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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전통적인 가훈(家訓)은 집안어른이 자녀 또는 후손들에게 주는 가르침, 교훈을 일컫는 것으로써, 대체로 수신제가(修身 齊家), 즉 처세와 때로는 평천하(平天下)에 이르는 치인(治人)의 도리를 중심으로 생활문화 전반에 걸친 규범과 지침들을 간단명료하게 조목으로 나열,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이 남성 중심적인 내용들이었다.
그러다 17세기 이후에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가훈서들도 나타나게 되는데, 바로 여훈(女訓)과 계녀서(戒女書)이다. 이는 보다 구체적인 여성 교육서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나타난 것으로, 당시는 부덕이 높은 여성이 가문 영달의 밑거름이자 가문을 빛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여성의 부덕은 그 가문의 명성과 가풍을 전하는 것으로도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우암선생계녀서/ⓒ우리역사넷

 
따라서 가훈서와 여훈서의 목차를 비교해 보면 공통적으로 강조되는  부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여훈서에는 일반가훈과 마찬가지로 가족관계, 교육, 조상 섬기기, 아랫사람 대하기 등 유교가 추구하는 실천윤리가 모두 포함된다. 여기에 더하여 여훈서는 여성의 역할과 관련된 시부모 섬기기와 남편 섬기기가 추가되고, 남성의 사회적 관계를 뒷받침하는 역할이 부여되며, 남녀가 각각 힘써야 할 본업에 대해서도 다르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전해지고 있는 여훈, 계녀서로는 이황(李滉, 1501~1570)의 <규중요람(閨中要覽)>, 성종의 어머니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가 왕실의 비빈(妃嬪)을 훈육하기 위해 엮은 <어제내훈(御製內訓>,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계녀서(戒女書)>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저자가 알려진 사대부의 여훈서로 한원진의 <한씨부훈(韓氏婦訓)>, 권구의 <내정편(內政篇)>, 조관빈의 <계자부문(戒子婦文)>, 조준의 <계녀약언(戒女略言)> 등이 있고, 작가 미상의 <규중요람> <규범> <여자계행편> 등이 있다.
 
이러한 사대부가의 여훈서는 대개 '사부모(事父母 부모를 섬기는 도리), 사구고(事舅姑 시부모님을 섬기는 도리), 화형제(和兄弟 형제 사이의 우애를 밝히는 도리), 목친척(睦親戚 친척과 화목하게 지는 도리), 교자녀(敎子女 자녀를 교육하는 도리), 봉제사(奉祭祀 제사를 받드는 도리), 접빈객(接賓客 손님을 접대하는 도리), 어노비(御奴婢 종을 다스리는 도리), 음식의복(飮食衣服 음식과 의복 만드는 도리), 절검(節儉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는 도리), 근면(勤勉 부지런하게 힘쓰는 도리), 불투기(不妬忌 투기하지 않는 도리), 수신(修身 마음과 몸을 닦아 수양하는 도리), 신언어(愼言語 말을 조심하는 도리)' 등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목차와 내용은 매우 상세한 것으로, 여성의 삶을 시집살이 중심으로 구조화하고 제가(齊家 집안을 바르게 다스리는 일) 중심의 기능적 여성상을 강조하는 한편 불투기와 정절을 강조하고 있다.
 

