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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콘텐츠진흥원 제9회 캐릭터 디자인 공모전 장려상 - 경문왕과 복두장이>

 

경문대왕(景文大王, 신라 제48대 왕, 재위 861~875)의 휘는 응렴(膺廉)이고 열여덟 살에 국선(國仙)이 되었다. 약관의 나이가 되자 헌안대왕(憲安大王)은 낭(郎)을 불러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고 물었다('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의하면 헌안왕 4년 9월에 임해전에서 연회를 베풀었는데 응렴은 그때 나이 열다섯이었다. 내용은 이와 비슷하다.).

"낭은 화랑이 되어 사방을 유람했는데 무슨 특별한 것이라도 보았는가?"

낭이 아뢰었다.

"신은 아름다운 행실을 가진 사람 셋을 보았습니다."

왕이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게"

낭이 말했다.

"다른 사람의 윗자리에 있을 만한데도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이 그 하나요, 세력 있고 부유한데도 의복이 검소한 사람이 그 둘이요, 본래 귀한 세력이 있는데도 위세를 펼치지 않는 사람이 그 셋입니다."

왕은 이 말을 듣고 그가 어진 것을 알고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짐에게는 두 딸이 있는데 그대에게 시집 보내 시중을 들게(원문의 '건즐巾櫛'은 수건과 빗이란 뜻으로, 여기서는 다른 사람 밑에서 시중을 든다는 의미다.) 하고자 한다."

낭은 자리를 피해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 후 물러났다. 그리고 이 사실을 부모에게 말하니 부모가 놀라고 기뻐하며 자제들을 모아 의논했다.

"왕의 맏공주는 외모가 아주 보잘것없지만, 둘째는 매우 아름다우니 그녀에게 장가를 드는 것이 좋겠다."

낭이 무리 중에 우두머리인 범교사(範敎師,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1에 의하면 헌안왕 4년에 흥륜사의 승려에게 물었다는 말이 있다.)란 자가 이 말을 듣고는 집으로 찾아와 낭에게 물었다.

"대왕께서 공주를 공에게 시집 보낸다는 것이 사실이오?"

낭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물었다.

"그럼 둘 중에서 누구를 선택하겠소?"

낭이 말했다.

"부모님께서는 나에게 동생을 선택하라고 명하셨소."

범교사가 말했다.

"낭이 만약 동생을 선택한다면 나는 반드시 낭의 눈 앞에서 죽을 것이오. 하지만 맏공주에게 장가를 든다면 반드시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니 잘 살펴 결정하시오."

얼마 후 왕이 날을 잡고 사람을 보내 낭에게 말했다.

"두 딸 가운데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는 오직 공의 뜻에 따르겠다."

심부를 갔던 사람이 돌아와 낭의 뜻을 아뢰었다."

"맏공주를 받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나자 왕이 병이 위독해져 여러 신하들을 불러 말했다.

"짐에게는 아들이 없으니 죽은 뒤의 일은 맏딸의 남편인 응렴이 이어받도록 하라."

이튿날 왕이 죽자 낭은 유조를 받들어 즉위했다. 그러자 범교사가 왕에게 와서 아뢰었다.

"제가 아뢴 세 가지 좋은 일이 이제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맏공주를 선택하였기 때문에 지금 왕위에 오르신 것이 그 한 가지고, 이제 쉽게 아름다운 둘째 공주를 취할 수 있게 된 것이 그 두 가지며, 맏공주를 선택했기 때문에 왕과 부인이 매우 기뻐하신 것이 그 세 가지입니다."

왕은 그 말을 고맙게 여겨 대덕(大德, 본래 부처를 가리켰으나 덕망이 높은 고승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이란 벼슬을 주고 금 130냥을 내렸다.

왕이 죽으니('삼국사기' 신라본기 제11에 의하면 즉위 15년 7월 9일이다.) 시호를 경문(景文)이라 했다. 왕의 침전에는 매일 저녁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었는데, 대궐에서 알아보는 사람들이 놀라고 무서워 몰아내려 하니 왕이 말했다.

"나는 뱀이 없으면 편히 잠들 수가 없으니 몰아내지 마라."

그래서 매일 잠잘 때면 뱀이 혀를 내밀어 왕의 가슴을 덮었다.

왕은 즉위한 후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자랐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직 복두장(幞頭匠, 왕의 모자를 만드는 장인)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토록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복두장이 죽을 때가 되자 도림사(道林寺, 옛날 입도림入都林 가에 있었다. 이는 현 경주시 구황동 모전석탑지로 추측) 대숲 가운데로 들어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대나무를 향해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왕이 그것을 싫어하여 대나무를 모두 베어 버리고는 산수유를 심었는데 바람이 불면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길다."

화랑 요원랑(邀元郞), 예흔랑(譽昕郎), 계원(桂元), 숙종랑(叔宗郞) 등이 금란(金蘭, 지금의 강원도 통천이다.)을 유람하면서 임금을 위해 나를 다스릴 뜻을 은근히 품었다. 그래서 가사 세 수를 짓고, 다시 사지(舍知, 신라 17관등 중 제13위 관등) 심필(心弼)에게 공책[針卷]을 주고 대구화상(大矩和尙 향가에 뛰어났던 신라의 승려로서 진성왕의 명에 의해 향가집'삼대목三代目'을 편찬했다.)에게 보내어 노래 세 수를 짓게 했는데, 첫째는 현금포곡(玄琴抱曲)이고, 둘째는 대도곡(大道曲)이며, 셋째는 문군곡(問群曲)이다.

익덧을 왕에게 아뢰니 왕이 아주 기뻐하여 상을 내렸다 하는데 가사는 자세하지 않다.

-삼국유사 권 제2 紀異 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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