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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453호 도기 녹유 탁잔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작품으로 고화도 소성의 회백색 바탕흙에 녹유(綠釉)를 입혀 제작하였으며, 잔과 잔받침이 한 벌로 구성되어있는 받침잔(탁잔 托盞)이다.

잔은 반구형태이고 작고 짧은 굽이 달려있으며, 뚜껑에는 작은 보주형 꼭지가 달려있다. 잔받침에도 높이가 짧은 굽이 있고, 잔받침 내면에는 잔을 잔받침에 꽂을 수 있도록 홈을 만들어 장치했다.


높이: 11.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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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3호 북한산 신리 즌흥왕 순수비/국립중앙박물관



국보 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6세기 중엽 신라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이 새로 확보한 영토를 친히 돌아보며 여러 곳에 세운 비석 중 하나이다.

A.D 553년에 신라는 백제에게서 한강 하류지방(경기도 하남시와 광주시 일대)을 빼앗아 '새로운 주'라는 뜻의 신주(新州)를 설치한다.

국보 3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555년 10월에 진흥왕이 신주 지역을 돌아보며 이를 기념하기 위해 북한산 비봉에 세운 비석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비가 무학대사의 비로 알려졌지만, 1816년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이 비석을 조사해 진흥왕순수비인 것을 밝혀내고, 그 내용을 비석의 왼쪽면에 기록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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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국립중앙박물관]



국보 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가로 53cm, 세로 73cm 크기로 1973년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에서 발견되었다.

말의 안장 장니(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으로 중앙에 꼬리를 세우고 구름 위를 달리는 모습의 흰색 천마가 그려져 있고, 테두리에는 흰색, 붉은색, 검은색 덩굴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천마도가 그려진 바탕은 자작나무 껍질을 두 겹 겹치고 가장자리 쪽에 비단을 대어 만들었는데, 천마도는 신라의 그림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예가 매우드물어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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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31호 '황남대총 남분 은관'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은제 관으로 높이 17.2cm, 머리띠 너비 3.2cm, 지름 16,6cm의 크기로 되어 있다.

머리띠 위의 장식은 세 갈래로 가지가 뻗어있는 형태로 전통적인 신라 관모에서는 보지 못하던 독특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은관의 전체 모양을 보면 가운데 가지의 위에는 돌기가 있고, 활처럼 휘어지며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마름모 형태의 은판이 붙어 있고, 좌우에는 반달형 은판을 붙이고, 바깥쪽을 일정한 폭으로 오려낸 다음 하나 하나 꼬아 마치 새의 깃털을 꽂아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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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국립중앙박물관]


5세기 신라시대 유물인 황남대총 남분 은제 팔뚝가리개(보물 632호)는 갑옷의 부속품으로 전장에서 팔뚝을 보호하기 위해 착용하는 것이다. 전체적인 모양은 팔뚝 모양처럼 팔꿈치 쪽이 넓고 손목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로 손목 부분을 감싸는 곳은 안쪽에서 끈을 걸어 고정시킬 수 있도록 3개의 걸이가 있다. 중심선은 따라 꽃봉오리 무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으며, 비슷한 모양의 팔뚝가리개 유물로 금동제, 은제, 철제도 출토되었다.


길이 34.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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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 출토된 국보 88호 금허리띠는 신라시대 유물로, 얇은 금판으로 제작된 40매의 허리띠꾸미개와 허리띠고리, 허리띠끝장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금허리띠 그리고, 금허리띠에 화려하게 달려 있는 총 17줄의 허리띠드리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허리띠꾸미개는 혁대에 고정되는 사각형 판에 심엽형(풀이나 나무 우듬지의 가운데에서 돋아 오르는 잎 모양) 장식이 달려 있으며, 금판 위에 인동무늬를 간략화시킨 세잎무늬를 표현했고, 둥근 달개를 금실로 꼬아서 매다는식으로 보다 화려하게 보이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허리띠드리개는 타원형 판과 방형 판을 교대로 연결했는데, 가장 긴 것은 타원형 장식이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끝에는 3개의 방울이 매달려 있습니다.

나머지 장식 가운데 13줄은 3개의 타원형 장식과 5~6개의 방형장식을 연결했으며, 맨 아래에 곱은옥, 용무늬 맞새김장식, 물고기장식 등이 매달려 있습니다.

나머지 3줄은 사슬과 속이 빈 금구슬을 사이사이에 연결해 드리웠으며 끝부분에는 향주머니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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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총 금귀걸이/국립중앙박물관]


[부부총 금귀걸이/국립중앙박물관]


[부부총 금귀걸이/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0호 부부총 금귀걸이는 1915년 일제강점기에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합장분의 돌방무덤에서 발굴된 유물이다. 금으로 된 작은 알갱이와 금실을 이용해 정교하게 장식하였고, 화려한 모양의 달개가 특징이다. 부부총 금귀걸이는 삼국시대 귀걸이 중 단연 최고의 명품으로 꼽히는 보물로, 천 오백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짝거리는 황금색과 화려한 무늬는 신라인의 금속공예기술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름 0.5mm도 채 되지 않는 수백 개의 금 알갱이를 얇은 금실로 거북등 모양으로 구획을 나누고 다시 그 안에 정교한 꽃무늬를 표현했다. 샛장식은 작은 고리로 연결해 둥근 형태로 만들었으며, 가장자리에는 37개의 나뭇잎 모양의 달개를 달아 풍성하면서도 화려해 보이도록 했다. 또한 나뭇잎 모양의 달개 장식이 끝나는 아래쪽에는 나뭇잎 모양 보다 큰 하트모양의 장식을 매달아 조형미를 더했다. 부부총 금귀걸이는 5세기 부터 이어져 온 신라 귀걸이 제작 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유물로 이와 유사한 금귀걸이로는 호암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금귀걸이(보물 557호)와 양산 금조총에서 출토된 귀걸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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