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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페르시아에 이어 인도, 파키스탄까지 비슷한 문화권으로 엮을 수 있는 것은 이들이 지역적으로 근접한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이슬람의 영향을 먼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같은 '동양'이면서도 아랍과 페르시아는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은 (서)남아시아로 구분된다. 게다가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지만 인도는 힌두교 국가이다. 인도인구의 80% 이상이 힌두교도이고, 인도를 찾는 수많은 여행객도 어렴풋하게나마 힌두교의 정신세계에 호기심 어린 관심을 가지고 힌두교의 대표적인 성지인 바라나시에 몰려들어 인도사람들과 함께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곤 한다. 그러나 이슬람을 이야기할 때 인도를 빼놓고 얘기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인도 인구의 10% 이상이 이슬람이기 때문이다. 10%면 얼마 안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도 인구가 11억이 넘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이슬람교도가 인도에 살고 있는지 금방 계산이 나온다. 실제로 인도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이슬람교도가 많은 나라이다. 게다가 건축, 미술, 문학,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예술분야에서 이슬람의 영향, 즉 아랍과 페르시아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7세기부터 세력을 확장하여 아랍, 페르시아, 터키에 비슷한 문화를 심은 이슬람이 인도에까지 이슬람 왕조를 세우게 된 것은 12세기부터였다. 이때부터 아랍과 페르시아문화가 서서히 인도로 들어오게 되는데, 특히 인도 최대의 이슬람 왕국인 무굴제국(Mughul, 1526~1857)이 힌두교 관용 정책을 펼치면서, 힌두문화와 이슬람문화가 자연스레 섞이기도 하고 인도의 이슬람문화가 한껏 꽃피울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었다. 유명한 타지마할 역시 무굴제국이 낳은 이술람건축의 걸작으로 황제 샤 자한(Shah Jahan, 1592~1666)이 사랑했던 왕비를 추모하며 지은 궁전형식의 아름다운 무덤이다. 1700년경 무굴제국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며 현재 인도 영토의 대부분을 손에 넣게 되지만 남부까지 완전히 장악하지는 못하였다. 그 결과 이슬람은 무굴제국의 수도였던 아그라를 중심으로 북인도와 지금의 파키스탄에서 뿌리를 내린 반면, 인도 남부는 여전히 힌두세력이 강하게 유지되었다.

무굴제국 지도/ⓒ네이버지식백과

무굴제국이 무너지고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한 후에도 인도의 이슬람세력은 인도 북부에 그대로 남아 인도 북부와 남부 사이의 문화적 차이를 지속시켰으며, 정치적으로는 인도이슬람연맹을 조직하여 이슬람 국가 독립을 도모하게 된다. 결국 1947년 인도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 파키스탄은 이슬람 국가로서 인도에서 분리,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이슬람의 영향은 인도에 그대로 남아 지금까지도 인도 북부와 남부는 문화적으로 구별되는 요소가 상당히 많다. 예컨대, 인도 내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힌두어와 영어 외에도 10여 가지의 공용어가 사용되고 있는데, 북부는 힌두어와 그와 가까운 언어가 주로 사용되며 남부는 드라비다어족의 언어가 주로 사용된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고전음악양식이 남부와 북부가 서로 달라, 남부의 고전음악인 카르나틱(Carnatik)음악은 힌두전통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있는 반면, 북부의 고전음악인 힌두스타니(Hindustani)음악은 힌두와 이슬람, 인도와 페르시아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다문화융합의 정수이다. 따라서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인도문화의 특성과 그를 대표하는 음악 역시 카르나틱음악 보다는 다문화융합적인 힌두스타니음악이 보다 인도음악의 특성을 잘 나타내주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시타르와 타블라, 라가와 탈라

 

동양권 음악 중에 서양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은 어느 나라 음악일까? 다소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인도음악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인도음악을 꼽는 사람들이 곧바로 떠올리는 인도음악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이국적이면서도 오랜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는 음악, 명상의 세계로 초대하듯 편안하고도 아름다운 음악, 그래서 그 유명한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을 한없이 인도로 이끌어간 음악, 그런데 바로 이 유명한 인도음악은 사실상 힌두스타니음악, 즉 북인도의 고전음악이다. 힌두스타니음악만큼이나 유명해져 인도음악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힌두스타니음악에 쓰이는 두 개의 악기, 즉 선율악기인 시타르와 타악기인 타블라가 바로 그것이다.

