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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06년 네 군의 위치/ⓒ위키백과

'전한서(前漢書)'에서는 "소제(昭帝) 시원(始元) 5년 기해년(기원전 82년)에 두 외부(外府)를 두고, 조선의 옛 땅이다."라고 했다. 평나(平那)와 현도군 등을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로 삼고, 임둔과 낙랑 등 두 군의 땅에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설치한 것을 말한다.

그런데 '조선전(朝鮮傳), 중국 정사인 24사에 기술된 한국 관련 기록'에는 진번, 현도, 임둔, 낙랑 등 네 군인데 지금 여기에는 평나가 있고 진번이 없으니 아마도 한 곳의 명칭이 두 가지인 것 같다.

-삼국유사 권 제1 기이(紀異) 제1, 두 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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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 때 처음으로 낙랑군(樂浪郡)을 두었는데, 응소(應邵, 후한 여남汝南 사람으로 원소袁紹 밑에서 벼슬을 했고 고대의 예의, 풍속, 관직 등에 밝았다.)는 "옛날 조선국" 이라고 했다.

'신당서(新唐書)'의 주에 이렇게 말했다.

"평양성은 옛날 한(漢)나라의 낙랑군이다."

'국사(國史)'에 이렇게 말했다.

"혁거세 30년에 낙랑 사람들이 와서 투항했고, 또 제3대 노례왕(弩禮王) 4년에 고구려 제3대 무휼왕(無恤王)이 낙랑을 정벌하여 멸망시키니, 그 나라 사람들이 대방(帶方), 북대방과 함께 신라에 투항했다.

또 무휼왕 27년에 광무제(光武帝)가 사신을 보내 낙랑을 정벌하여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으니, 살수(薩水) 이남이 한나라에 예속되었다. 이상의 여러 글에 의하면 낙랑은 바로 평양성이어야 마땅하다. 어떤 사람들은 낙랑은 중두산(中頭山) 아래 말갈과의 경계고 살수는 지금의 대동강이라고 하는데, 어느 말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낙랑예관‘樂浪禮官」이 새겨진 수막새/ⓒ국립중앙박물관

 

또 백제 온조왕(溫祚王)이 말했다.

"동쪽에는 낙랑이 있고 북쪽에는 말갈이 있다. 이는 아마 옛날 한나라 때의 낙랑군 속현의 땅이었을 것이다."

신라 사람 역시 낙랑이라 불렀으므로 이로 말미암아 지금 고려에서도 낙랑군부인(樂浪郡夫人)이라 한다. 또 태조가 김부(金傅,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이며 태조는 왕건王建을 말한다.)에게 딸을 시집보내면서 역시 낙랑공주라고 했다.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 낙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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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전(通典)'에서 이렇게 말했다.

"조선의 유민들은 일은여 나라로 나뉘어졌는데, 이들은 영토가 사방 백 리였다."

'후한서(後漢書), 남송의 범엽이 지은 역사책으로 후한 열두 황제의 196년간의 사적을 기록한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한(西漢)이 조선의 옛 땅에 처음 네 군을 두었고 뒤에 두 외부를 두었다. 법령이 점점 번잡해져 이를 일흔여덟 나라로 나누었는데, 각가가 1만 호(戶)였다.

마한은 서쪽에 있었는데 쉰네 개의 작은 읍이 있어 모두 나라라고 불렀고, 진한은 동쪽에 있었는데 열두 개의 작은 읍이 있어 나라라고 불렀다. 또 변한은 남쪽에 있었는데 열두 개의 작은 읍이 있어 각기 나라라고 불렀다."

 

고조선 후 고대 국가들/ⓒ위키백과 

 

-삼국유사 기이(紀異) 제1, 일흔두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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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의 건국신화(단군신화)

옛날 환인의 서자 환웅이 세상에 내려와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므로, 아버지가 환웅의 뜻을 헤아려 천부인 3개를 주어, 세상에 내려가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이 무리 3,000명을 거느리고 태백산의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라 이르니, 그가 곧 환웅천왕이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 ·명 ·병 ·형 ·선 ·악 등 무릇 인간의 360여 가지 일을 맡아서 세상을 다스렸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다. 환웅은 이들에게 신령스러운 쑥 한 줌과 마늘 20쪽을 주면서 이것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된다고 일렀다. 곰과 호랑이는 이것을 먹고, 곰은 참아 여자의 몸이 되고 호랑이는 참지 못해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는 혼인해주는 이가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배게 해달라고 축원하였다. 이에 환웅이 잠시 변하여 혼인하여서 아이를 낳으니, 그가 곧 단군 왕검이다. 왕검이 당고(唐高: 중국의 가장 오랜 역사 고전인 상서 첫머리에 올라 있는 제왕) 즉위 50년인 경인(庚寅: 50년은 丁巳이니 틀린 듯하다)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일컬었으며, 이어서 백악산의 아사달로 옮긴 뒤 그 곳을 궁홀산 또는 금미달이라 하였다. 단군은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리고 주나라 호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의 임금으로 봉한 후 장당경(藏唐京: 황해도 신천군 文化面)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서 산신이 되니 나이가 190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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