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청나라에서 아편을 흡입하는 모습]

 

아편전쟁과 서양의 충격, 그리고 동아시아 기존 질서의 붕괴..

 

중국은 오랫동안 세계인들이 선망하는 도자기, 차, 비단 등 고급 상품을 만들며 세계의 은을 빨아들여 풍요를 누렸지만, 1820년대부터 은의 순유출 시기가 시작된다. 중국은 16세기 이래 300년간 대외 무역에서 거대한 은 유입을 계속 유지해 오고 있었는데, 이때부터 은의 역류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유럽은 10퍼센터 대의 고성장을 개시했다. 중국과 유럽의 위치가 역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에 수 세기 동안 유지해 온 강대국의 지위가 유럽의 보잘것없이 보이는 몇몇 나라들에게 위협당하리라고 생각한 중국인들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아편전쟁의 패배가 이런 자만에 큰 충격을 주었다. 급성장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한 영국은 강력한 전투함과 대포를 앞세워 청군에게 쓰라린 패배를 안겨 주었다.

아편전쟁의 소식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가 동아시아 각국에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청을 국가 안보의 울타리로 생각했던 조선도 크게 놀랐다. 그러나 조선은 이를 일시적 패배로 받아들이고 아직도 청의 군사력과 국력을 신뢰했다. 반면 청의 패배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은 도쿠가와 바쿠후였다. 그들은 청의 패배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서양의 확실한 군사력 우위에 의한 것으로 보고, 커다란 위기감에 빠졌다. 아편전쟁 소식은 전 일본을 전율시켰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리고 청에 대한 평가도 급격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한편 영국과의 아편전쟁에서 패배는 청의 근대화 노력과 양무운동의 발단이 된다. 또한 조선을 비롯한 주변국의 청에대한 재평가는 물론이고, 중국을 중심으로한 세계질서의 종말을 가져왔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