이론에서는 세 가지 요소가 주축을 이룬다. '기호(sign)'와 '대상(object)', '해석체(interpretant)'가 바로 그 세 가지 요소이다. 퍼스의 설명에 다르면 기호는 대상을 거쳐 해석체로 연결된다. 예를 들어, 만일 내가 벗겨진 나무껍질을 본다면 이것은 주위에 사슴이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기호가 될 수 있다. 그 나무껍질이 기호이고 그 껍질을 벗긴 실제 사슴이 대상이며, 사슴에 대한 나의 사고가 해석체이다. 그러므로 해석체란 기호를 읽는 독자가 시초에 주어진 기호에 대해 갖게 되는 심적 반응인 것이다. 퍼스 이론에서 중요한 점은, 기호가 일련의 해석체들로 연결된 사슬을 파생시키므로 기호가 자명하거나 투명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독자 개개인이 기호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할 따름이다. 다라서 독자는 기호와 그에 대한 해석체에 의해 실제 대상과 항상 분리되어 있다. 그러나 퍼스는 해석의 사슬이 발전해 나감에 따라 해석체가 점차 대상에 보다 적합하도록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과적으로 언어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이 기호와 기호체계에 압력을 가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퍼스적 관점에서 볼 때, 각 문화마다 식물을 분류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식물학자와 요리사가 식물들을 실제로 다루고 연구함으로써 마침내는 허브와 채소를, 그리고 로즈마리와 당근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한편 퍼스의 기호학은 세 가지 기호 유형에 대한 유용한 개념틀을 제공하기도 한다. 상징(symbol)은 관습에 의해 그 지시 대상에 연결되는 기호이다. 예컨대 단어 '개'와 실제의 개 사이에 물리적인 공통점이나 여타의 다른 공통점이라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또 국기는 국가를 나타낼 수 있지만 추상적인 고안물에 다름 아니다. 반대로 지표(index)는 대상과 인과적 또는 존재론적인 연결고리를 갖는다. 그래서 벗겨진 나무껍질은 지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슴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연기는 불의 지표이다. 마지막으로 도상(icon)은 대상과 어떤 특질들을 공유한다. 따라서 지도는 재현적인 그림이나 사진처럼 도상적이다.

[앤드루 애드거, 피터 세즈윅 편(박명진 외 역), '문화 이론 사전', 하나래 2003, pp, 9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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