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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는 비록 태워지고 있더라도 그리고 고문을 당하고 있더라도,

아니 팔라리스의 황소 안에서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즐거운가!

그것을 나는 얼마나 개의치 않는가!

-에피쿠로스-


*팔라리스의 황소

로마시대 아그리겐툼(라틴어:Agigentum,오늘날의 아그리젠토 Agigento,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 남부 해안에 있는 도시)의 폭군이었던 팔라리스(기원전 약 570~564)가 자신의 반대자들을 그 안에 넣고 불로 볶는 데 사용했던 청동으로 만든 황소 모양의 고문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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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탈 전문회사 교원 웰스(Wells) 브랜드에서 자사 제품을 포함해 타사 일시불 비데와 일시불 매트리스를 전문으로 관리해주는 방문 관리서비스인 웰스 '홈케어서비스'를 출시했는데요,




이번에 출시된 방문관리 서비스인 웰스 '홈케어서비스'는 비데와 매트리스 뿐만 아니라 추후 세탁기와 에어컨 같은 한 번 구매를 하게 되면 비교적 오랫동안 사용하게 되는 이른바 내구재 제품들 중 위생 관리가 필요한 제품들로 점차 확대가 될 예정에 있다고 합니다.


그동안 비데, 매트리스, 세탁기, 에어컨 등 전문적인 관리를 받고 싶어도 지역의 한계나 제대로된 서비스 업체가 없어 관리를 맡기는 것이 힘들었다면 이번 교원 웰스의 홈케어서비스가 도움이 될만한 반가운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런 홈케어서비스가 반가운 이유는 오래된 전자제품을 보다 더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면서 제품 자체의 수명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비용이 조금 들더라도 훨씬 큰 비용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일텐데요,, 


현재 출시되어 있는 교원 웰스의 홈케어서비스는 비데와 침대 매트리스이고,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간략하게 한 번 보겠습니다.




첫째, 비데 홈케어서비스


[출처: 교원웰스렌탈몰]



[출처: 교원웰스렌탈몰]


1. 비데 작동 상태 점검

2. 비데 분해

3. 양변기 스팀 살균 클리닝(스팀세척)

4. 비데 및 비데 하단 클리닝(스팀세척)

5. 비데 노즐 살균 클리닝

6. 비데 재조립

7. 비데 외부 마무리 클리닝

8. 작동상태 확인 및 서비스 완료


※총 홈케어서비스 시간 60~120분 가량



"비데 분해 클리닝(세척) 서비스는 언제 받는 것이 좋을까요?"


1. 비데 설치 후 분해스팀 클리닝을 한 번도 안 했을 때

2. 빌트인으로 설치되어 관리가 어려울 때

3. 이사 후 재설치 할 때

4. 비데에서 냄새가 나거나, 사용할 때 불쾌한 기분이 들 때


비데 홈케어서비스 가격


41,000원(1회 결제)


[비데 홈케어 서비스 자세히 보기]




둘째, 침대 매트리스 홈케어서비스


[출처: 교원웰스렌탈몰]


[출처: 교원웰스렌탈몰]


1. 매트리스 오염도 확인

2. 프레임 케어

3. 프레임 워싱

4. 매트리스 바디 케어

5. 매트리스 사이드 케어

6. UV 자외선 살균

7. 방 공기정화

8. 진드기 기피 패치 부착


※총 홈케어서비스 시간 60분 내외


[출처: 교원웰스렌탈몰]



"침대 매트리스 케어가 필요한 이유는?"


1. 매트리스에 떨어진 사람 피부 각질 1g은 진드기 100만 마리의 하루 양식

2. 따뜻하고 안락한 침대시트에는 약 150만 마리의 진드기가 살고 있다고 함

3. 침대에 쌓인 초미세먼지는 흡연보다 폐질환 위험을 크게 높임



침대 매트리스 홈케어서비스 가격


1. 멤버십(1년 4회/1년 약정)

원베드 싱글 11,000원/퀸 12,500원/킹 14,200원

투베드 싱글 14,200원/퀸 15,800원/킹 17,400원


2. 1회 케어(1회 결제)

원베드 싱글 35,000원/퀸 40,500원/킹 45,000원

투베드 싱글 45,000원/퀸 50,000원/킹 55,000원


[침대 매트리스 홈케어 서비스 자세히 보기]




이상으로 교원 웰스 홈케어서비스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봤는데요,

교원 웰스 홈케어 신청 방법은 아래의 순서이니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1661-9953으로 전화 문의 신청 > 비용결제 > 방문일 예약 > 웰스 홈마스터 방문 



[출처: 교원웰스렌탈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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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출처: SK매직샵 다이렉트 렌탈샵]



열탕소독을 위한 하트박스 사용방법 예제

SK매직 식기세척기 DWA-61R0P


※단, 해당 영상은 권장방법으로 순서가 변경되어도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SK매직 열 분사 방식의 열탕소독이란?