국보 송시열 초상/ⓒ국립중앙박물관

 
대표적으로 송시열의 <계녀서>는 출가하는 딸에게 교훈으로 삼게 하기 위해 지어준 글로 한글로 되어 있는데, '부모 지아비 시부모 섬기는 도리, 형제간, 친척 간에 화목하는 도리, 자식 가르치는 도리, 제사 받들고 손님 대접하는 도리, 투기하지 않는 도리, 말을 조심하는 도리, 재물을 절제 있게 쓰는 도리, 일을 부지런히 하는 도리, 병환을 돌보는 도리, 의복과 음식을 만드는 도리, 노비 부리는 도리, 재물을 빌려 주고 되돌려 받는 도리, 팔고 사는 도리' 등  선인들의 선행 등 20여 조목으로 되어 있다. 이들 내용은 조선시대의 사대부가 부녀자들의 행동에 관한 사회적 규범을 보여 주는 것으로 여성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다음으로 우암의 제자이면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으로 저명한 남당(南塘) 한원진(韓元震, 1682~1751)의 <한씨부훈( 韓氏婦訓)-남당선생문집 권26, 잡저>은 1712년(숙종 38)에 부녀자에게 교훈이 될 만한 것을 내용으로 하여 지은 10장 34쪽의 책이다. 이 자료는 한원진이 시집간 누이의 요청에 따라 성현의 말씀 가운데 부인의 행실과 일상적인 가정생활에 절실한 내용을 '부모, 남편 섬기기와 형제자매, 며느리, 첩, 비복 등을 대하는 법도를 비롯하여 집안일 다루기, 접빈과 봉제사 등'의 총 11장으로 구성한 것으로, 주로 <소학(小學)-1187년 완성된 송나라 유징이 지은 수양서>과 <격몽요결(擊蒙要訣)-학자 이이가 1577년 간행한 아동 유학입문서> 에서 발췌하였으며 여훈서에서 다루는 정형화된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씨부훈>의 특징은 집안의 성쇠가 부인의 행실에 달려 있고 그것은 교육에 달려 있다고 전제하여 며느리 교육을 항목에 포함시킨 점, 아동 교육의 중요성과 아동 교육의 담당자로서 어머니의 역할을 강조한 점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박윤원(朴胤源, 1734~1799)의 <가훈(家訓)-근재집(近齋集), 권23~24 잡저>은 부인에게 내린 경계와 질부 박종경(朴宗慶) 처에게 준 8가지 경계로 딸, 측실, 노비 등을 경계한 글이다. 신기선(申箕善, 1851~1909)의 < 가훈(家訓)-양유원집(陽園遺集) 권14>도 '내칙(內則)'이라 하여 부모 섬기기, 봉제사, 부부 형제 관계, 아들 가르치기, 종족과 노비 관련 조목, 그리고 복식까지를 다루고 있다. 박필주(朴弼周)의 <계유가중(戒諭家衆)-여호집(黎湖集 1744>은 특별하게 노비들을 대상으로 한 경계로서 상전을 모시는 법, 속이거나 탐하는 마음 없애기, 언행과 음주에 대한 조심 등의 8조목을 수록한 흥미로운 자료이다. 노비 관련 모목이 강조된 가훈으로 권호문(權好文, 1532~1587)의 <가잠(家箴> '사노비(使奴婢), 강덕준(姜德俊, 1607~1668)의 <우곡선생훈자격언(愚谷先生訓子格言)> '어비복(馭婢僕)' 박윤원(朴胤源, 1734~1799)의 <가훈> '계노비문( 戒奴婢文)', 이경근(李擎根, 1824~1889)의 <고암가훈(顧菴家訓)> '사비복(事婢僕)' 등이 있다.
 

[내용 출처 : 전통사화와 생활문화(이해준 정승모 전경목 송찬섭 공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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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질 인(仁)이란 한자어를 풀어보면 사람人 + 두二가 결합된 형태의 뜻글자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二는 둘이 아닌, 사람사이의 거리, 이른바 '호저의 거리'와 상통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느데, 결국 인(仁)이란 글자의 뜻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뜻하는 것으로, 사람은 그 특성상 혼자 있고 싶은 마음과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어느정도의 거리, 바로 '호저의 거리'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이 '호저의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는 관계의 경우는 서로에게 크든 작든 상처를 입히고 마음을 다치게 한다.

 공자의 인(仁)이란 이렇듯 사람사이의  '호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을 우리는 쉽게 느낄 수 있는데, 아픈 사람을 보면 내 마음도 최소한 즐겁지는 않다. 또, 즐거운 사람을 보면 내 마음도 최소한 슬프지는 않다. 이것이 바로 인(仁)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어질다는 것은 바로 '얼마나 더 깊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느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仁)은 인(仁),의(儀),예(禮),지(智),신(信) 중 가장 기본 바탕이 되는 것이다.


☞'호저의 거리'란? 열대 지방에 사는 동물인 호저는 온몸이 가시로 덮여있는 동물인데, 밤이되어 추워지면 서로 가까이 붙어 체온을 유지하는데, 문제는 너무 가까우면 서로의 가시가 상대를 찔러 상처를 내고, 너무 멀면 체온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호저들은 서로 간격을 좁혔다가 가시에 찔리면 다시 조금 간격을 넓히고 하는식으로 해서 결국은 가시에 찔리지도 않고, 추위도 이겨낼 수 있는 서로간의 거리를 찾아내는데 이를 두고 쇼펜하우어는 '호저의 딜레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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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 나오는 '태평'의 세계에 관한 설명
[관련글 읽기: 장자에 나오는 '덕이 가득한 나라'에 관한 이야기]




대저 제왕의 덕은 하늘과 땅을 최고의 조상으로 삼고, 도덕을 주인으로 삼으며, 무위를 늘 그러함으로 삼는다. 무위는 곧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을 써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유위는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이 귀하게 여긴 것은 저 무위인 것이다.
윗사람이 무위하고 아랫사람 또한 무위한다면 이것은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덕을 함께하는 것이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덕을 함께하면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게 된다. 아래사람이 유위하고 윗사람 또한 유위한다면 이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도를 함께하는 것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도를 함께하면 군주답지 못하게 된다. 윗사람은 반드시 무위하여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을 써야 하고, 아랫사람은 반드시 유위하여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바뀌지 않는 불변의 원칙이다.
그러므로 옛날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이게 왕 노릇 하던 사람은 지혜가 비록 온 우주의 원리를 헤아릴 만해도 스스로 계획을 세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록 변별력이 온갖 사물의 차이를 세세하게 드러낼 수 있다 해도 스스로 이론을 세워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지닌 능력이 인간 세계 전체를 포용할 수 있어도 스스로 이를 실천에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하늘이 낳아 주지 아니하여도 온갖 것들은 변화한다. 땅이 길러 주지 아니하여도 온갖 것들은 자라난다. 제왕이 함이 없어도[무위]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이 공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하늘보다 신비스러운 것은 없고 땅보다 부유한 것은 없으며 제왕보다 위대한 것은 없도다."라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제왕의 덕은 하늘과 땅에 짝하니 이것이야말로 하늘과 땅을 타고 온갖 것들을 몰며 인간의 무리를 부리는 길이로다."라고 한 것이다.




