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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출처: 위키백과]



바흐가 생존 당시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과 교회에서 잘 알려진 존경받는 음악가였던 것과는 달리 헨델은 바로크 말기 유럽의 '스타' 작곡가였다. 독일에서 태어난 헨델은 오페라 작곡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와 나폴리로 유학을 떠난다. 이탈리아 유학시절 오페라 작곡가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이탈리아 오페라를 독일에 보급하는 데 실패한 헨델은 금전적인 대우가 좋은 영국에 정착, 생을 마감한다. 1726년 영국에 귀화한 헨델은 사망 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힐 만큼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영국' 작곡가이다.

헨델은 42편에 이르는 오페라를 작곡할 만큼 오페라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강했지만 거의 모든 오페라가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공연되는 헨델의 오페라 작품으로는 영화 <파리넬리>의 삽입곡으로 잘 알려진 '나를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들어있는 <리날도(Rinaldo, 1711/31>, <줄리어스 시저(Julius Ceasar, 1724)>, <알치나(Alcina, 1735)> 등이 있다.

오페라로 성공하고 싶은 바람과 달리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화성과 대위적 기법이 조화를 이루는 오라토리오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헨델이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오페라 제작실패에 대한 자구책이었다고 한다.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같은 극음악이지만 쿠대가 필요 없고 독창보다 합창 위주이기 대문에 가수에게 지불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헨델은 극음악의 다른 종류인 오라토리오에 집중한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원래 이 장르의 성격과 달리 성경의 내용에 충실하기보다 작가의 상상에 의존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 성격묘사, 극적인 흐름에 집중하고 있어서 오페라 같은 느낌이 매우 강한 편이다. 29편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한 헨델은 <메시아> 외에 <삼손(Samson, 1743)>, <솔로몬(Solomon, 1748)>을 작곡한다. 그가 오라토리오에 사용한 합창어법은 이후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과 베토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외에 관현악곡에서도 헨델의 재능이 돋보였는데 대표작으로 3개의 관현악 모음곡 <수앙음악(1717)>과 <왕궁의 불꽃놀이음악(1749)>이 있다. 특히 <수상음악>이란 이름은 조지 1세의 요구에 따라 템스 강의 유람선 위에서 연주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야외공연에 적합한 악기를 선택하기 위해 고심했던 헨델은 플루트, 오보에, 바순, 호른, 트럼펫 같은 관악기와 현악기의 음색을 잘 활용하여 유람선 위에서도 소리가 잘 전달되록 하였다.

루터교도였던 헨델이 좋은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준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여 루터교회에서 바흐, 슈츠와 함께 7월 28일 성인으로 바로크의 세 음악가를 기리고 있다. 헨델에 대한 당대인들의 존경심의 정도는 "내가 유일하게 만나고 싶은 사람, 이 세상에서 나(바흐 자신을 가리키는 말)를 제외하고 내가 유일하게 되고 싶은 사람" 이라는 바흐의 말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음악의 합리성, 프랑스 관현악합주의 웅장함, 이탈리아 벨칸토 창법, 화성과 다성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영국식 합창전통의 장점을 절충시킨 헨델은 극적 긴장감과 성악적인 섬세한 표현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바로크음악의 이상을 실현해낸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음악의 이해와 감상/김종수 권도희 검성혜 이지선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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