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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648호 만력기묘명 승자총통(萬歷己卯銘 勝字銃筒)은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는데, '만력기묘'라는 뜻 그대로 명나라 만력 기묘년 즉, 만력 7년인 1579년(선조 12)에 제작된 것으로 규가(揆加)라고 하는 장인(匠人)이 만든 것을 알 수 있다.

승자총통(勝字銃筒)은 불씨를 손으로 점화 및 발사하는 총통 중 휴대용으로 사용하도록 만든 개인화기이며, 1635년에 발행한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 무신 이서(李曙, 1580 선조 13∼1637 인조 15)가 총 쏘는 법과 화약 굽는 법을 기술한 '화포식'을 한글로 풀어 발행한 군서)'를 통해 탄환과 화실이 모두 사용 가능한 총통인 것을 알 수 있다.

 

전체길이 56.8cm, 통길이 34.8cm, 입지름 4cm, 무게 4.5kg으로 6마디의 대나무 모양을 띄고 있다. 약실쪽의 3마디의 간격을 총구 쪽 보다 좁게 만든 것은 화약의 폭발 위력을 감안해 터지지 않도록 만든 것며, 적과 가까이 붙었을 때를 대비해 곤봉처럼 근접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양각하였고, 손잡이는 음각으로 총통의 제작시기와 무게를 비롯해 제작한 장인(匠人)의 이름까지 새겨져 있다. 원래 나무 손잡이가 붙어 있었나 오래되어 소실되었다.

 

1578년(선조 8)에 전라좌수사와 경상병사를 지낸 김지(金墀)가 발명해 만들었으며, 1583년 이탕개의 난에서 효력을 발휘하였다고 전해진다. 크기와 화력에 따라 대승자총통, 차승자총통, 소승자총통의 세 종류로 나뉘며, 정철(正鐵, 참쇠라고도 하며 탄소 함유량이 낮아 단조 가공이 가능한 숙철熟鐵을 재정련하여 얻는 쇠로 수차례 담금질과 단조를 통해 쇠의 강도와 점성을 증대 시켜 도검이나 화약을 사용하는 화기에 주로 사용된 철)로 만들어졌다. 찬혈(鑽穴, 단조로 만든 총열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총열을 만드는 전통 기법)과 조성(照星, 총을 목표물에 조준할 때 이용하는 장치, 가늠쇠) 등은 조총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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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857호 대완구/국립중앙박물관



보물 857호 대완구(大碗口)는 손으로 불을 붙이고 쏘는 유통식 화기(有筒式火器)의 일종으로 총통 완구라고도 한다.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음각된 명문을 통해 대완구의 제작연도가 1845년(헌종 11)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완구는 주조기법이 수려하면서도 원형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전통적인 화포 연구와 국방 과학 기술 연구에 아주 중요한 유물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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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21호 천마총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1호 '천마총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는 말 그대로 손잡이 끝에 둥근고리를 만들어 붙인 형태를 하고 있는 칼로써 이러한 고리자루큰칼은 삼국시대 대표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천마총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는 5~6세기 신라에서 제작된 것으로 총길이 97cm크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천마총 주인의 왼쪽 허리춤에서 발견되었다.

보통 신라의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은 고리의 형태에 따라 그 종류를 나누는데, 민무늬, 세잎무늬(三葉 삼엽), 세고리(三累 삼루), 용무늬, 봉황무늬, 용봉무늬가 있다.

(각각의 무늬에 따라 칼을 사용할 수 있는 신분이 나뉜다.)

천마총 환두대도(고리자루큰칼)는 용과 봉황이 장식된 용봉무늬에 속하는 것으로 용봉무늬 환두대도는 다른 종류에 비해 가장 늦은 시기에 유행한 형태이다.

고리와 봉황은 함께 청동으로 만들어 도금을 한 것이고, 칼집과 칼자루는 나무로 만들어 금동판을 씌웠다.

칼집에는 작은 칼과 꼬챙이를 끼우는 부위가 있는데, 이 중 작은 칼은 실전용이라기 보다는 칼 주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추측될 뿐, 정확한 용도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칼집에는 칼을 허리에 찰 때 사용했던 고리도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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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은 이양선 선생이 기증한 보물 1151호 '청동 옻칠 발걸이'는 말을 탈 때 사용하던 것으로 청동으로 만들었고, 흑칠을 한 것이 특징이다. 전체 모양은 덧버선과 흡사한데, 덮개에는 선을 촘촘하게 배치해 장식했고, 위쪽과 아래쪽에 구름 형태의 문양을 새겼다. 정확한 제작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일본 쇼소잉[일본 나라(奈良)의 도오다이지(東大寺)에 있는 목조 건출물,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발걸이와 비교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 14.7cm, 길이 12.1cm의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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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손기정 투구)/국립중앙박물관]



[보물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손기정 투구)/국립중앙박물관]



[보물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손기정 투구)/국립중앙박물관]



[보물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손기정 투구)/국립중앙박물관]



[보물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손기정 투구)/국립중앙박물관]



보물 904호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는 서구 유물로는 유일하게 국내 지정문화재로 등록된 사례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인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과 함께 부상으로 받은 투구이다. 하지만 당시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베를린 샬로텐부르크 박물관에 50여년간 보관되어 있었는데, 1986년 베를린 올림픽 개최 50주년을 기념하여 원래 주인인 손기정 선수에게 헌정의 형식으로 반환되었으며, 1994년 '이 투구는 내 것이 아닌 우리 민족의 것이다' 라는 뜻으로 국가에 기증한 것이다.

