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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930호 '청자 퇴화 풀꽃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와 받침'은 12세기 고려시대 작품으로 높이 29.8cm, 입지름 18.5cm의 크기이다.

조롱박 모양의 본체에 무늬가 독특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백토(白土) 안료를 사용해 붓으로 무늬를 나타내는 퇴화기법을 이용했다. 이러한 퇴화기법은 도자기에 점을 찍어 장식하거나 무늬를 그리는데 주로 이용되는 기법으로 사실적인 무늬를 묘사하기 보다는 사물을 단순화시키거나 왜곡시켜 표현하는 경우가 많고, 철화기법과 같이 붓을 이용해 표현하기 때문에 표현이 자유로운 특징을 가진다.

보물 1930호 '청자 퇴화 풀꽃 무늬 조롱박 모양 주전자와 받침'/ⓒ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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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9호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국립중앙박물관]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는 평안남도 대동군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순금제 버클로 국보 89호이다. 낙랑 유물 중 단연 최고의 수작으로 꼽히는데, 타출된 금판 위에 미세한 금 알갱이와 가는 금사를 누금기법으로 붙이고 그 위에 푸른 옥을 박아 화려한 장식을 추가했다.

주요 문양으로 가운데에 큰 용 한 마리가 있고, 큰 용 주변부에 작은 용 6마리가 각각 배치되어 있으며, 용의 윤각선은 비교적 큰 알갱이를 붙여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띠고리 전체에 모두 41개의 청록색 터기석을 붙여 장식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있지만, 현재는 7개만 있고, 왼쪽에 뚫려있는 호형의 구멍은 띠를 넣은 곳이고, 가로지르는 순금제 교침을 통해 띠를 고정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띠고리의 총 길이는 9.4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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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국립중앙박물관]



백제금동대향로는 백제의 멸망과 함께 땅 속에 묻혔다가 1993년 능산리절터를 발굴조하하는 과정에서 출토되었는데, 용이 머리를 들어 입으로 몸체 하부를 물고 있는 형상의 받침과, 연꽃잎으로 장식된 몸통, 산봉우리가 층층이 중첩된 모양의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국립중앙박물관]


향로의 뚜껑 꼭대기에는 날개를 활짝 펴고 있는 봉황이 장식되어 있으며, 다섯 방향으로 쌓아올린 봉우리에 식물, 바위 등을 만들어 넣었고, 사이사이에 산길과 시냇물, 폭포 등을 표현했으며, 상상의 동물과 호랑이, 멧돼지, 원숭이, 새 등 현실 속의 짐승들을 인물과 함께 묘사했다.

향로 뚜껑에 표현된 모습은 마치 짐승과 사람들이 신선 세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윗부분의 다섯 악사는 신선세계에서의 기쁨을 연주하는 듯하고, 그 옆의 5마리 새들은 꼭대기의 봉황을 응시하고 있다.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국립중앙박물관]


봉황은 턱 밑에 구슬을 낀 채 하늘에서 방금 내려와 앉은 듯이 두 날개를 활짝 펼친 모양으로 서 있다.

몸통은 8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세 겹의 연꽃 모양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꽃잎 위에 신선과 물가의 동물들이 묘사되어 있다.

받침은 하늘을 향해 용트림을 하는 용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고, 다리와 몸통 사이에 구름무늬, 연꽃무늬 등을 넣어 전체가 하나의 원형 받침을 이루도록 하였다.

몸통과 받침은 용이 물고 있는 봉을 몸통에 낸 홈에 끼워 연결시켰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신선들이 산다는 신산을 표현한 박산향로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백제적인 요소를 가미하였는데, 불교적 연꽃이 장식되었지만 고대의 전통적인 세계관과 도가사상이 함께 접목되어 표현된 걸작이다.


높이 61.8cm, 무게 11.85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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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에 나오는 '태평'의 세계에 관한 설명
[관련글 읽기: 장자에 나오는 '덕이 가득한 나라'에 관한 이야기]




대저 제왕의 덕은 하늘과 땅을 최고의 조상으로 삼고, 도덕을 주인으로 삼으며, 무위를 늘 그러함으로 삼는다. 무위는 곧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을 써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유위는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러므로 옛사람들이 귀하게 여긴 것은 저 무위인 것이다.
윗사람이 무위하고 아랫사람 또한 무위한다면 이것은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덕을 함께하는 것이다. 아랫사람과 윗사람이 덕을 함께하면 신하는 신하답지 못하게 된다. 아래사람이 유위하고 윗사람 또한 유위한다면 이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도를 함께하는 것이다.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도를 함께하면 군주답지 못하게 된다. 윗사람은 반드시 무위하여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을 써야 하고, 아랫사람은 반드시 유위하여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바뀌지 않는 불변의 원칙이다.
그러므로 옛날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이게 왕 노릇 하던 사람은 지혜가 비록 온 우주의 원리를 헤아릴 만해도 스스로 계획을 세우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록 변별력이 온갖 사물의 차이를 세세하게 드러낼 수 있다 해도 스스로 이론을 세워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지닌 능력이 인간 세계 전체를 포용할 수 있어도 스스로 이를 실천에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하늘이 낳아 주지 아니하여도 온갖 것들은 변화한다. 땅이 길러 주지 아니하여도 온갖 것들은 자라난다. 제왕이 함이 없어도[무위]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이 공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하늘보다 신비스러운 것은 없고 땅보다 부유한 것은 없으며 제왕보다 위대한 것은 없도다."라고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제왕의 덕은 하늘과 땅에 짝하니 이것이야말로 하늘과 땅을 타고 온갖 것들을 몰며 인간의 무리를 부리는 길이로다."라고 한 것이다.