일정 시간동안 한 곳에만 뜨거운 열이 전달되지 않도록

2개의 회전날개가 내,외부에 골고루 열을 분사시키면서

소독하는 방식으로, 플라스틱과 실리콘의 변형을 최소로 방지하며

99.9% 살균을 위한 최적의 온도 범위인 70~85˚C로 살균는 열탕소독 방식.

(한국화학 융합시험 연구원 기관(KTR) 시험 인증)



1. 하트박스 하단 바구니의 양쪽에 있는 상, 하 날개를 밖으로 펼쳐주세요


2. 하트박스의 상부 커버를 열어 젖병의 뚜껑, 캡 등을 담아주세요 (뚜껑에 물이 고이지 않도록 영상처럼 뚜껑, 캡 등의 입구가 아래를 향하도록 하세요)


3. 상부 커버에 실리콘 젖꼭지가 위를 향하게 해서 안쪽까지 끼워주세요


4. 젖병의 입구가 아래로 향하도록 하트박스 양쪽 날개에 꽂아주세요.


5. 식기세척기 우측 접시꽂이 부분을 눕혀주세요 (① 핀을 앞으로 밀어 ② 옆으로 눕혀주세요)


6.접시꽂이를 눕힌 자리에 하트박스를 올린 후 식기세척기 도어를 닫아주세요


7. 열탕 소독 코스 버튼을 눌러 시작하여주세요(35분 코스) 8. 85도씨의 뜨거운 물로 열탕 소독을 진행합니다. (99.9% 살균, 한국화학융합시험 연구원기관 테스트 완료)


※SK매직 열탕소독 식기세척기는 일정 시간 동안 한 곳에만 뜨거운 열이 전달되지 않도록 골고루 열을 분사시키면서 소독합니다.


9. 열탕소독 코스가 종료되면 자동으로 문이 열립니다. (자동 문열림 기능 ON 상태에서만) 10. 코스가 완전히 종료된 뒤 하단 바구니를 앞으로 당겨놓으면 건조에 도움이 됩니다.



[SK매직 열탕소독 코스 자세히 보기]


[내용출처: SK매직샵 다이렉트 렌탈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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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녀의 혼인연령은 '경국대전'에는 자녀의 나이가 13세가 차면 의혼(議婚)을 허락하되 혼인은 남자 15세 이상, 여자 14세 이상이 되면 허락한다고 하였다. '주자가례'에서 혼인할 수 있는 나이를 남자는 16세 이상, 여자는 14세 이상으로 한 것에 비하면, '경국대전'에서는 남자의 나이만 한 살 낮춘 것이다.


그리고 '경국대전'에서는 사족의 딸이 가난하여 서른이 넘도록 혼인하지 않은 경우에는 나라에서 결혼에 필요한 자재를 지급하고, 특별한 이유 없이 혼인하지 않은 경우에는 가장을 처벌한다고 하였다. 나라에서는 나라살림을 풍족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구가 늘어야 하므로 이러한 조항을 두었으나, 사실상 이러한 조처가 새행된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덕무(李德懋, 1741.영조 17∼1793.정조 17)가 쓴 '김신부부전(金申夫婦傳)에 보이는 바로는 1791년(정조 15)에 서울 사람 가운데 혼인 적령기가 지났어도 가난 때문에 혼인하지 못한 자들에게 혼인자금으로 돈 50냥과 베 2필씩을 하사하여 150명이 결혼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호적을 살펴보면 조선시대에는 대개 15세 내지 20세에 혼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양반의 경우는 어린 나이에, 일반평민들은 나이가 더 들어서 결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양반, 평민을 막론하고 대개는 남자 쪽이 나이가 많았다. 19세기에 접어들어 일부 양반가에서 여자가 더 나이가 많은 경우가 자주 발견되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었다.


15세에서 20세 사이는 지금의 중, 고등학생 나이에 해당된다. 그래서 이를 흔히 조혼(早婚) 풍속으로 일컫는다. 이러한 풍속은 고려 때 몽고 지배하에서 처녀를 공녀(貢女)로 원(元)나라로 끌고 가기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서 시작되었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없다.


조선시대 조혼/출처: 중앙일보


그런데 조혼이라는 개념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물론 어린 나이에 혼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린 나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그것은 성인 남녀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나이가 시대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혼인조건에서 중요한 것은 남녀 간의 사랑이지만, 예전에는 그런 것은 혼인조건이 될 수 없었다. 부모가 정해 주면 혼인할 뿐이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남녀가 혼인해서 가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력이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혼인을 통해 남녀가 가장 기초적인 소비단위인 가정을 이루고 살아갈 때에 경제력은 가정을 유지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혼인이 얼마나 경제적 요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가는, 현대사회의 통계에서 경제상황이 좋아질수록 이혼 증가율이 낮아지고 경제상황이 나빠질수록 이혼 증가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확실하게 보이고 있다.