이 청동투구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코린트에서 제작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올림픽 제전 때 승리를 기원하면서 신에게 바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올림피아에서 발굴되었으며, 실제로 투구를 썼을 때 머리 부분은 눈과 입을 제외한 거의 모든 부분이 완전히 가려지는데, 이러한 형태의 투구는 고대 그리스 신전이나 기념비에 새겨진 무사상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실제로 이처럼 완벽한 원형을 유지한 예는 거의 없어 유물로써 가치가 높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마라톤 우승자에게 이 고대 투구를 주기로 되어 있었고, 당시 이대회에 출전한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2초의 기록이라는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우승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메달 이외의 부상을 수여할 수 없다'고 하는 올림픽 규정에 따라 이 투구는 손기정 선수에게 전달되지 못했고, 50여년간 베를린 샬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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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판갑옷과 투구/국립중앙박물관]


가야(5세기) 갑옷과 투구는 경상북도 고령 지산리 32호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로 투구, 어깨라리개, 판갑옷으로 각각 구성돼 있다. 투구는 사각형과 삼각형의 철판을 못으로 연결했으며, 어깨가리개는 좌우 2매로 가장자리에는 가죽 끈을 연결하기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갑옷은 네모모양의 긴 철판을 인체공학적으로 구부려 연결했다.





[김해 양동리 76호분 출토 가야 판갑옷과 투구/동의대학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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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청구관해방총도/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군사지도인 청구관해방총도(보물 1582호)는 북쪽을 지도의 윗쪽으로 배치하는 현대의 방식과 다르게 한반도를 옆으로 눕혀 그린 것으로 시점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동쪽을 지도의 위쪽에 배치하는 지도도 일부 만들었다.

총구관해방총도의 전체적인 크기는 '동국대전도(東國大全圖)'에 가까운 크기(285cmX86.3cm)로 아주 큰 편에 속하며, 동국대전도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지도의 오른쪽(남쪽)에는 일본의 위치도 간략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지도의 여백에 국경지역과 관련한 중요한 사항들을 붉은 글씨로 나타내고 있다.

산(山)지는 주로 산줄기를 강조하여 이어진 모양으로 표현했고, 백두대간의 모습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또한 압록강, 두만강 이북까지 지도상에 포함하고 있는 것도 동국대전도와 비슷하며, 특히 의주에서 산해관에 이르는 도로를 표시하였고, 몽고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운 울타리가 그려져 있으며, 울타리의 문이 비교적 자세하게 표현돼 있는데, 이는 국경지역에 대한 군사적 관심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 내부 지역에는 군사 기지인 진보(鎭堡)와 성곽들이 잘 그려져 있고, 붉은 선으로 중요 교통망을 표현했으며, 해안에는 방어시설과 관련된 백명을 단위로 하는 군대 편제인 초(哨)와 당(塘)이 각기 표시돼 있다.

당시 중요 통신망이였던 봉수는 횃불모양으로 표시했고, 요충지는 깃발모양으로 표시하는 등 직관적인 표현도 특징이다.

다만, 당시 섬이었던 안면도는 여전히 곶으로 표현하는 등 이전 시기 지도에서 나타나는 불완전한 부분도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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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5세기 신라시대 유물인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보물 632호)는 갑옷의 부속품으로 전장에서 팔뚝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팔뚝 모양처럼 팔꿈치 쪽이 넓고 손목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손목 부분을 감싸는 곳은 안쪽에서 끈을 걸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3개의 걸이가 있다. 중심선은 따라 꽃봉오리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으며, 비슷한 모양의 팔뚝가리개 유물로 금동제, 은제, 철제도 출토되었다.


길이 34.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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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862호 지자총통/국립중앙박물관]


[보물 862호 지자총통/국립중앙박물관]


[보물 862호 지자총통/국립중앙박물관]



경상남도 남해군 창선면 부윤리에서 출토된 보물 862호 '지자총통'은 조선시대 화포로써, 불씨를 손으로 점화하여 발사하는 유통식화포(有筒式火砲)이다. 크기가 천자총통 다음인 고유의 화포이다. 

총통에 새겨져 있는 음각된 글자를 통해 1557년(명종 12년)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는데, 포가 발사되는 총구에서 화약을 넣은 약실(약통)로 갈수록 두께를 두껍게 했으며, 두 개의 손잡이가 달려있었던 흔적이 있지만 손잡이는 모두 소실되어있다. 대나무 마디와 유사한 형태의 마디는 총구 부분과 합해 모두 10개로 되어 있으며, 앞에서부터 일곱 번째와 여덟 번째 마디는 서로 붙어 있는데, 약실(약통)과 격목통을 구분하는 것이다.

격목통은 화약을 넣은 다음 포탄(철환)을 넣기 전, 원기둥 모양의 나무를 포 속에 박아 넣는 곳으로 화약의 폭발력을 보다 강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장군전/두산백과]


[조란탄/e뮤지엄]



화약 20냥을 사용해 조란탄(鳥卵彈)이라고 하는 둥근 공 모양의 철환 200개 또는 쇠로 만든 화살인 장군전(將軍箭)을 주로 발사했는데, 장군전의 경우는 그 무게가 29근(600gX29근=17,400g)에 달할 정도로 무거웠는데 지자총통을 통해 발사했을 때 800보(약 1km)까지 날아갔다고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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