근본은 윗사람에게 달려 있고 말단은 아랫사람에게 달려 있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군주에게 달려 있고 실무적으로 세밀하게 시행하는 것은 신하에게 달려 있다.
삼군의 대군과 다섯 가지 무기로 무장한 특수부대를 운용하는 것은 덕의 말단이다. 상벌을 내리고 이해관계로 거래하고 성문화된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교화의 말단이다. 의례의 절차와 법률의 규정을 상세히 규정하고 신하들의 직책과 실제의 수행을 상세히 비교, 감시하는 것은 행정수단의 말단이다.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무장이 깃털을 들고서 춤을 추는 모양을 갖추는 것은 음악의 말단이다. 큰 소리를 내어 울고 읍을 하고 허술하게 상의를 입고 허리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성대하고 오랜 기간 상례를 치르는 것이나, 짧은 기간 간단하게 상례를 치르는 등의 세부 사항은 애도를 표현하는 말단이다.
이 다섯 가지 말단은 모름지기 정신이 움직이고 심술이 작동한 뒤에야 그로부터 따라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다섯 가지 말단적 학문은 옛사람들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나 이것을 앞세우지는 아니하였던 것이다.
군주가 앞서고 신하가 따른다. 아버지가 앞서고 자식이 따른다. 형이 앞서고 아우가 따른다. 어른이 앞서고 어린 사람이 따른다. 남자가 앞서고 여자가 따른다. 남편이 앞서고 부인이 따른다. 대저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과 앞서고 뒷따름은 하늘과 땅이 가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이 모델로 취한 것이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신이 밝혀지는 자리이다. 봄과 여름이 앞서고 가을과 겨울이 뒤따르는 것은 사계절의 순서이다. 온갖 것들이 변화하고 자라날 때 갓 나와 꼬부라진 새싹은 모양이 가지각색이지만 번성하고 시들어 버리게 되는 것은 자연 세계의 변화의 추이이다.
대저 하늘과 땅이 지극히 신비스러우나 높고 낮음, 앞서고 뒷따름의 순서가 있는데 하물며 인간의 도에서랴!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는 직계를 높이고, 조정에서 일을 논할 때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높이고, 마을에서 일을 논할 때에는 연장자를 높이고, 커다란 행사를 벌일 때에는 지혜로운 사람을 높이는 것이 큰 도의 순서이다.
도를 말하면서 그 순서를 말하지 아니하는 것은 그 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도를 말하면서 도를 부정하는 자가 어찌 도를 취하겠는가!


[사진 장자/네이버 지식백과]



이런 까닭에 옛날 대도를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하늘을 밝히고 도덕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도덕이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인의를 그 다음으로 하였다. 인의가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분수를 그 다음으로 하였다. 분수가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형명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형명이 밝혀지고 나서야 인임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인임이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원성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원성이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시비를 그 다음으로 하였다. 시비가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상벌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상벌이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저마다 마땅한 자리에 처하게 되고, 귀한 사람과 높은 사람이 저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서게 된다. 어질고 밝은 사람과 못난 사람이 저마다 실정에 맞추어지게 되면 반드시 저마다의 사회적 역할이 그 능력에 다라 나뉘게 되고, 그 사회적 신분이나 직책에 따라 처신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윗사람을 섬기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아랫사람을 길러 주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다스리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몸을 닦되 지모가 쓰이지 않게 하여 반드시 그 하늘로 돌아가게 한다. 이것을 일컬어 '태평'이라고 하는데, 곧 통치의 이상이다.
그래서 옛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형[形]이 있으면 이름[名]이 있다.


