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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여

 고기(古記)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한서에 선제 신작 3년 임술년(기원전 59년) 4월8일에 천제(天帝)가 오룡거를 타고 흘승골성으로 내려와 도읍을 세우고 왕이라 하며 국호를 북부여(北扶餘)라고 했다.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라고 하고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라고 했는데, 해(解)를 씨로 삼았다. 왕은 이후에 상제의 명에 따라 동부여로 도읍을 옮겼다. 동명제가 북부여를 이어 일어나 졸본부에 도읍을 세우고 졸본부여라 했는데 바로 고구려의 시조이다.

※여기서 오룡거(五龍車)란, 천제가 타는 용 다섯 마리가 모는 수레를 말하며, 5라는 숫자는 고구려에 있던 성의 숫자이다.

 

동부여

 북부여 왕 해부루의 재상 아란불의 꿈에 천제(天帝)가 내려와 이렇게 말했다.

"장차 내 자손에게 이곳에 나라를 세우도록 할 터이니, 너는 다른데로 피해 가라.

(동명왕이 장차 일어날 조짐을 말한 것)

동해 가에 가섭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땅이 기름져 왕도로 삼기에 적당하다."

 아란불은 왕에게 권하여 그곳으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동부여라고 했다.

 해부루는 늙도록 아들이 없었다. 어느 날 산천에 제사를 지내 대를 잇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때 타고 가던 말이 큰 연못(백두산 천지)에 이르러 큰 돌을 마주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사람을 시켜 그 돌을 옮기가 금빛 개구리 모양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왕이 기뻐하며 말했다.

 "이것은 바로 하늘이 나에게 내려주신 아들이로구나!"

 곧 아이를 거두어 기르면서 이름을 금와라고 했다. 그가 성장하자 태자로 삼았다.

 부루가 죽자 금와가 자리를 이어받아 왕이 되었고, 그 다음에는 태자 대소에게 와위가 전해졌다. 지황 3년 임오면(22년)-대무신왕5년-에 고구려 왕 무휼이 정벌하고 왕 대소를 죽이니 나라가 망했다.(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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