경제성장률과 이혼증가율 추이/ⓒ한겨레


두 꺾은선그래프는 완전히 대칭을 이루고 있어 상관관계가 아주 밀접하다는 것을 실감나게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조혼도 이런 경제적인 요소로 설명될 수 있다. 2016년 한 결혼정보 업체가 밝힌 통계에 의하면 현재 평균 초혼 연령은 남자 36세, 여자 33세라고 한다. 이러한 만혼(晩婚)경향은 최근 몇십년 사이에 엄청난 속도로 가속화되었다. 이렇게 혼인이 늦어진 데에는 경제적인 조건이 작용했다. 한 사람이,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완전한 성인이 되어 가정의 경제를 책임질 만한 조건을 갖추었는가 하는 것이 결혼의 전제조건이었다. 군 입대, 고학력화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한 사람이 한 가정을 책임질 만한 사람으로 성장하기까지는 매우 오랜 시일이 걸린다. 또 주거비용이 턱없이 높아지면서 주택 마련에 많은 비용이 들고, 이에 상응하여 여자의 살림살이 마련 비용도 늘어나면서 결혼에 이르기까지 많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20세가 가까워지면 농사꾼으로서 활동할 만한 체력과 기능을 갖추어 성인으로서 가정을 꾸려 갈 수 있었고, 주택을 마련하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도 아니었다. 양인 남자에게 16세부터 군역을 부과했던 것도 그만한 나이면 성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양반의 혼인연령이 일반평민보다 낮았던 것도 양반의 경우 혼인 당사자의 나이가 어려도 부모의 경제력이 혼인 당사자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일부 양만가에서 이른바 '꼬마신랑'이 등장했던 것도 양반가의 경제력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도 일반평민 남자들의 평균 혼인연령은 20세 가까이 되었다. 따라서 조선시대에 조혼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의 잣대로 단정할 일만은 아니다.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이해준 정승모 정연식 전경목 송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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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에 성리학이 도입되면서 조선시대에 접어들어 주자가례의 혼인절차는 대체로 그대로 이 땅에 정착되었다. 그런데 혼인에서 장작 중요한 문제는 혼례를 치르기까지의 세부적인 절차보다는 결혼 후에 부부가 어느 곳에서 살림을 시작하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것을 인류학에서는 거주규정(rule of residence)이라 하는데, 남자 쪽 집에 거주하는 것을 부처제(父處制), 여자 쪽 집에 거주하는 것을 모처제(母處制), 외삼촌 집에 거주하는 것을 외숙처제(外叔處制), 독립된 곳에 거주하는 것을 신처제(新處制)라고 한다.


기산풍속도첩 '장가'/ⓒ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중국의 친영제는 전형적인 부처제이지만 우리나라 풍속은 그렇지 않았다. 신랑이 처가 ㅉ고에 들어가 신혼살림을 시작하는 모처제가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도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입장(入丈)' 또는 '입장가(入丈家)'라 하였다. 글자 그대로 장인 집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이 말은 지금까지도 '장가든다'는 말로 남아 있다. 그리고 장가드는 혼인을 사위가 아내 집에 머물러 산다 하여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이라고 불렀다.


이 풍속은 유래가 아주 오랜 것이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고구려 풍속에 신랑 집과 신부 집에서 미리 약속이 이루어지면 신랑이 신부 집 문밖에서 자기 이름을 대고는 엎드려 절하면서 따님과 자고 싶다고 두세 번 하면 신부의 부모가 신랑을 자기 집에 들어가 살게 하는데, 집 담장 안 뒤쪽에 사위집(서옥 壻屋)이라는 작은 집에서 살림을 시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신부를 맞이할 때에 신부대(新婦貸)를 지불하지 않고 노역(勞役)으로 대신하는 봉사혼(奉仕婚: Service Marriage) 또는 노역혼(勞役婚)의 흔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봉사혼의 대표적인 예로는 이스라엘의 야곱이 외삼촌의 딸 라헬을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7년 동안 외삼촌의 집에서 일을 해야 했다는 '구약성경-창세기'의 이야기를 들 수 있다.


서류부가혼의 풍속에 따라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처가살이를 했고 아이들은 외가에서 성장했다. 김종직의 아버지 김숙자(金叔滋, 1389~1456)는 맏아들이면서도 처가살이를 했고, 경주 양동마을에서 태어난 회재 이언적(李彦迪, 1491~1553)과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는 고향이 제각각이었으며, 율곡 이이(李珥, 1536~1584)는 강를 외가에서 장장했는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처가살이 풍속 때문이다. 그래서 성종 때 예종 비 안순왕후(安順王后) 한씨의 동생 한환(韓懽)이 장인을 때리고 욕한 일에 대한 처벌을 의논하는 자리에서 우찬성 손순효가 "우리나라에는 중국의 친영하는 예(禮)가 없어 모두 처가를 '집'이라고 하고 처부(妻父)를 '아버지'라 하고 처모(妻母)를 '어머니'라 하여 부모로 섬기니" 중국의 법보다 무겁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래서 처가에서도 사위를 거의 자식과 같이 대우했다. 그래서 11세기 고려 문종 때에 공음전(功蔭田, 고려시대 5품 이상 관리에게 주어지던 토지로 자손에게 상속 가능한 토지)의 상속순위에서 사위는 아들 다음이었으며, 지방 향리의 자제를 기인(基人)으로 개경에 올려 보낼 때에도 순위는 아들, 손자, 사위, 아우, 조카의 순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유학자들은 이러한 풍속을 곱게 보지 않았다. 남자가 여자 집에서 사는 것은 양(陽)이 음(陰)을 따르는 것으로 하늘의 도(道)에 맞지 않는 야만적인 풍속이라고 비판했다. 그래서 1435년(세종 17)에 친영제에 따라 혼인하는 예법을 반포하고 그해에 태조의 서녀(庶女) 숙신옹주(淑愼翁主, ? ~ 1453년)를 파원군 윤평(尹泙)에게 시집보낼 때에 친영례를 행했는데, 그것이 조선에서 처음으로 행한 친영례였다.