형명이란 것은 옛사람들도 가지고 있었으나 내세우지는 않았던 것이다.
옛날 큰 길을 말하는 살마은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형명을 언급하였고, 아홉 번째가 되어서야 상벌에 대해 말하였다. 갑작스럽게 형명을 말하는 것은 그것의 근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상벌을 말하는 것ㅇ은 그 처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길을 전도하여 말하고 길을 순서를 바꿔서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다. 어찌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갑작스럽게 형명, 상벌을 말한다면 이것은 통치의 도구만 아는 것이지 통치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쓰일 만은 하겠으나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을 부리기에는 부족하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변사라고 하는데 곧 한 가지 재주만 갖춘 사람이다. 예법 도수, 형명 비상은 옛사람들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섬기는 방법이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기르는 방법은 아니다.
[동양철학산책/김교빈 최종덕 김문용 전호근 김제란 김시천/장자,'천도']


[관련글 읽기:장자에 나오는 '덕이 가득한 나라'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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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의 건국이념인 주자학은 중국 송나라 시대의 주류 학문으로 북송의 주돈이, 소옹, 장재, 정호, 정이 등 다섯 명의 학자를 거쳐 남송의 학자인 주희가 집대성한 학문이며 송학, 정주학, 도학, 성리학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주자학은 이전 시대 한당의 훈고학이 자구 해석에 얽매이거나 경전을 기송하는 데만 주력한 나머지 유학의 장점인 실천적인 측면이나 수양의 문제를 방기함으로써 불교와 도교에 사상적 주도권을 빼앗긴 것을 전면적으로 반성하면서 일어났다.

 주자학은 동시대의 불교와 도교의 이론을 빌려 이전의 유학이 생활 윤리 규범에 머물렀던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 토대를 구축하였는데, 그중에서 우주와 인생을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개념이 이(理)와 기(氣)이다.

 이기론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기가 현상과 신체, 물질, 도구, 수단 등에 해당하는 것이라면 이(理)는 본체와 정신, 본질, 목적 등에 해당하는 개념으로 존재론뿐만 아니라 윤리학 또는 인간학, 심성론과 수양론, 학문 방법론에 이르기 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탁월한 설명력을 가지는 범주체계이다.

 기는 일기, 음양, 오행, 만물 등 다양한 모습과 형태를 지니고 차별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기의 응짖 또는 변형일 뿐이며 만물의 생성 소멸 또한 기의 이합집산으로 설명된다. 곧 기가 모이면 사물이 생성되고 흩어지면 사물이 소멸하는 것이다.

 이(理)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사물은 기에 의해 설명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제멋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질서를 갖추고 있어야 할 모습으로 있다. 이 있어야 할 모습을 갖추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理)이다. 이는 우주와 만물의 근거이며 우주가 우주로 있어야 할 모습을 부여해 주는 원리이자 본질이다. 개별적으로 말하면 이는 개개의 사물이 개개의 사물다운 특징을 갖게 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기론은 각자 뚜렷하게 구별되는 개념이지만 이 둘의 관계는 때로 미묘하고도 복잡한 사색을 필요로 할 만큼 까다로운데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둘은 떨어지지도 않고 섞이지도 않는다는 뜻인 불리부잡(不離不雜)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철학산책/김교빈 최종덕 김문용 전호근 김제란 김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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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황의 성학십도/태극도 1568(선조 1)년 12월 왕에게 올린 상소문/출처:네이버/한국한중앙연구원)


 진차(進箚)

 성학(聖學)에는 큰 실마리가 있고 심법(心法)에는 지극한 요령이 있습니다. 이를 드러내어 그림을 만들고 이를 지적하여 해설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도에 들어가는 문(入道之門)'과 '덕을 싸흔 기초(積德之其)'를 보여 주려 하는데, 이는 제가 부득이하여 만들게 된 것입니다. 더욱이 임금의 마음은 온갖 정무가 나오고 온갖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많은 욕심이 서로 공격하고 많은 사악함이 번갈아 침범하는 곳입니다. 그 마음이 조금이라도 태만해지고 방종함이 계속된다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들끓는 것 같아서 누가 이를 막아낼 수 있겠습니까? (중략) 이 도를 만들고 이 설을 지은 것이 겨우 열 폭의 종이에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며, 이를 생각하고 익히는 것이 단지 평소 한가한 틈을 타서 하는 공부에 불과하지만, 도를 깨달아 성인이 되는 요체와 근본을 바로잡아 정치를 베푸는 근원이 모두 여기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대학도(大學圖)

 경(敬)이란 마음을 주재하는 것이며 만사의 근본이다. 그 힘쓰는 방법을 알면 '소학'이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시작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소학'이 이것에 의지하고서야 시작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면, '대학'도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끝을 맺을 수 없게 됨을 일관하여 의심치 않게 된다. 마음을 일단 세운 뒤 이 경에 의해 사물을 밝히고(格物), 앎을 투철히 하여(致知), 사물의 이치를 모두 궁리하게 되면 이른바 "덕성을 높이고 학문을 하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尊德性而道問學). 이 경으로써 뜻을 성실히 하고(誠意), 마음을 바르게 하여(正心), 자신의 몸을 수양하면 이른바 "먼저 그 큰 것을 세우면 작은 것도 빼앗기지 않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 경으로써 집안을 바로잡고 나라를 다스려서 천하에까지 미치면 이른바 "자기 자신을 수양해서 백성들을 편안히 하고, 공손한 태도를 독실히 하여 천하가 태평해지는 경지"에 이를 수 있다. 이상의 모든 것이 하루라도 경을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 경이라는 한 글자가 성학의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요체가 아니겠는가? (이상은 '대학혹문'에 나오는 주자의 말)

