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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이 즉위한 지 몇 년 만에 유모 부호부인(鳧好夫人)과 그의 남편 잡간 위홍(魏弘, 제48대 경문왕의 친동생) 등 서너 명의 총애하는 신하가 정권을 쥐고 정사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도적이 벌 떼처럼 일어나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근심스러워하자 어떤 사람이 다라니(陀羅尼, 범어 dharani의 음역. 석가의 가르침의 정요精要로서, 신비한 힘을 가진 것으로 믿어지는 주문)의 은어(隱語, 특정한 집단에서 구성원들끼리만 사용하는 은밀한 용어)를 지어 길 위에 던졌다.

왕과 권력을 잡은 신하들이 이것을 손에 넣고 말했다.

"왕거인(王居仁)이 아니면 누가 이런 글을 짓겠는가?"

왕거인을 옥에 가두자 왕거인이 시를 지어 하늘에 호소했다. 그러자 하늘이 곧 그 옥에 벼락을 내려 모면하게 해 주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燕丹泣血虹穿日(연단읍혈홍천일)

연단의 피울음은 무지개와 해를 뀌뚫고,

※연단은 전국시대 진시황의 죽이려다 실패하고 죽임을 당한 연나라 태자 단을 말함.

 

鄒衍含悲夏落霜(추연함비하락상)

추연이 머금은 비애는 여름에도 서리를 내렸네

※추연은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으로 연나라 소왕의 스승이 되었지만 혜왕이 즉우하자 참소를 받아 옥에 갇혔는데 한여름에 서리가 내렸다고 한다.

 

今我失途還似舊(금아실도환사구)

지금 내가 길 잃은 것은 옛 일과 비슷한데,

 

皇天何事不垂祥(황천하사불수상)

아! 황천은 어찌하여 상서로움을 내리지 않나?

 

다라니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무망국 찰니나네 판니판니소판니 우우삼아간 부이사파가.

南無亡國 刹尼那帝 判尼判尼蘇判尼, 于于三阿干 鳧伊娑婆詞."

 

풀이하는 자들이 말했다.

"'찰니나제'란 여왕을 말하며, '판니판니소판니'란 두 명의 소판(蘇判, 신라 17관등 중 제3위인 잡찬의 별칭)을 말하는데, 소판이란 벼슬 이름이다. '우우삼아간'은 서너 명의 아간(阿干, 신라 17관등 중 제6위인 아찬의 별칭)을 말한 것이고, '부이'란 부호부인을 말한다."

 

거타지/문화컨텐츠닷컴

 

이때 아찬 양패(良貝)는 왕의 막내아들이었다. 그는 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백제의 해적이 진도(津島, 나루터와 섬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를 막고 있다는 말을 듣고 궁사(弓士) 50명을 뽑아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鵠島, 지금의 백령도, 지방에서는 골대도骨大島라 한다.)에 도착했을 때, 바람과 파도가 크게 일어 열흘 넘게 꼼짝없이 머물렀다. 공이 이를 걱정하여 사람을 시켜 점을 치게 했더니,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섬에 신지(神池)가 있으니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그래서 못에 제물을 차려 놓자, 못의 물이 한 길 남짓이나 솟구쳤다. 그날 밤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공에게 말했다.

"활 잘 쏘는 사람을 이곳에 남겨 두면 순풍을 만날 것이다."

공은 꿈에서 깨어나 그 일을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물었다.

"누구를 남겨 두어야 하는가?"

사람들이 말했다.

"마땅히 나무 조작 쉰 개를 만들어 우리들의 이름을 써서 바다에 던진 후 가라앉은 자의 이름으로 제비를 뽑아야 합니다."

공은 그렇게 했다. 군사 가운데 거타지(居陁知, 고려 태조 왕건의 할아버지인 작제건이 용녀를 아내로 맞이하는 설화와 유사하다.)란 사람의 이름이 물 속으로 가라앉았으므로 그를 남게 했다. 그러자 갑자기 순풍이 불어 배가 거침없이 나아갔다.

거타지는 수심에 잠겨 섬에 서 있는데 갑자기 노인이 못에서 나와 말했다.

"나는 서해의 신(神) 약(若)인데 날마다 승려 하나가 해가 뜰 무렵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를 외면서 이 못을 세 바퀴 돌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로 떠오른다오. 그러면 그는 내 자손의 간장(肝腸)을 모조리 먹어치운다오. 이제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았소. 내일 아침이면 반드시 또 그가 올 테니 그대가 쏘아 주시오."

거타지가 말했다.

"활 쏘는 일이라면 내 특기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그러자 노인이 고마워하고는 사라졌다.

거타지가 숨어 엎드려 기다렸다. 이튿날 동쪽이 밝아 오자 과연 승려가 나타나 이전처럼 주문을 외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려 했다.

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맞히니, 즉시 늙은 여우로 변해서 땅에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노인이 나와 감사해하며 말했다.

"공의 은혜를 입어 내 목숨을 보존하게 되었으니 내 딸을 그대의 아내로 주겠소."

거타지가 말했다.

"제게 주신다면 평생을 저버리지 않고 사랑하겠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딸을 한 송이 꽃으로 바뀌게 해 거타지의 품속에 넣어 주고는, 두 용에게 거타지를 데리고 사신의 배를 뒤쫓아가 그배를 호위하여 당나라로 들어가도록 명령했다.

당나라 사람들은 신라의 배가 용 두 마리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오는 것을 보자 그 사실을 위에 보고했다.

황제가 말했다.

"신라 사신은 반드시 비범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연회를 열어 신하들의 위에 앉히고 금과 비단을 후하게 주었다. 나라로 돌아와서 거타지가 품에서 꽃송이를 꺼내자 꽃이 여인으로 바뀌었으므로 함께 살았다.

-삼국유사 권 제2 紀異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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