시타르/ⓒ전북일보
타블라/ⓒ위키백과

시타르(sitar)는 페르시아 고전음악에 사용되는 선율악기, 세타르(setar)에서 파생된 악이이다. 이름도 비슷하고 목이 긴 류트(lute) 계열이 라는 점도 비슷하지만, 인도의 시타르는 페르시아의 세타르보다 목의 폭도 훨씬 넓고 울림통도 훨씬 크며 소리 역시 많이 다르다. 인도음악 하면 떠오르는 신비스러운 소리의 주인공이 바로 이 시타르인데, 커다란 울림통 덕분에 소리가 멀리 퍼져나가며 선율을 만들어내는 6~7개의 현 외에 9~13개의 울림현(혹은 공명현)이 있어서 신비로운 느낌이 배가된다. 또한 시타르연주를 들어보면 주선율 외에 저음으로 계속 이어지는 지속음을 들을 수 있는데, 지속음 위에서 연주되는 선율, 그리고 그 선율을 "웅웅"거리면서 받쳐주는 울림현의 소리가 힌두스타니음악의 독특한 맛을 자아낸다.

시타르에 더해지는 타블르(tabla) 소리 또한 힌두스타니음악의 매력을 한층 더 살려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드럼을 뜻하는 아랍어, 타블(tabl)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타블라는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작은 드럼세트로 구성되어 있으며 손가락과 손바닥으로 연주한다. 단 두 개의 작은 드럼에서 나온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양한 소리를 뽑아내며 현란한 리듬 세계를 펼쳐 보이는데, 그 안에서 선율감까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타블라음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다. 타블라음악은 대부분 악보 없이 구전으로 전승된다. 한국의 장구를 연주할 때 "덩덩덕쿵덕"과 같은 구음을 붙이며 연주하듯, 타블라도 "다다떼떼 다다뚠나"와 같은 구음을 붙여 연주하는데, 타블라의 구음은 타블라를 두드리며 내는 소리만큼이나 흥미롭기 그지없다. 타블라는 북인도 고전음악뿐만 아니라 다른 장르의 인도음악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인도 최고의 타악기로 인도와 파키스탄음악 그리고 서구음악과의 다양한 퓨전음악에까지 두루 활용되고 있다.

 

아랍·페르시아 연장선상에서 인도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이유는 아랍·페르시아음악의 특징이 인도음악에서도 보이기 때문이다. 즉 미분음과 풍부한 장식음이 쓰이며, 아랍의 마캄, 페르시아의 다스트가에 해당하는 선법체계인 라가(raga)를 바탕으로 음악이 만들어진다. 산스크리트어로 색채라는 뜻의 라가는 북인도 고전음악은 물론, 남인도 고전음아그이 핵심요소로서 마캄이나 다스트가와 같이 다양한 라가에 따라 기본적으로 쓰이는 음계나 중요한 선율의 윤곽이 정해지지만 연주자의 솜씨에 따라 같은 라가도 다르게 연주된다. 따라서 인도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라가가 연주자에 따라 어떻게 연주되는지를 즐기기 위해 공연장을 찾곤 한다. 보통 라가연주는 앞서 살펴본 수피댄스의 반주음악과 비슷한 음악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먼저 시타르 혼자 리듬감 없는 즉흥연주로 라가에 사용될 음들을 저음부터 고음까지 천천히 훑으며 연주하다가, 리듬감을 가미하여 연주하기 시작하면 타블라가 가세하고 점점 속도가 빨라지면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때 타블라연주는 선율체계가 아닌 리듬체계에 근거해 연주하게 되는데, 바로 이러한 인도의 리듬체계를 탈라(tala)라고 부른다. 산스크리트어로 손뼉을 친다는 뜻의 탈라는 아랍·페르시아음악에 없는 요소이다. 선율체계인 라가와 리듬체계인 탈라를 바탕으로 시타르와 타블라가 즉흥성을 더하면서 서로 풀어나가는 음악적 묘미가 인도음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라비 샹카와 조지 해리슨

 

인도음악이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은 1950년대 중반, 인도 정부가 인도음악가들을 해외로 파견하여 공연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물론, 무굴제국 시기인 18~19세개, 인도를 두고 영국과 프라스의 패권다툼이 벌어지면서 인도문화와 유럽문화 간의 통로가 일찌감치 생겨났었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195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한 인도음악은 빠른 속도로 서구인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특히 클래식, 팝을 망라한 전문음악인들은 인도음악에 즉시 매료되어 직접 인도를 방문하기까지 하는데,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바로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Yehudi Menuhin, 1916~1999)이었다. 인도음악에 감명을 받은 메뉴인은 직접 인도를 방문하는가 하면, 인도음악가를 미국으로 초청하여 음악회를 열었고, 이를 계기로 인도음악가들의 미국 진출이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힌두스타니음악을 연주하는 시타르 연주자로서 인도음악을 서방세계에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라비 샹카(Ravi Shankar, 1920~)이다.

