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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가쿠(雅樂)는 일본의 궁중음악을 말한다. 처음 가가쿠를 들으면, 슬며시 시작해서 슬며시 끝나버리는 음악, 안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맞는 것 같기도 한 합주라는 인상을 받기 쉽다. 그러나 이러한 가가쿠에는 그 나름대로의 법칙이 있고 미묘한 미의식이 있다. 일본의 왕조는 천년 이상에 걸쳐 이러한 미묘함을 다듬어 세련된 예술음악으로 발전시켜왔다. 각 악기의 조화, 선율의 흐름, 리듬이나 템포의 모든 요소가 서로 작용하여 가가쿠의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내고 있다.

 

가가쿠는 한국의 아악과 같은 한자인 '雅樂'을 쓰지만 그 의미는 다르다. 좁은 의미로 문묘제례악을 지칭하는 한국의 아악과는 다르게, 일본의 가가쿠는 크게 세 가지 성격으로 구분된다. 첫째, 아시아대륙으로부터 전래된 음악으로 중국에서 전해준 당악(唐樂)과 우리나라에서 전해준 고려악(高麗樂)이 이에 속한다. 둘째, 일본 고유의 음악과 무용으로 황실의 제례와 이식 등에서 사용되는 가구라우타(神樂歌), 아즈마아소비(東遊) 등이 있다. 셋째, 10~11세기경 일본의 귀족들에 의해서 시작된 가가쿠는 이러한 세 종류의 음악의 총칭이고, 오늘날 가가쿠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당악과 고려악이다.

 

일본에 처음 궁중음악을 전해준 것은 우리의 삼국이었다. 5세기부터 신라, 백제, 고구려에 각각 자국의 음악을 전해주었고, 이후 8세기에 이르러 당에서 음악이 전해졌으며, 그 외에도 인도와 발해 등지에서 전해진 음악이 궁중에서 연주되었다.

 

이렇게 많은 음악이 궁중에서 연주되자 외래음악을 정리하여 일본인의 취향에 맞게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동기로 9세기 중반에 귀족들에 의하여 악제개혁이 단행되었다. 즉 이전의 여러 외래음악 중 중국에서 들여온 당악과 인도계 음악을 합하여 좌방악인 당악(도가쿠)이라고 하고, 삼국과 발해에서 들여온 음악을 합쳐 우방악인 고려악(고마가쿠)이라고 하였다. 이후 당악과 고려악은 연회나 귀족들의 교양음악으로, 궁중을 중심으로 연행되어왔다.

 

원래 당악과 고려악은 모두 음악반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 무악(舞樂)의 형태였다. 그러나 무악을 연행하기 위해서는 무용수들이 복잡한 복장과 무구를 갖추어야 했고, 이들의 무용을 반주하는 연주자들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손쉽게 즐기는 음악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무용 없이 순수하게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기악합주형태가 나타났는데, 그것이 관현(管絃)이다. 예전에는 당악과 고려악에 모두 관현이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당악에만 남아 있다.

 

관현은 글자 그대로 관현악합주를 말한다. 앞줄에는 타악기 세 종류, 두 번째 줄에는 현악기 두 종류, 그리고 맨 뒷줄에는 관악기 세 종류가 앉는다. 악기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객석에서 보았을 때 앞줄 왼쪽에는 작고 두꺼운 쟁반형의 금속제 타악기인 쇼코(鉦鼓), 중앙에는 한국의 좌고와 비슷하게 생긴 다이코(太鼓) 그리고 오른쪽에는 연주의 리더격인 갓코(鞨鼓)의 연주자가 앉는다. 두 번째 줄의 왼쪽에는 가야금과 같이 생긴 고토(箏), 오른쪽에는 비와(琵琶)가 위치한다. 뒷줄 왼쪽ㅇ에는 횡적인 류테키(龍笛), 중앙에는 한국의 피리와 유사한 히치리키(篳篥) 그리고 오룬쪽에는 생황과 같은 쇼(笙)의 연주자가 앚는다. 이렇게 8종류의 정형화된 악기편성을 삼관(三管), 이현(二絃), 삼고(三鼓)라 하여 가장 조화로운 편성으로 여기고 있다. 여기서 조금 특이한 것은 타악기가 맨 앞줄에 위치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앞줄 중앙에 낮는 다이코 주자의 손의 움직임을 보면서 뒷줄의 현악기와 관악기가 맞추어나가기 때문이다.

 

가가쿠의 관현(쇼코, 다이코, 갓코, 고토, 바와, 류테키, 히치리키, 쇼)/ⓒ유네스코한국위원회

 

무용이 수반되는 무악(舞樂)의 경우 현재 각각 당악과 고려악이 있는데,  무용수가 등장하는 방향, 무용수의 의복색상, 악기의 종류 등 외적인 면에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음악과 무용의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당악과 고려악은 좌방악과 우방악으로 정리되어 내려왔기 때문에, 무용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즉 당악은 좌방무이므로 관객 쪽에서 보았을 때 무대 왼쪽에서 등장하고 본무대에 오르거나 발을 디딜 때도 왼발부터 진행한다. 이에 비하여 고려악은 우방무이므로 무대 오른쪽에서 등장하고 무대에도 오른발부터 오른다.

 

당악의 무악(좌), 고려악의 무악(우)/ⓒ유네스코한국위원회

 

의복색상에서의 차이를 보면, 당악은 무용수가 양(陽)을 나타내는 홍색 계통과 금색옷을 입는 데 비하여, 고려악은 무인이 음(陰)을 나타내는 녹색 계통과 은색옷을 입는다.