근본은 윗사람에게 달려 있고 말단은 아랫사람에게 달려 있다.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군주에게 달려 있고 실무적으로 세밀하게 시행하는 것은 신하에게 달려 있다.
삼군의 대군과 다섯 가지 무기로 무장한 특수부대를 운용하는 것은 덕의 말단이다. 상벌을 내리고 이해관계로 거래하고 성문화된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교화의 말단이다. 의례의 절차와 법률의 규정을 상세히 규정하고 신하들의 직책과 실제의 수행을 상세히 비교, 감시하는 것은 행정수단의 말단이다. 종을 치고 북을 울리는 소리에 맞추어 무장이 깃털을 들고서 춤을 추는 모양을 갖추는 것은 음악의 말단이다. 큰 소리를 내어 울고 읍을 하고 허술하게 상의를 입고 허리와 머리에 띠를 두르고 성대하고 오랜 기간 상례를 치르는 것이나, 짧은 기간 간단하게 상례를 치르는 등의 세부 사항은 애도를 표현하는 말단이다.
이 다섯 가지 말단은 모름지기 정신이 움직이고 심술이 작동한 뒤에야 그로부터 따라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다섯 가지 말단적 학문은 옛사람들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나 이것을 앞세우지는 아니하였던 것이다.
군주가 앞서고 신하가 따른다. 아버지가 앞서고 자식이 따른다. 형이 앞서고 아우가 따른다. 어른이 앞서고 어린 사람이 따른다. 남자가 앞서고 여자가 따른다. 남편이 앞서고 부인이 따른다. 대저 지위나 신분의 높고 낮음과 앞서고 뒷따름은 하늘과 땅이 가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운 사람이 모델로 취한 것이다.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신이 밝혀지는 자리이다. 봄과 여름이 앞서고 가을과 겨울이 뒤따르는 것은 사계절의 순서이다. 온갖 것들이 변화하고 자라날 때 갓 나와 꼬부라진 새싹은 모양이 가지각색이지만 번성하고 시들어 버리게 되는 것은 자연 세계의 변화의 추이이다.
대저 하늘과 땅이 지극히 신비스러우나 높고 낮음, 앞서고 뒷따름의 순서가 있는데 하물며 인간의 도에서랴!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는 직계를 높이고, 조정에서 일을 논할 때에는 지위가 높은 사람을 높이고, 마을에서 일을 논할 때에는 연장자를 높이고, 커다란 행사를 벌일 때에는 지혜로운 사람을 높이는 것이 큰 도의 순서이다.
도를 말하면서 그 순서를 말하지 아니하는 것은 그 도를 부정하는 것이다. 도를 말하면서 도를 부정하는 자가 어찌 도를 취하겠는가!


[사진 장자/네이버 지식백과]



이런 까닭에 옛날 대도를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하늘을 밝히고 도덕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도덕이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인의를 그 다음으로 하였다. 인의가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분수를 그 다음으로 하였다. 분수가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형명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형명이 밝혀지고 나서야 인임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인임이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원성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원성이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시비를 그 다음으로 하였다. 시비가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상벌을 그 다음으로 하였다.
상벌이 이미 밝혀지고 나서야 어리석은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이 저마다 마땅한 자리에 처하게 되고, 귀한 사람과 높은 사람이 저마다 조심스럽게 자신의 자리에 서게 된다. 어질고 밝은 사람과 못난 사람이 저마다 실정에 맞추어지게 되면 반드시 저마다의 사회적 역할이 그 능력에 다라 나뉘게 되고, 그 사회적 신분이나 직책에 따라 처신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윗사람을 섬기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아랫사람을 길러 주며,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물을 다스리고 이와 같은 방식으로 몸을 닦되 지모가 쓰이지 않게 하여 반드시 그 하늘로 돌아가게 한다. 이것을 일컬어 '태평'이라고 하는데, 곧 통치의 이상이다.
그래서 옛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 것이다.


형[形]이 있으면 이름[名]이 있다.


형명이란 것은 옛사람들도 가지고 있었으나 내세우지는 않았던 것이다.
옛날 큰 길을 말하는 살마은 다섯 번째가 되어서야 형명을 언급하였고, 아홉 번째가 되어서야 상벌에 대해 말하였다. 갑작스럽게 형명을 말하는 것은 그것의 근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상벌을 말하는 것ㅇ은 그 처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길을 전도하여 말하고 길을 순서를 바꿔서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다. 어찌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가 있겠는가!
갑작스럽게 형명, 상벌을 말한다면 이것은 통치의 도구만 아는 것이지 통치의 길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쓰일 만은 하겠으나 하늘 아래 모든 사람들을 부리기에는 부족하다. 이런 사람을 일컬어 변사라고 하는데 곧 한 가지 재주만 갖춘 사람이다. 예법 도수, 형명 비상은 옛사람들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랫사람들이 윗사람을 섬기는 방법이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기르는 방법은 아니다.
[동양철학산책/김교빈 최종덕 김문용 전호근 김제란 김시천/장자,'천도']


[관련글 읽기:장자에 나오는 '덕이 가득한 나라'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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