 경이라는 것은 위로나 아래로나 모두 통하고 공부를 착수하는 데 있어서나 그 효과를 거두는 데 있어서나 항상 힘써서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자(朱子)의 말이 위와 같았으니, 이제 이 열 개의 그림도 모두 경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요컨데 이(理)와 기(氣)를 겸하고 성(性)과 정(情)을 포함한 것이 마음입니다. 그리고 성이 발현해서  정이 될 때가 곧 마음의 기미(幾微)인데, 이는 온갖 변화의 중심이며 선악의 분기점이 되는 때입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진실로 경의 태도를 유지하는 데 전념하여 천리(天理)와 인욕(人欲)의 구분을 분명히 하고 더욱 이것들을 몸소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마음이 발동하지 않았을 때에는 잘 보존하는 존양(存養)의 공부를 깊이 하고, 마음이 발동한 뒤에는 잘 살피는 성찰(省察)의 습관이 익숙해져서, 진실됨을 축적하고 오래 힘써서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이른바 정일(精一)의 방법으로 중(中)을 포착한다는 성학(精一執中之聖學)과 본체를 온전히 보존함으로써 모든 일에 올바로 대처한다는 심법(存體應用之心學)이 다른 곳에서 구하기 전에 여기에서 얻어질 것입니다.

[이황 '성학십도'/원본 '퇴계집' 권7/'한국문집총간' 29 (민족문화추진회, 1989)/동서양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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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의 주요내용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약화된 한국불교의 부흥을 위해 한국불교 개혁과 민중불교를 주창한 한용운의 저서, 1913년 백담사에서 집필, 발행


[사진 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한국민족문화 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1) 교육을 통한 유신 주체의 확립:

만해는 승가 개혁을 통하여 앞으로 불교의 유신을 이끌어 나아갈 주체상을 확립한다. 만해는 주로 교과 과정에 대한 개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당시의 승가 교육에 일반 상식적 지식이 전무함으로 해서 승려들이 지나치게 무지하다고 본다. 만해가 주장하는 교육 개혁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된 승가에게 사회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우선 승려들이 역사적 상황에 적극 대처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일반상식적 학문인 보통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생산을 통한 승려의 인권 회복:

만해는 한말 승려가 성직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천시받는 것은 승려가 생산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보살행도보다 적극적인 방면으로 실천할 것을 주장한다.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산 활동을 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복지 사업과 같은 행동을 통해 회향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3) 승려의 결혼:

만해는 승려의 결혼 문제도 언급하였다. 당시 승려들은 계율을 엄격히 지키지도 않으며 또 주지를 비롯한 부유한 승려들을 중심으로 축첩이 알게 모르게 횡행하고 있었다. 만해의 의도는 이것을 비공식적으로 숨어서 할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합법화하여 떳떳하게 행동한다면 오히려 포교에도 좋고, 독신이 싫어서 절을 떠나는 승려들의 환속 현상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4) 사원행정의 개혁과 교단의 조직화:

만해에게 있어 불교의 궁극적 목표점은 민중 불교이다. 그러기 위해서 억불 시대에 산으로 쫓겨갔던 사찰을 다시 도심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찰이 도심으로 내려와야 하는 이유가 민중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이지만 산이라는 곳이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진보의 사상이 없어지는 것, 모험적인 사상이 없는 것, 구세의 사상이 없는 것, 경쟁하는 사상이 없는 것이다.


5) 선거를 통한 주지의 선출과 경쟁적 동기 부여:

만해는 사찰 행정의 총수인 주지에 큰 책임과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한 사찰의 운명이 주지의 손에 달렸으므로 대중적 풍모와 지도력을 갖춘 스님을 주지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그 결정권을 대중에게 부여하여 대중의 선택에 맡기고자 하는 것이 만해의 주장이다. 그래서 한 사찰의 성쇠를 좌우하는 주지 선출을 대중의 손에 의해 뽑는 선거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6) 신앙의 통일과 미신의 배격:

만해는 절에서 신봉하는 각종 소회의 철폐를 주장했다. 불교 신앙에 있어서 미신적 요소와 신앙에 혼선을 초래하는 상황을 일소하고 불교를 보다 부처님의 근본적 가르침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각종 미신적 소회를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 염불당의 폐지와 참 염불의 실천:

만해는 입으로 하는 염불로 극락에 왕생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염불당(念佛堂)의 폐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의 마련을 위해 두 가지 측면에서 정토론(淨土論)을 반박한다. 즉, 하나는 화엄사상에 의한 교리적 비판이고, 둘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법(緣起法)에 의한 비판이 그것이다.


