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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56호 '무령왕 금귀걸이'는 충남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길이 8.3cm 크기의 금제 귀걸이다.

무령왕 귀걸이는 하나의 중심되는 고리를 기준으로 작은 고리 2개를 연결고리로 하여 두 줄의 귀걸이를 매달아 만들었는데, 큰 귀걸이의 중간 장식은 2개의 원통체를 대칭되게 연결하였고, 원통체의 끝에는 금실과 금 알갱이로 장식한 심엽형(心葉型 하트모양 또는 그와 비슷한 형태의 나뭇잎모양) 장식이 달려있다.

귀걸이의 끝 장식은 큰 심엽형 장식을 중심으로 작은 심엽형 장식 2개를 대칭되게 매달았다. 작은 귀걸이의 중간 장식은 금 알갱이를 붙여 만든 투작구체(透作球體) 5개를 '0-0 모양의 고리로 연결하였다.

끝 장식은 담녹색 곡옥에 누금수법 장식이 가미된 금 모자를 씌운 것으로 금모자에 좌우대칭으로 2개의 심엽형 장식이 달려 있다.

무령왕 귀걸이와 비슷한 류의 귀걸이가 경주의 금령총과 일본 구마모토 현의 에다후나야마 고분(일본 구마모토현 다마나 시에 있는 고분으로 1873년 1월 4일 발굴된 원형의 분구(墳丘)에 방형 혹은 삼각형의 단상부(壇狀部)가 합쳐진 모양의 큰 무덤인 전방 후원분이다)에서 출토된 바 있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武寧王, 재위 501~523)과 그 왕비의 무덤으로 1971년에 처음 발굴되었으며, 벽돌로 만든 무덤에서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국보 156호 '무령왕 금귀걸이'/ⓒ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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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비 은팔찌,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비 은팔찌,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비 은팔찌는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지름 8cm의 은으로 만든 팔찌로 국보 160호이다. 팔찌의 둘레에는 머리를 뒷쪽으로 돌리고 발이 3개인 두 마리의 용이 장식되어 있다.

팔찌의 안쪽에 [경자년(庚子年, 520년) 2월에 '다리'라고 하는 장인이 대부인(大夫人, 왕비)을 위해 230주이를 들여 팔찌를 만들었다(更子年二月多利作大夫人分二百十世主耳)]고 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경자년은 왕비가 죽은 병오년(丙午年, 526년) 보다 6년 전으로, 230주이(二百世主耳)는 무게 단위였을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에 부인(夫人)이라는 호칭은 왕비나 왕모, 그리고 상류층의 혼인한 여자를 이르는 말로, 무령왕비 은팔찌는 왕비를 위한 것이므로 특별히 대부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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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 금제관식/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 금제관식/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 금제관식은 국보 154호로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높이 30.7cm, 너비 14cm 크기의 백제시대 유물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왕인, 무령왕(재위기간 501년~523년)과 왕비의 무덤으로 1971년에 처음으로 발굴되었는데, 벽돌을 쌓아 만든 무덤 내부에서는 금제관식 등을 비롯해 많은 백제시대 유물이 출토되었다. 무령왕 금제관식은 출토 당시 왕의 머리 부분에서 거의 포개진 형태로 발견되었으며, 전체적으로 금으로 된 얇은 판을 인동당초문(인동초 모양)과 화염문(불꽃 모양) 을 조화시킨 형태로 만들었으며, 좌우 비대칭 형태로 한쌍이 함께 머리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중국의 '구당서'에 백제 왕은 검은 천으로 된 관에 금꽃을 장식하고.. 라는 기록이 있다.) 줄기 부분과 꽃 모양 부분에는 지름이 5mm 정도의 작고 둥근 원판 형태의 영락을 달았는데, 작은 구멍을 뚫고 금실로 4~6회 꼬아서 꿰어 메단 형태의 영락은 그 숫자가 127개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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