기산풍속도첩 '시집가는 모양'/ⓒ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러나 나라에서 아무리 강권해도 일반백성들의 풍속은 변하지 않았고, 이는 양반관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친영례와 서류뷰가혼의 풍속을 절충한 반친영(半親迎)이 등장했다. 


16세기 중종 때부터 시작되었다는 반친영이란, 말 그대로 온전한 친영이 아니라 서류부가혼과 절충한 반쪽짜리 친영이다. 그런데 반친영이 어떤 혼인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진 것이 없다. 혼례식 절차야 어찌 되었든 어느집에서 부부가 결혼생활을 시작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최근까지 남아 있는 혼례습속을 보면 일정 기간 신부가 자신의 집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듯하다. 신랑이 신부 집으로 가는 것을 초행(初行)이라 하는데, 혼례식만 치르고 신부는 그대로 자신의 집에서 살고 신랑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서 가끔 신부 집에 재행(再行)을 오는 경우도 있고, 신부 집에 일정 기간 살다가 예전 자기 집으로 신부를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 기간이 1년인 경우는 해묵이, 1개월인 경우는 달묵이라 하였다. 신부가 집에 사흘 동안 있은 후에 3일 만에 시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3일우귀(三日宇歸)라 하였는데, 우귀란,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혼인풍속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 지역에 딸, 시대에 다라 상당한 차이가 있었을 것을 짐작케 한다.


17세기까지만 해도 일반적이었던 여러 가지 제도, 예컨대 자녀들이 아들딸 구분 없이 차례대로 돌아가며 부모의 제사를 지냈던 윤회봉사(輪回奉祀) 제도나, 아들딸 구분 없이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 주었던 자녀균분상속(子女均分相續) 제도는 우리나라와 베트남에만 있었던 독특한 제도인데, 그것들은 모두 서류부가혼이 바탕이 되어 형성되었다.


그러나 18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이런 풍속들이 차츰 변했다. 혼례는 비록 여자 집에서 치르더라도 살림은 남자 집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바뀌어, 남자가 '장가드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시집가는' 풍속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사위도 처가를 예전보다 멀리하게 되어 "처갓집 세배는 애두꽃 꺾어 가지고 간다"는 속담이 생기기도 했다. 4월 중순에나 피는 앵두꽃을 꺾어 세배 간다는 것은 처가를 소중이 여기지 않아 세배를 미루고 미룬다는 뜻이다. 처가에서도 예전에는 '반자식'으로 여겼던 사위를 이제는 점차 '백년손님'으로 여기게 되었다.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이해준 정승모 정연식 전경목 송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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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열녀춘향 수절가'에는 이도령이 밤에 춘향의 집을 찾아간 대목에서 월매가 한숨 쉬며 춘향에게 하는 말에 "무남독녀 너 하나를 금옥같이 길러 내어 보오항 같은 짝을 지어 육례 갖추어 여의자고 하였더니" 하는 대목이 있다. 혼인의 대명사인 육례(六禮)는 중국의 '의례(儀禮)'에 등장하는 것으로, 혼인을 치르기까지 거쳐야 하는 여섯 가지 절차를 말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실제 혼례절차는 남송(南宋)의 주자가 집안의 예법으로 만들었다는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라고 하였다.


기산풍속도첩 '초례상'/ⓒ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첫 번째 절차는 의혼(議婚)이다. 의혼은 양가에서 중간에 중매인을 통해 혼인을 의논하는 절차이다. 의혼은 혼인절차의 하나일 뿐 구체적인 형식도 없고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다. 중매인은 양가를 오가면서 주혼자(主婚者)와 혼담을 나누어 혼인을 성사시켰다. 요즈음 혼주(婚主)라고 부르는 주혼자는 당사자의 아버지나 할아버지, 큰아버지, 외할아버지 등 집안의 어른이 맡아 하는데, 반드시 남자가 하는 것은 아니어서 할머니가 맡기도 한다. 주혼자는 혼인에 문제가 생겨 법적 책임을 묻게 되면 그 책임을 지는 사람이기도 하다.