8) 불교 의식의 통일과 간소화:

만해는 복잡한 의식을 통폐합하여 간소화함으로써 불교를 제사주의적 관행(祭祀主義的 慣行)으로 부터 구하려고 했다. 신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소회의 폐지와 염불당의 폐지, 그리고 의식의 통폐합은 결국 불교의 이지성을 회복하자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해는 부처를 재공양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을 반대한다. 만해는 불교를 제사주의적 관행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근본적 교리에 입각한 이성적 불교로 환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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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과학이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자. 과학은 검증 가능성이란 최고의 기준을 만족해야 하지만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검증 가능성의 폭을 제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수준에서 참(true)으로 검증 가능했던 사실도 나중에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다. 과학은 그 점을 두려워하는 폐쇄된 것이 아니라 열린 창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과학은 현재 수준의 검증 가능성에 매달려 있다.

 예를 들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고전역학은 더 이상 물리학의 주역이 될 수 없으며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등이 과학적 사실의 주역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을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 즉, 현대과학의 자연관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전적인 의미의 환원주의와 기계론적 결정론을 통해서 과학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마땅히 비판되어야 한다. 이렇듯 현대 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의 대상인 화석화 되어 고립된 대상을 다루는 학적 체계에서 많은 부분 벗어나 있다.

 현대 자연과학의 대상은 요소들의 계량적 합으로서의 닫혀진 전체가 아니라 자기 창조적인 열려진 전체이다. 열려진 전체 속에서 개체들의 현상은 끝없는 무질서로 보일 수 있지만 그들 안에는 내재적인 질서가 존재한다. 내재적 질서의 경험적 발견이 곧 숨겨진 변수이며, 이로부터 자연의 인과성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인과율은 선험적으로 주어질 수 없으며, 항상 자연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기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바로 이러한 열린 과학의 입장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는 기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기본적인 접근방법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에 접근하는 과학적 방식은 기존의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존재론적 의미에서 기 혹은 인식론적 의미에서 기의 현산은 모두 물리적인 존재 혹은 현상으로 환원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환원되지 않으면 기와 기의 현상은 관념에 지날 뿐이라는 입장이다. 강하게 말한다면 물리적으로 환원 가능할 경우에만 가의 현상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검증될 것이며, 현실의 기술적인 문제로만 안 되지, 원리적으로 그리고 미래의 기술력을 통해 검증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셋째, 불가지론의 입장이다. 원리적으로는 환원되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환원적 방법에 의존한 과학기술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기는 기계론적이고 환원적인 과학방법론으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혈의 위치와 운동의 흐름을 림프구와 림프선 그리고 전자기이론 등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기를 자연과학적으로 검증한 셈이다. 한때 북한의 김봉한은 양의사로서 기를 자연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한 김봉한은 1960년대 초 경락의 흐름과 흐름의 실체를 당시 최고의 과학 측정장비를 동원하여 검증하려고 했고, 이를 봉한액 및 봉한소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이 이론은 당시 소비에트와 일본 학자에 의해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었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정권에 의해 알지 못할 이유로 김봉한이 숙청당하면서 그의 연구는 단절되었다.

 김봉한은 동위원소 p32를 고전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의 위치에 투입하여 경락을 통한 기의 흐름을 나름대로 해명하였다. 그는 전통 침술과 자연과학을 접목시켰으나 무작정 서구 과학방법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 고유의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급선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임파선이나 압통점과 같은 물리적 차원의 신체 지도 이론이 아닌 영위론(營衛論), 상한론에 근거한 장부론, 변증논치(辨證論治)의 고유 방법론에 의해 봉한소체 이론을 제시하였다. 물론 현재는 김봉한 봉한소체는 신경 말단의 감각수용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부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해부학적 감각수용기로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모종의 존재를 열린 과학으로 접근하려 했다는 점에서 김봉한 연구는 재평가될 만하다.

[동양철학산책/김교빈 최종덕 김눙용 전호근 김제란 김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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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맹자/네이버]


 맹자의 성선설

 사람은 누구나 남에 대하여 '차마 해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있다. 옛날 선왕(先王)은 이 불인지심이 있어서 남들에게 잔인하게 하지 못하는 정치가 있게 되었다. 정치인이 불인지심을 가지고 남에게 잔인하게 하지 못하는 정치를 하면, 세상을 다스리는 일은 이것을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쉬울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누구나 다 남에 대하여 불인지심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이 한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고 하는 것을 별안간 보았을 때 놀라고 측은한 마음이 생겨 가서 붙든다. 이것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 교제를 맺기 위한 것도 아니요, 동네 사람들과 벗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것도 아니요, 또 그냥 내버려 두었다고 원망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런 것에 의해서 살펴보면 사람치고 '측은히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요,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마음(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이다. 사람들이 이 사단(四端)을 지니고 있는 것은 마치 몸에 사지(四肢)가 있는 것과 같다. 이 사단을 지니고 있으면서 내 스스로가 선한 일을 잘 할 수 없다고 하는 이는 그 임금을 해치는 사람이다. 사람이 자기에게 있는 사단을 확충시킬 줄 알면 이것은 마치 불이 타서 번져 나가고 샘물이 솟아서 흘러가는 것과 같다. 정말 이것을 잘 확충시킬 줄 안다면 사해(四海)를 보존할 수 있을 것이요, 만약 이것을 확충시키지 못한다면 부모도 제대로 섬기지 못할 것이다.[맹자,공손추상/동양철학산책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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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함석헌(咸錫憲) 선생(1901.3.13~1989.2.4)/위키백과사전]


