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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343호 산수 봉화무늬 벽돌/국립중앙박물관]



충청남도 부여군 외리에서 출토된 7세기 백제 사비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총 8종류의 문양전 중 산수 산수문전은 2종류가 출토되었는데, 보물 343호  '산수 봉화무늬 벽돌'은 자연풍경을 소재로 하여 도식화된 산, 나무, 물, 바위, 구름이 잘 표현돼 있다.

전체적으로 좌우 대칭의 안정된 구도와 산과 구름의 곡선적 표현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표현 기업에 원근법이 나타나는 등 백제 회화의 단면을 볼 수 있는 백제미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두 전돌이 기본적으로 자연풍경을 소재로 하고, 표현 기법 또한 유사하지만 상단의 봉황무늬와 구름의 표현 및 배치가 달라 각각 색다른 느낌을 준다.

처음 발견 당시 바닥에 깔린 상태였으며, 문양의 위와 아래가 엇갈린 채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아 후대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재배치한 것으로 보이며, 함께 발견된 8종류의 문양전과 함께 크기는 대체로 한 변이 29cm 정도이고, 두께가 4cm 내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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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343-3호 산 경치 도깨비무늬 벽돌/국립중앙박물관



보물 343-3호 산 경치 도깨비무늬 벽돌(산수귀문전)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8종의 백제시대 무늬 벽돌 중 하나로써, 가운데 도깨비 모양을 중심으로 아랫쪽에 산경치를 문양으로 표현했다.

도깨비 모양은 동그랗고 부릅뜬 눈과 날카로운 송곳니, 손발톱, 불꽃무늬 갈기 등으로 무섭고 사나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보기에 따라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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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88호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립중앙박물관]


국보 288호 '<백제창왕>이 새겨진 부여 능산리 터 석조사리감'은 567년 백제 유물로 능산리절터 내 목탑터 심초석 위에서 발견되었다.

사리감(舍利龕)이란 석탑 또는 왕릉과 같은 곳에 사리와 장신구 등을 넣어 보관하는 것으로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은 감실의 입구 양쪽에 세로로 '百濟昌王十三秊太歲在, 丁亥妹兄公主供養舍利 백체 창왕(백제 27대 위덕왕의 또다른 이름) 13년에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글씨체가 중국의 북조계의 글씨체로 당시 백제가 중국의 북조와 교류했음을 증명하는 자료로 평가받는 유물이기도 하다.

사리감은 화강암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크기는 높이 74cm, 너비 가로와 세로 각 50cm이며, 감실은 높이 45cm, 너비 25.3cm, 깊이 24.5cm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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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343-7호 연꽃 구름무늬 벽돌/국립중앙박물관]


보물 343-7호 '연꽃 구름무늬 벽돌'은 가로 29cm, 세로 29cm 두께 4cm의 크기이다.

7세기 백제시대 제작된 것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무늬벽돌이다.

벽돌 중앙에 원형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작은 원 안에 연꽃무늬를 표현했고, 연꽃 주변에 소용돌이 형태의 구름무늬를 표현했으며, 벽돌의 네 모서리 부분에도 연꽃무늬를 두어 화려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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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58호 '7절 목걸이'/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58호 '7절 목걸이'는 6세기 백제시대 유물로 고구려는 물론 신라, 가야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백제만의 특징적인 유물이며, 최대 지름은 14cm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금목걸이로써, 금막대의 양쪽 끝에 둥근 연결고리가 있고, 그 고리로 7개의 금막대가 서로 연결되어 있어 7절 목걸이라고 부른다.

전체 형태는 복잡하고 화려한 장식이 없으면서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멋이 느껴진다. 무령왕릉에서는 이와 같은 형태의 9절 목걸이도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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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57호, 무령왕비 금귀걸이/국립중앙박물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비 금귀걸이'는 6세기 백제시대 유물이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3)과 왕비의 무덤으로써 1971년에 처음 발굴이 진행되었는데, 벽돌로 만든 무덤에서는 금제관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국보 157호로 지정된 '무령왕비 금귀걸이'는 모두 네쌍이 출토되었으며, 머리쪽에서 출토된 두쌍은 중심고리, 중간장식, 끝장식 등을 갖추었고, 발치 쪽에 출토된 두쌍은 중심고리와 끝장식만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머리 쪽에서 출토된 것은 노는 고리에 2점의 귀걸이를 매달아 만들었는데, 길쭉한 귀걸이는 영략을 붙인 사슬모양 연결 금구에 현재의 총탄과 흡사한 모양의 끝장식을 매달았다.

짧은 귀걸이는 중간 장식으로 투작 반 구체를 덮어씌운 담녹색 유리구슬을 사용했으며, 사슬형 금구에 사익형의 끝장식을 연결했다.

한편 발치쪽에서 출토된 것은 왕비의 발치 북쪽에서 팔찌와 함께 출토되었는데, 그 크기는 아주 작으며, 중심 고리에 금실을 두 번 감은 다음 횡으로 두세 번 감아 마무리를 한 것이 특징이다.


전체 길이 11.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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