 

당악과 고려악은 춤과 반주음악의 관계도 서로 다르다. 당악의 춤은 선율에 맞추어 춤 동작을 기억하는 데 비하여, 고려악의 춤은 한국의 장구와 같이 생긴 산노쓰즈미(三鼓)라는 악기의 리듬형에 맞추어 춤을 춘다. 고려악의 이러한 특징은 장단에 맞추어 춤추는 한국무용과 상통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의 궁중음악에도 관현악합주가 있고, 무용반주로 관악합주가 주로 사용되듯이, 일본의 궁중음악에도 관현악합주인 관현이 있고, 무악의 반주로서 관악합주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한국의 전통음악이 신라시대의 음성서로 시작하여 고려시대의 전악서와 대악서, 조선시대의 장악원을 거쳐 오늘날의 국립국악원으로 계승되고 있듯이, 일본의 가가쿠는 8세기의 가가쿠료(雅樂寮)에서 10세기의 가쿠소(樂所)를 거쳐 현재의 왕립음악기관인 궁내청 식부직 악부(宮內廳式部職樂部)에 의하여 연주, 계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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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라쿠(文樂)는 샤미센(三味線)음악에 맞추어 인형을 조정하는 대표적인 일본의 전통인형극이다. 가부키와 함께 대표적인 서민예능으로 꼽히는 분라쿠는 에도시대(1602~1867)에 오사카(大阪)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400여년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분라쿠의 정식명칭은 닌교조루리(人形浄瑠璃)로, 이는 닌교(인형)와 조루리가 결합된 용어이다.


일본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스토리가 있는 서사음악이 매우 발달한 점인데, 목이 긴 세 줄짜리 악기인 샤미센을 반주로 하는 서사음악을 조루리(浄瑠璃)라고 한다. 따라서 닌교조루리란 샤미센의 반주에 노래와 대사를 하고, 이에 맞추어 인형을 조정하는 극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조루리 중 분라쿠는 기다유부시(義太夫節)라는 조루리를 반주로 하는데, 기다유부시는 17세기 말 오사카 출신의 다케모토 기다유(竹本義太夫)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분라쿠는 샤미센반주에 세 명의 인형조정자가 함께 인형을 조정한다. 따라서 노래를 담당하는 다유(太夫), 샤미센 연주자, 인형 그 어느 하나가 빠져서도 성립될 수 없다.


인형의 보통 크기는 1.3m 정도로 상당히 큰 편이다. 인형의 내부에는 여러가지 장치가 부착되어 있어 눈, 눈썹, 입, 손가락 마디 등 세밀한 표정과 동작이 가능하다. 인형은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움직이는데, 이것은 세 명의 인형조정자가 호흡을 맞추어 동작을 분담하기 때문이다. 리더격인 주(主)조정자는 인형의 등 뒤에 왼손을 넣어 얼굴을 조정하고 오른손으로 인형의 오른손을 다룬다. 왼손을 넣은 인형의 내부에는 여러 장치가 연결되어 있어, 얼굴표정을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다.


분라쿠 인형 조정자는 검은 옷을 입는다/ⓒ위키백과



왼손조정자는 인형의 왼편에 서서 자신의 오른손으로 인형의 왼손에 부착된 사시가네라는 긴 막대를 쥐고 조정한다. 왼손으로는 인형이 무대에서 사용하는 소두구를 다룬다. 다리조정자는 인형의 뒤에서 허리를 낮춘 상태로 서서 인형의 두 다리를 조정한다. 다만 여자인형은 다리가 없으므로 인형의 치맛자락을 잡고 마치 다리가 있어 자연스럽게 걷는 것처럼 다룬다.


오사카 국립분라쿠극장에 전시된 분라쿠 인형/ⓒ위키백과



처음에 분라쿠를 보면 하나의 인형에 세 사람이 붙어 있기 때문에여간 집중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왼손조정자나 다리조정자는 검은 옷과 검은 두건을 쓰므로 사정이 조금 낫지만 주조정자는 얼굴을 드러내고 전통의상을 입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객의 시선에 그대로 노출된다. 하지만 세 명의 인형조정자의 호흡이 정확하게 맞고 감상에 조금 익숙해지면 무대에서 인형조정자의 존재가 사라지고 인형의 모습이 부각되게 된다.


분라쿠는 인형극이기 때문에 인형이 말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인형이 희로애락 등의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은 다유의 역할이다. 다유는 샤미센 연주자와 함께 등장인물(인형)의 대사는 물론, 상황설명이나 분위기 묘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말과 노래로 표현한다. 다유는 원칙적으로 한 사람이 나레이터, 성우, 가수의 역할을 모드 소화해내어, 마치 엣 무성영화의 변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분라쿠의 반주음악인 기다유부시의 다유와 사미센 연주자/ⓒ위키백과



샤미센 연주자는 다유의 호흡을 보고 호응하면서 음악을 만들어나간다. 다유의 상태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을 때 샤미센은 단지 다유에 맞추어가기보다는 연주를 힘차게 하여 다유가 우렁찬 소리를 내도록 독려한다. 샤미센은 목이 긴 세 줄로 된 일본의 대표적인 현악기로, 주걱같이 생긴 바치(撥)라는 채로 연주한다.


분라쿠는 이야기 주제에 다라, 고대와 중세를 배경으로 귀족과 무사들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역사적인 이야기를 엮은 시대물(時代物)과 근세 서민들 사이에서 얼어난 사건이나 애정, 갈등 등을 그린 세화물(世話物)로 나누어볼 수 있다. 분라쿠의 작품은 대본의 완성도가 높아 많은 작품이 가부키로 각색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오늘날 분라쿠와 가부키에는 공통적인 작품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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