라비 샹카는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 1943~2001)과의 만남으로도 유명한데, 사실상 서구세계에서 시타르가 유명해진 것은 조지 해리슨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조지 해리슨은 우연한 기회에 시타르연주를 듣고는 곧 시타르에 반하게 된다. 그는 즉시 시타르를 사서 혼자 연습하여 비틀스의 새 노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 1966)>에서 시타르를 연주해 넣었고, 그리고는 얼마 후 영국에 온 라비 샹카를 만나게 된다. 이 만남을 계기로 인도로 가는 해리슨의 끝없는 여정이 시작된다. 해리슨은 장기간 인도에 무물면서 샹카에게서 시타르를 배웠고, 인도철학과 종교에 깊이 심취하였다. 힌두교로 귀의한 후에는 자신의 신앙을 음악 속에 담아내며 죽을 때까지 인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며 살았고, 해리슨의 유해는 그의 유언대로 갠지스강에 뿌려졌다.

 

샹카와 해리슨, 두 거장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반드시 언급하게 되는 공연이 하나 있는데, 1971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방글라데시를 위한 콘서트>가 그것이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으로부터의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던 중이었고, 전쟁으로 인한 난민들이 인도로 대거 몰려들었다. 샹카는 해리슨에게 방글라데시 난민들을 돕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자선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 해리슨은 최고의 대중음악 스타들을 모아 성공적으로 콘서트를 치러냈다. 사실상 이 공연을 계기로 라비 샹카는 서방세계에, 그것도 록음악 팬들을 비롯한 대중음악 청중에게까지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고, 서구음악가들과의 공동작업을 활발하게 펼쳐나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때의 공연은 라이브로 녹음되어 지금까지도 판매되고 있는 명반이 되었으며, 라비 샹카와 조지 해리슨 외에도 에릭 클랩튼, 밥 디런, 빌리 프레스턴 등의 음악을 모두 들을 수 있다.

 

인도영화와 인도대중음악

 

인도음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인도음악과 서양음악의 만남이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사실상 인도에 가면 TV나 라디오, 길거리에서 힌히 들을 수 있는 음악은 전통적인 힌두스타이음악이 아닌 인도음악과 서양대중음악이 결합된 일종의 동서양 퓨전음악인데, 이 퓨전음악의 거의 대부분은 인도영화에 나오는 영화음악이다.

 

인도영화를 흔히 볼리우드(Bollywood)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인도의 초기 영화산업이 봄베이(뭄바이)에서 성행했었기 때문에 봄베이와 할리우드를 합쳐서 탄생된 말이다. 원래 볼리우드는 봄베이에서 제작된 힌디어 영화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인도영화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지금은 영화 중심지가 마드라스(첸나이)로 옮겨졌고 사실상 볼리우드는 인도영황의 한 부분만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에 볼리우드라는 말이 적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볼리우드라는 말 자체가 인도영화를 할리우드의 짝퉁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인도문화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을 ㅂ잗고 있기 때문에 볼리우드라는 말이 예전처럼 자주 사용되지는 않는다.

 

현재 인도영화산업은 세계 최대의 규모를 자랑한다. 매년 1천 편이 넘는 영화가 제작되어 인도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스크린에서 상영된다. 영화감상은 인도사람들이 가장 즐겨하는 문화생활이며, 특히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인도사람들에게 인도형화는 최고의 인기품목이다. 외국에 나가 있는 한국사람들에게 한국드라마가 최고의 인기품목인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인도영화를 보면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주기적으로 노래가 삽입된다.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세팅이 된 상테에서 배우들이 춤추며 노래한다. 마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하다. 물론 노래는 립싱크이다. 실제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은 플레이백 싱어(playback singer)라고 부르는데, 음악을 작곡하고 편곡하는 음악감독과 함께 인도대중음악을 이끌어가는 대중스타들이다. 인도영화에서 쓰이는 음악은 보통 동서양음악의 독특한 퓨전인데, 서양의 현악기, 관악기, 기타나 키보드는 물론, 시타르와 타블라도 사용된다. 서양음악의 화성도 사용되고 록, 재즈, 서양클래식음악 등 장르를 막론하고 다양한 음악적 재료를 사용한다. 말하자면 좋은 소리는 다 활용한다. 그러나 서양음아그이 색채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인도식으로 사용하여 인도만의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낸다. 노래가사는 한국가요나 별반 다를 바 없이 낭만적인 사랑을 가장 많이 담아내며, 영화 줄거리도 남녀간의 사랑을 중심으로경쾌하게 진행된다. 그리고 대부분 해피엔딩이다.