양가 사이에 중매인을 두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옛날에는 양반가에 연애결혼이란 없었다. '맹자'의 가르침에 "부모의 명을 기다려 중매인의 말을 듣지 않고 구멍을 뚫어 서로 엿보거나 담을 넘어 만나는 것은 부모와 온 세상 사람들이 천히 여긴다"고 하였다. 그래서 연애결혼은 예에 어긋나는 것으로 여겼다. 나이가 많은 홀아비나 과부의 재혼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는 중매인을 두지 않고 당사자끼리 약속하여 혼인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매우 드문 예였다. 대부분은 부모의 명에 따라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혼인하여 일생을 함께해야했다.


납채문/ⓒ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두 번째 과정이 납채(納采)이다. 의혼과정에서 혼인하기로 어느 정도 약정이 되면 먼저 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납채문(納采文)과 사주단자(四柱單子)를 보내고 신부 집에서는 신랑 집에 택일단자(擇日單子)를 보내는데, 이 과정을 납채라고 한다. 납채문에는 대개 주혼자의 이름으로 보잘것없는 집안의 어리석은 자식을 배필로 맞아 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면서 납채예물을 보내니 혼례날짜를 잡아 연락해 달라고 신부 집에 보낸다. 신랑 집에서는 납채문과 함께 일명 사성단자(四星單子)라고도 하는 사주단자를 보내는데, 신랑이 태어난 연월일시를 쓴 것이다.


사주단자를 받은 신부 집 주혼자는 신랑의 사주를 토대로 궁합(宮合)을 본다. 궁합뿐 아니라 복명(卜命)이라는 이름으로 백년해로할 수 있는지 점을 치고, "갑자을축 해중금(海中金)"하는 식으로 60갑자를 순서에 따라 금, 목, 수, 화, 토 오행에 맞추어 길흉을 따지는 오행상극(五行相剋)을 보아 서로 상충되는 바가 있는지 알아본다. 또 원진살(元嗔煞)이라고 하여 부부가 서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살이 있는지 디를 통해 알아본다. 예컨대 소는 말이 밭 갈지 않는 것을 미워하고 말은 소의 뿔을 싫어하니, 소띠와 말띠는 혼인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게다가 신부가 태어난 해와 혼인하는 해가 서로 어울리는지 합혼개폐(合婚開閉)라는 것도 본다. 물론 이 모든 것을 다 점치는 것은 아니지만 혼인의 길흉을 알아보는 방법으로는 이렇게 많은 방법이 있었다.


연길단자/ⓒ문화컨텐츠닷컴


이렇게 까다로운 궁합은 확실한 근거는 없지만 결혼이 자녀의 일생을 좌우할 중요한 선택이고 불확실한 선택이기 때문에 무언가에 의지하려는 생각이 만들어 냈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이 집에서 청혼이 들어왔을 때 특별한 이유 없이, 또는 노골적으로 싫은 이유를 대어 청혼을 거절하면 서로 사이가 나빠질 것을 염려하여, 청혼을 거절할 수 있는 핑곗거리로 삼기 위해 이런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만들어 놓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합혼개폐도 한(漢)나라 때에 흉노족이 청혼을 할 때에 그것을 거절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든 것이라는 말이 전한다. 택일단자는 연길단자(涓吉單子)라고도 한다. 신부집에서는 혼인날짜를 잡아 신랑 집에 연길단자를 보내 혼인날짜를 통보한다.

납채과정은 지금의 혼인절차로 말하자면 약손힉과 같은 것으로, 완전하지는 않지만 상당한 구속력을 갖게 하는 절차이다.


세 번째 과정은 납폐(納幣)이다. 납폐는 대개 혼인하기 전날 이루어지는데, 혼서(婚書)라고도 부르는 납폐문(納幣文)과 빙재(聘財)라고 예물을 함에 넣어 신부집에 보내는 과정이다. 혼서에는 보잘것없는 집안에 따님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며 예물을 보내니 살펴보아 달라는 인사를 하면서 청홍채단(靑紅采緞) 예물과 함께 함에 넣어 함진아비 편에 신부 집에 보낸다. 함은 대개 나무로 짜는데, 주로 버들고리나 대나무로 엮은 상자에 옷을 담아 두고 쓰던 시절에 나무로 짠 함은 신혼부부의 첫 번째 가구였다.


기산풍속도첩 '함진아비 행렬'/ⓒ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납폐는 아직 예식을 치른 것은 아니지만 납폐가 끝나면 혼인이 정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했고 법적으로도 그러했다. 그래서 납폐가 끝난 후 신랑이나 신부가 죽으면 아직 혼례식을 치르지 않았더라도 상대방은 상복을 입어야 했다.

납폐 후에 마지막 절차로 친영(親迎)이 있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맞아 집으로 데리고 오는 과정이다. 신랑이 신부 집으로 신부를 맞이하러 갈 때에는 대개 백마를 타고 갔다는 기록이 고려 말에 보이는데, 조선 후기 풍속화를 보면 그때까지도 신랑은 백마를 타고 가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친영 행렬에서 기럭아비(雁夫)는 빨간 보에 싼 목기러기(木雁)를 안고 행렬의 앞장을 선다. 요즈음 흔히 신부가 혼수품으로 가져와 신혼부부의 살림방에 두는 쌍기러기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목기러기는 신부가 아니라 신랑이 마련하는 것이며, 두 마리가 아니라 한 마리만 가져간다. 기러기는 신랑의 신부에 대한 신의의 표시로 가져간다고 전해진다. 신부 집에 도착하여 이 기러기를 상 위에 올려놓는 것을 전안(奠雁)이라고 하는데, 혼인날을 전안일이라고 부른 것은 여기서 유래되었다.