함석헌 선생과 노장 사상


독립운동가,종교인,언론인,출판인이자 기독교운동가, 시민사회운동가였던 함석헌 선생은 오늘날의 노장사상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그 분의 노자, 장자 사상을 대하는 태도를 그 분의 말씀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노자'에는 미명(微明)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보통 밝다면 환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모를 사람이 없지만, 그러나 이 천하만물을 살리는 참빛은 빛이 아닌 빛이다. 그러므로 이(夷)요, 희(希)요, 미(微)라고 한다. 숨은 빛, 가려진 빛이다. 예수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왜 숨겨져 있고 가려져 있나? 물건이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일은 힘의 표현이다. 힘은 강하지만 강하기 때문에 약하다. (중략) 모든 있음은 있음이 아닌 데서 나온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다. 모세가 당신이 누구십니까? 했을 때 온 대답이 '네가 왜 내 이름을 묻느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했다. 천지 만물은 자기 주장을 아니 하는 이, 자기를 무한히 내 주는 이, 스스로 희생하는 이가 있어야만 있을 수 있다. (중략) 세상에 악이 있고 불의가 있는 것처럼, 그 악과 불의가 있으면서도 세계가 서 가는 것은 진리가 있고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일은 없다.  노자는 이래서 도를 유(柔)한 것 약한 것으로 체험했다."


 "물질주의, 지식주의, 권력주의, 적극주의의 서구문명이 차차 사양길에 접어 들었고, 사람들은 그 산업 방법, 그 학문, 그 종교를 근본에서 고채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때를 당했다."라는 현실 인식에서 노자의 세 가지 보배, 즉 사랑(慈), 수수함(儉), 감히 천하에 앞장 못 섬(不敢爲天下先)의 카다란 가치를 이야기 하며, "하늘이 건져 주려 할 때는 사랑으로 둘러 준다(天將救之, 以慈衛之)."


 "사실 이날까지의 옛 글에 대한 모든 해석은 권위주의, 절대주의, 귀족주의, 고정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중략) 마지막으로 옛글을 고쳐 씹는 데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지금 있는 종교로부터 올 반대이다. (중략) 그럴 때 제일 문제되는 것은 권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는 석가나 예수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결코 형식에 거리끼지 않았다. 또 저쪽을 승인시키자는 것이 목적 아니었다. 그들에게 권위는 영(靈)에 있었지 글이나 제도에 있지 않았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새 해석을 하고 깨쳤다. 그러고는 옛날의 전통을 한 점 한 획도 무시하지 않노라고 했다. 눈으로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었다."


 "나는 노자, 장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숲 속에 깃들인 뱁새' 같이 '시냇가에서 물 마시는 두더지' 같이 날마다 그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이다. (중략) 나는 일제 시대에 '구약성경'의 '이사야', '예레미야'를 많이 읽었다. 그 압박 밑에서 낙심이 나려 하다가도 그들의 굳센 믿음과 위대한 사상에 접하면 모든 시름을 다 잊고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설 수가 있었다. (중략) 마찬가지로 이 몇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올 수 있는 것은 날마다 노자, 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산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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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

 

1.본성이 이치인가 마음이 이치인가

 주자학의 기본명제는 "본성이 곧 이치이다."라는 의미의 '성즉리(性卽理)'이고, 양명학의 기본명제는 "마음이 곧 이치이다."라는 의미의 '심즉리(心卽理)'이다. 주자학에서는 모든 사물이 각각의 이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이치가 있고, 개에게는 개의 이치가 있으며, 꽃에는 꽃의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치는 하늘이 정한 것이다. 하지만 양명학은 각각의 사물에 하늘이 정한 이치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모든 이치가 각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만물이 내게 갖추어져 있다."라고 한 말의 연장인 셈이다.

 

[사진 왕수인(왕양명)/네이버 지식백과]

 

 한번은 왕수인이 친구와 함께 유람할 때 한 친구가 절벽에 피어 있는 꽃나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세상에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는데 꽃나무는 깊은 산속에 있으면서 제 스스로 피고 지는 것이니 과연 내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자 왕수인은 "그대가 이 꽃을 보기 전에는 이 꽃과 그대 마음이 모두 고요할 뿐이었지만, 그대가 와서 이 꽃을 보았을 때 비로소 꽃빛깔이 일시에 또렷해졌으니, 곧 이 꽃이 그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답하였다.