 

인도의 대중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인도영화 한 편을 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쉽게 찾을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자면 영어로 제작된 <신부와 편견(Bride & Prejudice, 2003)이 좋을 것 같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각색한 영화이다. 여자 주인공으로 나오는 아이쉬와리아 라이(Aishwarya rai, 1973~)를 볼 수 있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미스월드 출신으로, 줄리아 로버츠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극찬한 바로 그 배우이다.

 

카왈리 황제, 누스랏 파테 알리 칸

 

인도에서 이슬람의 종교의식과 관련지어 설명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음악양식이 있을까? 주저할 것 없이 있다고 답할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유명한 카왈리(qawwali)가 있다. 메시지를 뜻하는 아랍어, 콸(qual)에서 유래한 카왈리는 북인도와 파키스탄 이슬람교도들이 바치는 일종의 찬송가 같은 음악으로 음악과 춤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슬람의 수피(sufi)의 음악이 인도로 건너와 인도음악과 결합하여 만들어진 종교음악이다.

 

아랍권의 수피들이 빙글빙글 도는 춤을 추면서 신과의 교감을 이루어내듯, 북인도와 파키스탄의 이슬람교도들은 카왈리를 연주하면서 신과의 교감을 이루어낸다. 카왈리는 주로 수피 성인의 성지에서 연주되지만 결혼식과 같은 의례에서도 사용되며, 라디오나 TV 그리고 음반을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

 

카왈리음악은 노래와 기악반주로 구성된다. 한 명의 리드싱어가 전체 카왈리를 이끌어가고, 두명 혹은 그 이상의 보조싱어가 박수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다. 이들의 박수소리는 박자를 맞추는 기능 이상의 역할을 한다. 박수소리 자체가 하나의 기악반주로 들릴 만큼 카왈리음악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기악반주에는 하모니움(harmonium)과 타블라가 쓰인다. 하모니움은 아코디언을 바닥에 눕혀놓고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오른손으로 건반을 여누하고 왼손은 앞으로 죽 뻗어 주름박스를 접었다 폈다 하면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타블라는 역시 인도 타악기의 챔피언으로 카왈리연주에서도 그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카왈리는 규칙적인 박자가 가장 큰 특징인데, 싱어들의 박수소리와 타블라에 맞추어 규칙적인 박자가 지속적으로 반복되면서 속도가 점점 빨라진다. 속도가 붙으면서 리드싱어와 함께 보조싱어들도 노래에 참여하여 합창을 이루어내는데, 반복되는 리듬과 현란한 타블라연주, 박수소리와 함께 점점 속도를 더해가며 강렬하게 내뱉는 노래소리는 신과의 일치를 갈망하는 이들의 염원을 그대로 전해준다. 바로 이러한 카왈리의 매력 때문에 카왈리는 북인도와 파키스탄 그리고 이슬람이라는 범주를 넘어 전 세계의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바로 그 인기몰이를 주도한 사람이 파키스탄의 카왈리 스타, 누스랏 파테 알리 칸(Nusart Fateh Ali Khan, 1948~1997)이다.

카왈리가 북인도와 파키스탄의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카왈리를 오로지 파키스탄음악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바로 누스랏 파테 알리 칸 때문일 것이다. 카왈리의 황제라고도 불리는 누스랏은 대대로 카왈리를 연주하던 집안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려수부터 카왈리 음악전통을 습득하였고, 가족과 함께 카왈리를 공연하면서 자라났다. 이미 파키스탄과 인도에서 카왈리의 리드싱어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서방세계에 그의 이름이 각인되기 시작한 것은 역시 서구음악가들과의 공동작업이 성공을 거두면서부터였다. 이는 인도의 라비 샹카가 거쳐간 행로와도 많이 비슷한데, 사실상 누스랏 파테 알리 칸과 라비 샹카는 '동양'의 음악을 널리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다. 누스랏이 함께 작업한 대표적인 서양음악가로는 캐나다의 마이클 부룩(Michael Brook), 영구의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 미국의 에디 베더(Edie Vedder)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록 밴드 펄 잼(Pearl jam)의 리드싱어인 에디 베더와 함께 작업한 음악이 영화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 1995)>의 OST로 사용되어 유명해졌다. 이 영화에서 누스랏 파테 알리 칸과 에디 베더는 타블라와 기타연주에 맞추어 <사랑의 얼굴(The Face of Love)>과 <머나먼 길(The Long Road)>을 노래한다. 누스랏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는 성공적인 동서양 퓨전이긴 하지만, 누스랏의 음악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것은 역시 카왈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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