단원풍속도첩 '신행길'/ⓒ국립중앙박물관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집에 오면 신부는 신랑 집에서 첫날밤을 치르고 다음날 아침에 시부모를 뵙는 현구고례(見舅姑禮)를 올리는데, 이때 이른바 폐백(幣帛)을 올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신랑은 신부 집에 가서 처부모와 처가 친척들을 뵙는 것으로 친영의 절차를 모두 마친다.

본래 혼례식에 관직이 있는 남자는 사모(紗帽, 조선시대 백관(百官)이 주로 상복(常服)에 착용하던 관모)와 품대(品帶, 벼슬아치의 품계 및 옷에 따라 갖추어 두르는 띠를 이르던 말)를 착용하는 것을 허락하고, 지위가 높은 여자는 원삼(圓衫, 부녀의 예복으로 갖추는 웃옷의 하나)을 입을 수 있었지만, 관직이 없는 사람은 일반적인 사대부의 옷차림에 갓을 쓰고 조아(條兒)라는, 색실을 꼬아 ㅏㄴ든 가는 띠를 띠어야 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는 관습적으로 일반백성들도 사모와 품대를 띠고 혼인하게 되었던 듯하다. 혼인 당일만은 호사를 해 보고 싶은 마음에 너도나도 일반적인 격식을 어기고 화려한 혼례를 치르게 되자 나라에서도 어느 정도 묵인한 결과로 짐작된다.


-'전통사회와 생활문화' 이해준 정승모 정연식 전경목 송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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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여 전, SK매직에서 히터방식(열선 등으로 처리된 히터가 발열을 하고, 팬 등을 이용해 공기를 순환시켜 그 더운 공기로 빨래를 건조하는 방식) 의류건조기를 렌탈로 출시하면서 저렴한 비용에 상대적으로 높은 성능으로 많은 인기와 함께 의류건조기 보급량을 급격하게 늘려왔는데요, 최근 비용면에서는 단점이 있지만 실내설치가 가능해 보다 유용하다고 평가받는 히트펌프 방식의 10kg 대용량 의류건조기 2종을 렌탈 출시했습니다.



SK매직 히트펌프 대용량 의류건조기/10kg

WDR-HM10B(화이트 크롬)

렌탈 월 32,900원


SK매직 히트펌프 대용량 의류건조기/10kg

WDR-HM10C(메탈릭 실버)

렌탈 월 34,900원



히트펌프 방식이란?




여기서 히트펌프(열 펌프, heat pump) 방식이란 저온의 열원서 열을 흡수해 고온의 장소에서 흡수한 열을 방출하는 방식을 말하며, 의류건조기에서 냉매를 순환시켜 건조통을 데우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다른 건조방식과 비교했을 때, 낮은 온도로 건조시키기 때문에 옷감의 손상을 줄여주고 소음이 적으며, 열이나 물을 배출하는 별도의 배관이 필요하지 않아 거실과 같은 실내 장소 어느 곳이든 설치가 가능한 의류 건조기를 말합니다.

이러한 히트펌프 방식의 건조 방식은 일명 저온제습 건조 방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럼, 히트펌프 의류 건조기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히트펌프 방식 의류 건조기 장점

*실내 설치가 용이하다.

*소음이 상대적으로 적다.

*사용의 편리함

*경제적인 전기료


히트펌프 방식 의류 건조기 단점

*히터방식에 비해 건조시간이 길다.

*실내 설치시 약간의 소음문제



현재까지는 히트펌프 방식 건조기가 단점 보다는

장점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사실!




SK매직 히트펌프 의류건조기 주요 기능들


SK매직 히트펌프 대용량 의류건조기/ⓒSK매직샵


SK매직 히트펌프 대용량 의류건조기/ⓒSK매직샵


1. 특별코스

민감한 소재 등의 예비건조 또는

장기간 보관된 옷 입기 전 건조 기능


2. 선택코스

사용자가 원하는대로

온풍과 냉풍 조절


3. 면의류 건조

열에 강한 면이나 마(린텐)소재 건조


4. 셔츠 건조

얇은 셔츠나 블라우스 등 건조


5.울/섬세 건조

손 세탁이 필요한 섬세한 의류나

양모, 울소재 예비 건조


6. 합성의류 건조

합성섬유 및 홈방재질의 의류 건조


7. 예약 건조

건조 시작 시간 예약 기능

1시간 단위로 예약(최대 24시간 연장)


8. 시간설정

선택코스에서 시간 설정 기능

10분 단위로 예약


9. 건조정도

세탁물의 탈수 정도에 따라

건조 정도 선택(5분씩 건조시간 증가)


