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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성(金大城, ?~774)/ⓒ나무위키

모량리(牟梁里, 부운촌浮雲村이라고도 한다.)의 가난한 여인 경조(慶祖)에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머리가 크고 정수리가 평평한 것이 마치 성(城)과 같아 이름을 대성(大城)이라고 했다. 집안이 가난하여 키울 수가 없었으므로 부자인 복안(福安)의 집에 가서 품팔이를 했는데, 그 집에서 논 몇 이랑을 주어 의식의 밑천을 삼게 했다.

 

이때 덕망 있는 승려[開土] 점개(漸開)가 흥륜사에서 육륜회(六輪會)를 베풀고자 하여 시주를 받으러 복안의 집에 이르렀는데, 복안이 베 50필을 시주했다. 점개가 주문으로 축원했다.

"신도께서 보시를 좋아하므로 천신이 항상 ㅗ호하여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게 될 것이니, 바라건대 안락을 누리고 장사할 것입니다."

대성이 그 말을 듣고는 집으로 달려와 어머니에게 말했다.

"문밖에 온 스님이 외우는 소리를 들으니, 하나를 시주하면 만 배를 얻는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전생에 좋은 일을 한 것이 없어 지금 이렇게 가난한 것입니다. 이제 또 시주를 하지 못한다면 오는 세상에는 더욱 가난할 것입니다. 우리가 품팔이로 얻은 밭을 법회에 시주하여 후세의 응보를 도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머니도 좋다고 했으므로 밭을 점개에게 시주했다.

얼마 후 대성이 죽었다.

그날 밤 나라의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 하늘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량리의 대성이란 아이가 이제 너의 집에 태어나려고 한다."

집안 사람들이 깜짝 놀라 모량리에 사람을 보내어 조사해 보니 대성이 과연 죽었다고 하는데,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던 날과 같은 날이었다. 김문량의 부인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왼쪽 주먹을 펴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7일 만에 폈는데, '대성'이란 두 글자가 새겨진 금패를 쥐고 있었으므로 이름을 다시 대성이라 짓고 그의[예전] 어머니를 맞이하여 집 안에 두고 함께 봉양했다.

대성이 어른이 된 뒤에는 사냥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토함산에 올라가 곰 한 마리를 잡고 산 아래 마을에서 묵게 되었다. 대성의 꿈에 곰이 귀신으로 변해 시비를 걸며 말했다.

"너는 무엇 때문에 나를 죽였느냐? 내가 다시 너를 잡아먹겠다."

대성이 두려워하며 용서를 비니, 귀신이 말했다.

"나를 위해 절을 지어 줄 수 있겠느냐?"

대성이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하고 꿈에서 깨어났는데, 이불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후부터는 사냥을 하지 않고 꿈 속에 나타났던 곰을 위해 장수사(長壽寺)를 세웠다. 이 일로 해서 감동하는 바가 있어 자비의 원력(悲願)이 더욱 독실해졌다.

이로 인해서 이생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佛國寺)를 세우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불사(石佛寺, 국보 24호인 석굴암. 한편 불국사와 석굴암 두 불사를 한 개인이 일으켰다는 것에 회의를 품는 학자도 있다.)를 세워, 신림(神琳)과 표훈(表訓) 두 승려에게 각가가 절에 머물도록 부탁했다. 대성은 아름답고 큰 불상을 세워 길러 준 부모의 노고에 보답했으니, 한 몸으로 전세와 현세의 두 부모에게 효도한 것이다. 이것은 옛날에도 듣기 어려운 일로 과연 시주를 잘한 징험을 어찌 믿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경주 불국사/ⓒ세계문화유산 불국사

 

석굴암/ⓒ세계문화유산 석굴암

 

대성이 석불을 조각하려고 큰 돌 한 개를 다듬어 감실(龕室, 석굴의 벽 가운데를 깊이 파서 석불을 모셔 두는 곳으로 석굴암 보존불 주위의 십대제자상 위에 열 개의 감실을 팠다.)을 만드는데, 갑자기 돌이 세 개로 쪼개졌다. 그래서 분통해하다가 얼핏 선잠이 들었는데 밤중에 천신이 내려와 감실을 다 만들어 놓고 돌아갔다. 그래서 대성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급히 남쪽 고개로 올라가 향나무를 태워 천신에게 공양을 올렸다. 그러므로 그 땅을 향고개[香嶺]라 한다. 불국사의 구름다리[雲梯]와 석탑은 그 나무와 돌에 새긴 노력이 동도(東都)의 여러 사찰 중 어느 것보다 뛰어나다. 옛 향전(鄕傳)에는 위의 내용이 실려 있는데, 절 안의 기록에는 이렇다.

"경덕왕 대에 대상(大相) 대성이 천보 10년 신묘년(751년)에 처음으로 불국사를 창건하기 시작하여 혜공왕 대를 거쳐 대력 9년 갑인년(774년) 12월 2일에 대성이 죽자 나라에서 공사를 마쳤다. 처음에는 유가종의 고승 항마(降魔)를 청하여 이 절에 살게 했고 이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렇듯 고전과 같지 않으니, 어느 것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다음과 같이 기린다

 

모량 마을에 봄이 지나 세 무의 밭을 시주하니,

향고개에 가을이 되어 만금을 거두었네.

어머니는 한평생에 가난과 부귀를 맛보았고,

재상(김대성)은 한 꿈 속에서 내세와 현세를 오갔네.

 

-삼국유사 권5, 효선(孝善) 제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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