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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농요/삼삼기노래. 경상남도 고성지역에 전승되는 농사짓기소리. 중요무형문화재 제84호]


기층음악은 현장성과 지역성 그리고 유일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세 가지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 음악권이라는 개념을 활용할 만하다.

음악권이라고 할 때 '권(圈)'은 수도권, 이슬람권이라 할 때의 '권'과 같다. 이런 음악권은 세부적인 음악문화를 공유하는 지역을 지도상에서 구별한 것을 말한다.

음악문화란 음악어법, 악기와 그 사용방법, 음악과 현장의 관계, 음악에 대한 인식 등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기층음악은 음악 외에도 음악문화와 관련된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음악문화권이라는 개념을 활용할 만하다.

기층음악과 관련하여 음악문화권 지도는 다양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예를 들면, 악기를 중심으로 음악문화권 지도를 그릴 수 있고, 현장에서의 음악활용방법이나 음악어법에 따라 만들 수도 있다.

각각의 지도는 모두 다른 모양이 된다. 이러한 다양한 지도의 경계는 꼭 일치하지는 않지만 기층음악은 본질적으로 지역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 권역의 경계는 대략적으로 비슷해진다.

여러 음악학자들은 음악문화권 지도의 윤곽을 결정하는 가장 결정적 지표로 음악어법을 꼽는다.


[선율과 관련된 음악지도. 토리/네이버지식백과]


그런데 음악어법은 매우 포괄적인 말이다. 여기에는 선율, 장단, 선율진행법, 장단진행법, 음악구조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음악어법에 의해 음악문화권 지도를 그리는 것은 매우 전문적인 일에 속한다.

이러한 지도에도 구체적으로 무엇을 나타내려 하는지, 예컨대, 장단을 나타내려 하는지, 선율을 나타내려 하는지에 따라 지도의 모양이 달라진다. 음악문화지도 가운데 가장 먼저 기층음악의 지형도를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선율과 관련된 지도이다.

기층음악에서는 선율과 관련하여 지역을 나눌 수 있는데, 이와 관련된 것이 토리이다.


[관련글: 전통 기층음악의 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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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음악에 나타나는 공통된 특징은 소나타 형식이라는 하나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집의 인테리어를 현대적 감각과 용도에 맞게 변경하는 개조와 보수작업을 '리모델링(remodeling)' 혹은 '리노베이션(renovation)'이라고 하며, 그리고 집이 너무 오래되어 완전히 허물고 새로 짓는 것을 '재건축(rebuilding)'이라고 한다.

고전과 낭만의 교량약할을 한 베토벤 작품을 가리켜서 종종 리모델링과 재건축에 비유하는데, 베토벤 초기작품은 소나타 형식이라는 집의 구조 중 마음에 들지 않는 일부분만을 변형한 것이기에 '리모델링'에 비유한다. 반면 후기작품은 '재건축'에 비유하는데 그 이유는 기존의 형식(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전 말기 베토벤이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음악을 위해 전통적인 형식을 해체하고 새로운 형식을 세우기 위해 보여준 시도는 19세기 작곡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음악을 통해 개인이 느끼는 주관적인 감정과 사적인 경험을 표현하고자 했던 19세기 작곡가들은 소나타 형식의 미리 정해진 악장의 수, 2개의 주제, 각 악장의 형식, 그리고 소나타-알레그로 형식에 나타나는 조성의 관계로는 개인마다 다르게 느끼는 섬세한 감정을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릇(형식)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나 하는 관심보다 '무엇'으로 그릇을 채우느냐, 즉 내용에 대한 관심이 우선이었던 19세기 작곡가들은 내용물에 맞게 그릇의 모양을 바꿔나가게 된다. 다라서 고전시대의 음악이 주로 소나타 형식(그릇)에 내용물을 맞춘 것과 달리 19세기 작곡가들은 내용에 맞는 모양의 그릇, 형식들을 개발하고 찾아가는 작업에 주력한다.