10. 조명/알림

드럼 내부츼 조명 ON,OFF

부저 소리 ON,OFF


11. 구김방지

건조 후 주기적으로 드럼이 회전하여

옷의 구김을 방지


12. 어린이 잠금

어린이가 임의로 조작하는 것을 방지



SK매직 히트펌프 대용량 의류건조기/ⓒSK매직샵



세부 사양


-모델명: WDR-HM10C/WDR-HM10B

-건조용량: 10kg

-6가지 건조코스(세부 건조코스 16코스)

-버튼 + 다이얼 작동 방식

-소비전력: 700W

-무게: 50kg(포장 55.5kg)

-사이즈(mm): 가로 595 X 깊이 640 X 높이 845

-한국의류시험연구원(KATRI) 3가지 유해세균

99.9% 이상 살균(살균마크 인증)


SK매직 히트펌프 대용량 의류건조기/10kg

WDR-HM10C(메탈릭 실버)

렌탈 월 34,900원


SK매직 히트펌프 대용량 의류건조기/10kg

WDR-HM10B(화이트 크롬)

렌탈 월 32,900원



[출처: SK매직샵, SK매직 다이렉트 렌탈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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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329호 '백자 청화 소상팔경 무늬 팔각 연적(白磁 靑畫 瀟湘八景文 八角 硯滴, 19세기 조선후기, 높이 12.6cm)'은 회화적인 기량이 돋보이는 초대형 팔각 연적(硯滴, 먹을 갈 때 벼루에 따를 물을 담아 두는 그릇)으로 연적의 윗면에는 구름 속에서 꿈틀대는 용의 모습을 음각과 양각기법을 활용해 매우 생동감있게 표현하였으며, 옆면에는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아름다운 전경 무늬가 표현돼 있다. 또한 팔각 면 중 물이 나오는 출수구가 있는 정면에는 당나라 시인 가도(賈道, 777~841)의 '심은자불우(尋隱者不遇)'의 구절 일부를 인용한 "동정추월(洞庭秋月)"이라는 소상팔경도의 제목과 "송하문동자 장한강동거(松下問童子 張翰江東去)"가 들어가 있다. 소상팔경(瀟湘八景) 무늬란 중국 후난성(湖南省), 퉁팅호(洞庭湖) 남쪽에 위치한 샤오수이(瀟水)강과 샹장(湘江)강 주변의 여덟 가지 절경을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를 말하는 것으로, 조선 후기에 청화백자의 무늬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보물 1329호 '백자 청화 소상팔경 무늬 팔각 연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329호 '백자 청화 소상팔경 무늬 팔각 연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329호 '백자 청화 소상팔경 무늬 팔각 연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329호 '백자 청화 소상팔경 무늬 팔각 연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329호 '백자 청화 소상팔경 무늬 팔각 연적/ⓒ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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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과 관련된 질환은 우리나라에서 매우 흔한데, 대표적인 위장질환으로는 위염, 소화성궤양, 위암 등을 들 수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위키백과


1. 원인

위염은 위점막의 염증반응을 야기할 수 있는 질환군으로 급성과 만성으로 분류된다. 급성위염은 위점막의 방어기전이 세균이나 자극성 물질에 의해 손상되었을 때 발생되는 질환으로 구체적으로는 세균감염(예: 식중독), 독하거나 과도한 알코올 섭취, 약물(예: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아스피린), 스트레스, 부식성 화학물질(예: 양잿물) 또는 독성물질의 섭취와 같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유발될 수 있다.

만성위염의 원인은 앞에서 언급된 급성위염을 일으키는 요인들이 원인이 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원인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Helicobacter pylori)균의 감염이다. 전체 만성위염의 70~80%가 이균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의 감염은 만성위축성위염을 초래할 수 있고, 위암으로 진전하는 소인이 된다.

소화성궤양은 위나 십이지장의 점막층이 둥그렇게 파인 상태이다.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이 있는데 위궤양은 소화성궤양의 약 15%에서 발생하며, 몇 주 내에 치유되는 경향이 있다. 십이지장궤양은 소화성궤양의 약 80%에서 발생하며, 대개 위산 분비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소화성궤양의 1차적인 원인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의 부작용이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은 현재 위궤양 환자의 70% 이상, 십이지장궤양 환자의 90% 이상에서 발견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과 궤양의 진전 사이에는 명백한 관계가 있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는 위산분비를 촉진시켜 장기간 사용자의 약 2~4%에서 매년 심각한 위장관 합병증을 유발하고, 이 약 사용자의 거의 25%에서 궤양이 발견된다.

이 밖에 흡연이 소화성궤양과 강력한 관련성이 있는데 흡연은 소화성궤양을 유발, 지속시키며, 재발시키는 중요한 원인이다. 치료를 해서 궤양이 없어졌다고 해도 담배를 계속 피우면 대부분 1년 이내에 궤양이 재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알코올, 차, 커피, 콜라의 궤양에 대한 인과관계는 명백히 드러난 것이 없으며, 스트레스 역시 원인으로 분명히 밝혀진 것은 아니다.

