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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488호 심득경 초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488호 심득경 초상/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488호 심득경(沈得經, 1673~1710) 초상은 젊은 나이에 요절한 심득경을 애도하여 윤두서(尹斗緖, 1668년∼1715)가 그린 작품이다.

심득경과 윤두서는 절친한 친구이자 친인척관계로 심득경의 어머니가 너무도 유명한 고산 윤선도의 딸이며, 윤선도는 윤두서의 증조부가 된다.

이런 심득경이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자 윤두서는 이를 슬퍼하며 생전의 모습을 생각하며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해 석달만에 그림을 완성하는데,

완성된 초상을 심득경의 집에 보내 벽에 걸었더니 마치 죽은 사람이 되살아 온 것 처럼 모두가 놀라서 울었다고 전해진다.

<<남태응의 '청죽화사(聽竹畵史'>>


그만큼 묘사와 표현이 살아 생전의 실물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심득경 초상은 조선시대 전통적인 초상화 양식을 따랐지만 기존의 초상화와는 달리 필치가 부드럽고 담채가 은은하여 문인화가의 솜씨다운 면모가 두드러지는 것이 특징이다.

그림에 쓰인 찬문((贊文)에서도 이 초상이 심득경의 실제 모습뿐만 아니라 인품까지도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고 감탄하고 있는데,

찬문 중에 심득경의 친구 서예가 이서(李敍 1662~?)가 지은 글을 보면,

'눈이 맑고 귀가 단정하며 입술이 붉고 이빨이 촘촘하다.'

'물에 비친 달은 그의 마음이요, 얼음 같은 옥은 그의 덕이다'

'잘 묻고 힘껏 실천했으며 깨달은 것은 확고했다'

라는 글을 통해 심득경의 실제 모습과 한결같은 그의 품성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림 크기 160.3cmX7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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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국보110호,익재 이제현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은 고려 후기의 문신이며 유학자로 본관은 경주 이며, 호는 익재(益齋)·역옹(櫟翁) 이다.

충렬왕 13년에 태어나 공민왕 16년까지 활동한 인물로써, 당시 고려를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학자이며, 고려 최고의 관직인 문하시중의 자리까지 올랐다.

   

국보 110호 이제현 초상화는 고려 충선왕(忠宣王, 1275~1325)과 함께 중국을 유람하던 시기 1319년에 충선왕이 진감여(陳鑑如)라고 하는 원나라 화가를 시켜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후 귀국을 하면서 이 그림은 가져오지 못했다가 21년 후에 우연히 그림을 다시 보게 되자 그 감회를 시로 읊었다.



我昔留形影

옛날에 남겨둔 나의 초상은


流靑靑兩鬢春

양쪽 귀밑머리 푸르렀다오.


傳幾歲月

얼마나 많은 세월 흘러갔던가


邂逅尙精神

우연히 또 만나니 정신이 새로워라.


此物非他物

    이 물건 다른 물건 아니라


前身定後身

전신이 곧바로 후신이라네.


兒孫渾不識

아희들은 도무지 알아보지 못하고


相問是何人

이게 누구냐 자꾸 물어보누나.

 


그림에는 이 시와 함께 그림에 대한 원나라 문장가 탕병룡의 찬과 함께 쓰여 있다.


초상은 왼편을 향하고 있는데, 상의 왼쪽에는 주역(周易)과 고대 청동기가 놓여져 있는 칠기로 된 탁자가 있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분홍빛의 홍조를 띠고 있으며, 별다른 음영의 표현은 없다. 심의는 흰색 옷에 옷깃과 소매 끝 밑단 등의 푸른색의 선으로 둘러져 있으며, 옷의 모양새가 전체적으로 풍성하고 둥글다. 교의는 칠기에 화려하게 조각을 한 후 다시 붉은 색을 칠하여 매우 화려해 보인다.

이제현의 초상화는 비록 원나라 화가가 그린 초상화이지만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중 매우 이른 시기의 초상화라는 의미와 더불어 고려와 원나라의 교류를 통한 문화적 산물로서도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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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암 최익현 선생 초상/채용신 작품/국립중앙박물관]


[면암 최익현 선생 초상/채용신 작품/국립중앙박물관]


[면암 최익현 선생 초상/채용신 작품/국립중앙박물관]



면암 최익현(勉菴, 崔益鉉 1833~1906) 선생의 초상화로 1905년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 1850~1941)이 그린 작품이며, 보물 1510호이다.

초상화 우측 상단에 씌어있는 '勉菴崔先生 七十四歲像 毛冠本 면암최선생 칠십사세상 모관본, 乙巳孟春上澣 定山郡守時 蔡石芝圖寫 을사맹춘상한 정산군수시 채석지도사' 라는 기록을 통해 1905년에 채용신이 그린 최익현의 74세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초상화에서 최익현은 겨울철에 사냥꾼들이 즐겨 사용하는 가죽 감태를 쓰고 심의를 용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얼굴은 갈색선을 수없이 그어 요철과 명암을 표현했으며, 얼굴 표정과 주름은 물론 감태 특유의 털 느낌도 세밀하면서 대담하고 입체감 있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옷 부분은 흰색으로 채색했는데, 옷주름은 선으로 그린 것이 아닌 흰색 채색을 통해 배경색을 그대로 살려 표현한 것이다.


그림 크기

전체 82.2X55.0cm/ 그림 81.5X41.5cm



채용신은 칠곡군순, 정산군수 등을 지내고 종2품관까지 지낸 인물로 조선말기 우국지사나 항일투사의 초상화를 많이 제작했으며, 고종의 어진과 고종대한제국동가도(高宗大韓帝國動駕圖) 등을 그렸으며, 운낭자이십칠세상(雲娘子二十七歲像), 황장길부인상(黃長吉夫人像) 등의 여인상도 그렸다.

그의 화법의 특징은 극세필을 사용해 얼굴의 육리문 묘사에 주력하고, 서양의 데생작업과 유사한 많은 필선을 사용해 요철, 원근, 명암 등을 표현한 점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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