그래서, 19세기에는 여전히 소나타 형식의 틀을 고수하는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Bartholdy, 1809~1847),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같은 작곡가와 아울러 가곡(lied), 교향시(symphonic poem), 악극(music drama), 성격적 소품(character piece) 같은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서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을 표현하려는 슈베르트(Franz Schubert, 1797~1828), 리스트(Franz Liszt, 1811~1886),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같이 상반된 목표를 추구하는 작곡가들이 공전하는 것이다.

따라서, 19세기 음악은 형식 자체를 무시하거나 거부한 것이 아니고 내용에 맞는 형식을 추구하고 만들어 내는 데 관심이 있었다는 말이 더 적합한 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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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음악과 고전음악을 비교하면서 전자는 표제음악(program music), 후자는 절대음악(absolute music)이라고 한다.

표제음악은 제목이 있는 음악이라는 뜻이고, 절대음악은 음악의 내적 형식(대개 소나타 형식을 가리킨다.)이 아닌 다른 것과는 무관한 음악이란 뜻이다. 따라서 음과 음사이의 관계, 전체 작품의 통일성, 유기성을 강조하고 문학, 미술, 자연, 감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반면 표제음악이란 말 그대로 작품에 제목이 있다는 뜻이다. 작곡가가 정한 표제는 작품의 주제나 내용을 암시하거나 미술, 시, 소설, 자연 등을 경험하면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과 사상(생각)들을 드러내는 음악이다.

그러나 표제는 어떤 사물 혹은 미술작품에 대한 감상, 문학(시, 소설)의 줄거리를 그대로 묘사허거나 모방한다는 의미와는 다르다. 작가의 다양한 느낌과 경험, 막연한 상념, 어떤 종류의 시적 기분의 발생을 하나의 표제로 한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표제음악도 절대음악과 마찬가지로 추상적인 느낌을 준다.

절대음악으로 불리는 고전음악 중에도 표제가 붙은 작품들이 많은데 작곡자가 직접 붙인 제목은 그리 많지 않다.

작곡가가 제목을 붙인 경우에도, 제목과 직접 연관되는 내용을 다루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제5번 <운명>, 제6번 <전원>의 표제들은 작곡가가 느낀 영웅, 운명, 혹은 전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이 음악을 들은 평론가나 애호가들이 작품에서 받은 느낌을 토대로 나중에 제목을 붙인 것이므로 표제와 작곡가의 의도와는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초연장소에 따라 표제가 정해지기도 했고(<프라하>, <린츠>), 후원자의 이름(<발트슈타인>, <라주모프스키>), 작품에 나오는 특징적인 음색이나 음형(<군대>, <드럼롤>, <시계>, <터키> 행진곡) 혹은 주제음형(<운명>) 때문에 붙은 것들이 많다.

예를 들어 <운명>이라는 표제 덕분에 우리는 "솔솔솔미 b~"로 시작되는 제5번 교햑곡을 들을 때 줘진 운명과 맞서는 작곡가의 불굴의 의지와 투쟁을 떠올리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는 이 곡을 들으면서 운명과 전혀 상관없는 다른 것을 연상할 것이다.

이처럼 절대음악에 붙여진 표제와 작품을 연관시켜서 듣게 된다는 건 결국 절대음악이 완전히 음과 음의 구성이라는 추상적인 관계가 아니라는 말이 될 것이다.

대대수 19세기 작곡가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감성과 독창성을 표현하고자 소나타 형식이 아닌 새로운 형식을 찾아내는 데 주력하였다.

대개 표제음악을 대표하는 장르로 가곡, 교향시, 악극을 꼽는데, 이 세가지 장르는 소나타 형식처럼 고정된 하나의 틀을 갖는 것이 아니고 성악, 관현악, 오페라를 통해 낭만주의적 이념을 실현하려는 작곡가들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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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서양음악 그리고 낭만주의시대?