위암은 우리나라에서 발생빈도가 높은 암으로 흔히 만성위축성위염과 함께 발생하며, 식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짠 음식, 불에 탄 음식, 질산염 등이 영향을 미친다. 위에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이 있으면 발생률이 증가하고, 가족 내에서 자주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위(胃, stomach)의 구조/ⓒ(주)천재교육



2. 증상

급성위염에서는 식욕부진, 오심, 구토, 복부경련 또는 설사, 상복부 통증, 위장관 출혈 등의 증상이 갑자기 나타난다. 만성위염은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신에게 만성위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소화성궤양의 주 증상은 위 속이 비었을 때 가슴 정중앙 부위나 우상복부가 쑤시고 타는 듯하고 쥐어짜는 듯하며 갉는 듯하게 아프지만, 음식을 섭취하면 통증이 가라앉는 게 특징이다. 궤양이 심해지면 위의 근육층까지 구멍이 뚫리는 천공이 생기고, 혈관부위를 통과하여 침식해 들어가면 위출혈이 발생한다.

위암의 증상은 늦게 나타난다. 전형적으로 인접기관으로 퍼질 때까지 그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진단이 초기에 내려지는 경우가 드물다. 체중감소, 막연한 소화불량, 식욕부진, 포만감이나 경미한 불편감 등의 애매하고 지속적인 증상이 유일한 호소일 수 있다. 혈액손실로 인한 빈혈이 많이 생기고, 대변에 잠혈이 있다. 질병이 치료되지 않고 진행되면 악액질이 발생하고, 결국 위 부위에서 덩어리가 촉진된다.


3. 예방

세균에 감된된 식품에 의한 위염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안전하게 취급하고, 준비해야 한다. 장기적인 소화성궤양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을 확인하고,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된 환자 중 항생제로 치료받은 환자의 소화성궤양 재발률은 10%이나 치료받지 않은 환자의 재발률은 95%에 가깝다.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제, 스테로이드는 점액생성을 억제하여 궤양을 촉진시키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위암 예방을 위해서는 질산염을 함유하여 가공 처리되거나 훈제된 음식을 피하도록 하며, 비타민 C가 들어 있는 적당량의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포함된 식이가 권장된다. 2차예방이 매우 중요한데 위암은 1기에 발견되면 95% 이상 완치가 되므로 조기 발견을 위해 정기적인 내시경검사를 권장한다.




4. 관리

급성위염에서는 대부분 위염을 일으킨 원인을 제거하고 증상을 치료한다. 대개 일정기간 점막의 치유를 돕기 위해 금식을 시킨다. 식사는 처음에는 유동식으로 시작하여 점차 양을 늘리거나 일반식사로 전환하고, 자극적인 음식, 알코올 섭취, 흡연을 삼가도록 한다. 제산제와 H2 수용체 길항제(예: Famotidine)가 산의 분비를 감소시키고, 통증을 줄이기 위해 투여될 수 있다.

만ㅅ헝위염에서는 저섬유성 음식을 적은 양으로 자주 규칙적으로 섭취함으로써 불편감을 줄일 수 있다. 제산제와 H2 수용체 길항제가 투여되고, 악성빈혈이 있으면 비타민 B12를 투여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이 원인균이면 균을 박멸하기 위해 항생제를 투여한다. 주기적으로 위암검사를 권장하는데 특히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과 만성위축성위염으로 진단받은 환자에서 더욱 중요하다.

소화성궤양 치료의 기본은 투약으로 보통 6~8주간 시행된다. 제산제, H2 수용체 길항제, 점막 방어제가 궤양관리에 일차적으로 사용된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제균을 위한 약물치료로 국내에서는 프로톤 펌프 억제제(proton pump inhibitor: PPI), 클라리트로마이신(clarithromycin), 아목시실린(amoxicillin)을 투여하는 삼제요법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데,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의 성공적인 치료는 궤양 재발 발생률을 10% 이하로 감소시켰다. 또한 즉시 금연을 해야한다.

식이에서는 우유가 제산제의 역할을 하여 즉각적으로 통증을 완화시키므로 마시는 게 좋다는 의견도 있고, 우유의 단백질과 칼슘은 강력한 위산분비를 자극하므로 1~3시간 내 다시 통증을 일으키므로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다.

현재 궤양관리에는 어떠한 특별 식이도 필요하지 않으며, 죽을 먹는 것도 치유를 촉진시키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하지만 커피나 술은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좋고, 맵고 짠 음식은 삼가는 게 좋다. 또한 환자에게 불편감을 유발하는 음식을 제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천공과 같은 급성합졍증 관리를 위해서는 수술이 시행된다.

위암의 우선적인 치료는 수술이다. 종양의 위치에 따라 부분적 위절제술 또는 전체 위절제술을 한다. 수술 후 방사선요법과 항암요법을 병행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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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가장 큰 적이 고통과 권태라면, 자연은 이 두 적에게 맞설 두 가지 방어수단을 인간에게 주었다. 고통에 맞서기 위한 '명랑함'과 권태에 맞서기 위한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도 이 두 가지는 서로 가깝지 않으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양립하는 게 불가능하다.

"정신은 우울과 친숙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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