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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77호 '원교 이광사 서첩 원교법첩'은 당(唐)나라 시인 두보(杜甫, 712~770)의 시를 쓴 것으로 모두 20장 40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앞쪽의 25면은 밝은 옥색 비단, 중간의 9면은 옅은 옥색 비단에 먹으로 씌어 졌다. 뒤쪽의 6면은 검은 비단에 금니(金泥, 금박이나 금가루를 아교에 풀어 만든 안료)로 씌어 졌다. 가장 위의 것은 두보의 시 '동정호를 지나며(過洞庭湖)'를 전서(篆書, 한자의 고대 서체 중 하나로 갑골문에서 변형 발전 된 초기 형태의 서체)로 쓴 것이다. 이 외에도 모두 18수의 오언시(五言詩)를 담고 있으며, 전서를 비롯해 해서, 행서, 초서, 예서 등의 다양한 서체로 씌어 있다. 이 서첩을 통해 조선 후기 서예가인 이광사의 다양한 면모를 볼 수 있는데, 특히 서첩의 글씨 중에 중국 전서 비석 '형산비(衡山碑, 우비禹碑, 우왕비禹王碑 등으로 불린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떨리는 듯한 필획의 감각적 표현은 두보의 시와 어우러져 보다 운치 있고, 마치 서체가 아닌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크기

가로 23.3cm X 세로 35.2cm

이광사(李匡師, 1705~1777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원교圓嶠 또는 수북壽北, 예조판서를 지난 진검眞儉의 아들이다.)는 조선후기 서화가로, 한석봉(韓石峯)으로 잘 알려진 한호(韓濩, 1543~1605) 이후 조선적인 글씨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 서예가이자 화가였다. 대표작으로 행서4언시(行書四言詩, 서울대학교 박물관), 1746년(영조 22) 오대(五代, 중국 당나라 말기에서 송나라 초기의 기간에 흥망한 나라들로 후량, 후당, 후진, 후한, 후주를 가리킨다.)의 인물화가 왕제한(王齊翰)을 임모하여 그렸다고 하는 '고승간화도(高僧看畫圖, 간송미술관), '산수도(山水圖,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있으며, 서예의 이론을 체계화시킨 '원교서결(圓嶠書訣)'과 '원교집선(圓嶠集選)' 등의 저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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