일반적으로 서양음악사에서 19세기는 낭만주의시대라고 한다. 18세기 후반 고전음악과 상반된 가치를 추구하였다 하여 낭만주의로 일컬어지는 19세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주의라는 하나의 특징으로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성격의 음악이 공존했던 시기이다.

따라서 19세기와 낭만시대는 동의어가 아니고, 낭만주의는 19세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음악사조 중 하나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낭만주의는 19세기에 나타나는 다양한 음악사조 중 하나이다.


18세기 후반 빈을 중심으로 유행한 음악을 고전주의라 부르게 된 배경에는 지나치게 주관적인 감정과 사적인 경험을 중시하는 19세기 낭만사조에 대한 거부감이 깔려 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이상적인 음악'이란 뜻의 '고전(클래식)'이란 이름을 붙여 낭만보다 더 우월하고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음악으로 칭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시기상으로 고전이 낭만보다 앞서지만, 실제 고전이란 이름은 낭만주의시대에 붙여진 이름이었고, 그 이전까지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의 음악은 빈에서 유행했던 음악으로 회자되었다.

19세기 유럽사회는 프랑스혁명에 의해 의식화된 시민계급의 대두로 프로아스처럼 극단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유럽의 모든 나라들이 시민사회로 전환하는 과도기의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산업혁명 이후 전통사회가 아닌 산업사회로 바뀌게 되면서 도시화와 자본주의를 형성해가고 있었던 시대였다.

경제적 변화, 기술과 과학의 진보, 생물학의 발달은 다윈의 '진화론(1859)' 같은 파격적인 주장으로 이어지면서 19세기 유럽사회는 기본적인 가치관과 질서가 흔들리는 불안한 상황을 맞게 된다.

또한 나폴레옹의 등장 이후 계속된 전쟁은 1870년 보불전쟁, 식민지 쟁탈전으로 이어지면서 유럽은 정치, 사회 ,사상 등 모든 분야에서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사회 전반의 불안감과는 대조적으로 19세기 중반까지 '음악은 낭만적 예술이다.'라는 믿음이 지배했고 음악은 주관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대상이자 주체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음악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것을 바로보는 주체(개인)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사물 자체가 아름다움이란 속성을 지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독일 중심의 낭만주의 이념과 비독일계의 음악가들의 새로운 움직임


특히 독일에서는 정치, 사회적 불안을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적인 신화, 과거, 환상을 주제로 하는 낭만성 짙은 음악들이 중심이 되어 낭만주의 이념을 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나 독일 중심의 낭만주의를 거부하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19세기 중반 이후 비독일계 음악가들의 작품에 나타나게 되면서 19세기 음악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우선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아름다운 것만을 모방하고 표현하려는 예술의 기본전제를 거부하고 아름답지 못한 추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예술의 의무라는 사실주의(리얼리즘)문학이 도래한다.

이에 오페라 같은 극음악분야에서 사실주의적 경향이 나타나면서 독일의 낭만주의와 상반된 가치를 추구하게 된다.


후기 낭만에 대한 거부감과 그와 구분되는 고유한 음악 양식의 확립과 발전

[드뷔시 (Achille Claude Debussy)/Wikipedia, Nadar]


그리고 그동안 유럽에서 문학적으로 소외되었던 러시아와 체크(보헤미아) 같은 동유럽, 노르웨이이나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정치적, 문화적 지배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고유한 음악적 감수성과 전통에 기반을 둔 톡특한 민족음악샹식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또한 바그너를 중심으로 하는 독일 후기 낭만의 극단적인 주관성, 개인주의에 거부감을 느낀 이탈리아와 프랑스 역시 베르디(Giuseppe Verdi, 1813~1901)의 오페라와 드뷔시의 인상주의 기법을 토대로 독일 후기 낭만(바그너)과 구분되는 고유한 음악어법과 양식을 확립, 발전시키려는 민족주의적 경향에 간접적으로 동참한다.

19세기 내내 유럽의 모든 나라와 작곡가 개개인이 낭만주의 이념을 추구했던 것이 아니므로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형식, 주장들이 어우러진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19세기 유럽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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