이런 왕수인과 친구가 절벽에 핀 꽃을 보면서 나눈 대화가 양명학의 '심즉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주희/네이버 지식백과]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주자학과 양명학 모두 이(理)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유체계는 똑같이 관념론에 속한다. 다만 양자를 구분한다면 주자학은 내 밖의 사물이 객관적으로 있다고 보는 입장이므로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고, 양명학은 객관적 존재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린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모두 유학이며 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인본주의이다.

인본주의란 세계 만물의 기준을 사람으로 보는 인간중심주의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사물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인간 개개인의 판단에 달여 있기 때문에 그 개별 인간 하나하나가 만물을 재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얼핏 보면 유가의 인간중심주의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유학의 또다른 특징은 도덕중심주의이다. '성즉리'와 '심즉리'의 이가 자연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덕법칙인 것이며 그런 점에서 '성즉리'의 성은 도덕성이고, '심즉리'의 심은 도덕심이다.

 주희는 '성즉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보았다. 하지만 예전부터 전해 오는 '대학'에서는 격물치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고 보고 정이천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여 새로 134자를 만들어 넣었다.

 '격물치지'는 '사물에 나아가(格物)' '앎을 완성한다.(致知)'는 뜻이다. 이 말만 보면 앎의 대상이 사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궁극적인 탐구대상은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속에 들어 있는 이(理)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물궁리(格物窮理)'라고도 한다. 주희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만물은 모두 각각의 이를 지니고 있고 사람에게는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신령한 앎의 능력이 마음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탐구해 가다 보면 마침내 하루아침에 모든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물의 겉과 속, 정교하고 미세한 사물과 거친 사물 할 것 없이 사물의 이치가 다 깨달아질 것이며 내 마음의 온전한 본 모습과 그 마음의 활용이 밝아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주희의 말처럼 온 세상 만물을 다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희는 독서를 통해 깨닫는 것과 함께 유추법을 제시하였다. 유추법이란 10개 가운데 7~8개를 깨달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얼핏 보면 천하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쉽게 이해 되지 않는다. 이 점은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개와 고양이와 나무와 돌의 이치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모습과 역할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개의 이치는 어떤 것일까? 본래 성리학에서는 이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善)이라고 본다. 따라서 개의 이치를 따지는 일은 어떤 개가 가장 좋은(착한) 개인지를 찾는 일과 같다. 가장 좋은 개는 주인 잘 따르고 집 잘 지키는 개일 것이고 주인을 물거나 도둑을 보고 겁을 내는 개는 나쁜 개가 된다. 그리고 이런 평가 원칙은 지금 우리집에서 기르는 개만이 아니라 옆집 개와 뒷집 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른 나라 개들까지도 모두 해당되며, 이미 죽은 개나 앞으로 태어날 개에게도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리학에서는 이치가 사물 존재보다 앞선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착한) 고양이는 어떤 고양이일까? 쥐 잘 잡고 주인 잘 따르는 고양이가 착한 고양이일 것이며 이 원칙도 이미 죽은 고양이나 앞으로 태어날 고양이에게까지 해당된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목재로 쓰기도 좋으면서 예쁜 꽃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착한) 나무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개와 고양이와 나무의 이치는 다르지만 좋은 나무, 좋은 고양이 좋은 개로 생각을 넓히면 그 이치는 모두 같아진다. 따라서 모든 만물의 이치는 결국 선의 이치라는 점에서 같다는 결론이 나오며 이러한 이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사실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물의 이치를 따지는 것은 사람 중심의 논리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인 유학의 입장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서 깨달은 궁극의 진리는 그 이치가 내 속에 들어 있는 사람다움의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희는 만물의 이치를 다 합친 것이 태극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격물치지를 통해 궁극에는 태극을 깨닫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젊어서 주자학을 공부했던 왕수인은 주희의 격물치지 이론을 직접 실험해 보았다. 1주일 동안 대나무 앞에 앚아서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대나무만 바라보며 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하다가 병을 얻었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대나무대로 나는 나대로 있음을 경험하였다. 왕수인이 깨달은 것은 내 마음이 대나무에게 갈 때 대나무가 비로소 존재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타고난 양지를 잘 기르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왕수인의 생각은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되돌아 갔다. "내 생활은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들은 서로 비슷하고, 사람들도 모두 비슷해. 그래서 난 좀 권태로워.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은 것처럼 밝아질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너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될 거야. 만일 다른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는 땅속으로 숨을 거야.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밀밭이 보이니?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나한테 쓸모가 없어. 밀밭을 보아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그래서 슬퍼! 그러나 네 머리카락은 금빛이야. 그래서 네가 날 길들인다면 정말 신날 거야! 밀밭도 금빛이기 때문에 밀은 너를 기억하게 해줄 거야. 그래서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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