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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66호 '백자 철화 매화 대나무 무늬 항아리'는 '백자철화매죽문호(白磁鐵畫梅竹文壺)'라고도 하며, 높이 41.3cm, 입지름 37.9cm의 크기로 품격있고 장중한 형태와 뛰어난 그림으로 널리 알려진 16세기 조선시대 대표적인 철화 백자이다.

도자기에 표현된 문양은 문양이라기 보다는 한폭의 그림으로 감상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이 작품을 통해 16세기 화단의 사군자 기법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몸체에는 대나무와 매화나무를 사실적인 필치로 묘사하였는데, 대나무는 몰골법(沒骨法)-윤곽선을 나타내지 않고 색채나 수묵을 사용해 형태를 그려내는 화법. 을 사용해 농담을 살려 그렸으며, 가늘고 곧게 뻗어있는 대나무 잎과 휘어짐 없이 사방으로 벌어진 줄기를 통해 대나무의 강한 절개와 고결한 기상을 나타내고자 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반대편에 있는 매화나무는 둥글게 휘어 올라가는 등걸과 위로 곧게 치솟은 잔가지의 대조적인 표현이 서정적이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세련되고 우아한 필치로 미루어 궁중 화원의 솜씨가 분명해 보이며, 왕실용 자기 제조를 담당하는 관청인 사옹원 소속 관리가 매년 도화서(圖畫署)-조선시대 그림 그리는 일을 담당했던 관청. 의 화원을 인솔하고 관요(官窯)-왕실용 도자기를 구워내기 위해 정부에서 직영으로 관리했던 가마. 에 나가 도자기의 그름을 그리게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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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백자 철화 끈무늬 병/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060호 '백자 철화 끈무늬 병'은 조선 전기 백자 병이 가진 특색인 풍만한 양감과 곡선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잘록한 목에서 시작해 아래로 내려올 수록 볼록한 형태를 그리는 곡선미와 마치 한가닥의 끈을 묶어 늘어뜨려 놓은 듯 거침없는 굵은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 끈무늬는 철화 안료를 사용한 것이다.

백자 특유의 여백과 단순하면서도 과감하고 절제된 표현과 구성은 도자기 공예의 차원을 넘어 세련된 예술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말설임 없이 사성 방향으로 힘차게 그어 내린 끈무늬는 단순하지만 백자 전면에 걸쳐 강한 인상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굽 안 바닥에는 철화 안료로 '니나히'라는 한글이 씌어져 있는데, 뜻은 명확하지 않지만 이를 통해 '백자 철화 끈무늬 병'이 한글 창제를 전후한 작품으로 추측할 수 있다.


높이 31.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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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대용 앙부일구(해시계)/국립중앙박물관]


[해대용 앙부일구(해시계)/국립중앙박물관]


[해대용 앙부일구(해시계)/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에는 해시계를 앙부일구(仰釜日晷) 또는 앙부일영(仰釜日影)이라 했는데, 앙부일구에서 일구라는 말은 해시계란 뜻이다. 앙부라고 하는 말은 해로 부터 그림자가 생겨 맺히는 면을(수영면) 뜻하는데, 솥을 받쳐 놓은 것같은 오목한 반구형의 모습에서 비롯된 말이다. 휴대용 앙부일구는 휴대가 가능하도록 작게 만들어낸 해시계로 회백색의 대리석을 깎아 틀을 만들고  수영면에 청동으로 만든 영침(影針)을 꽂았다. 해시계 옆에는 수영면 보다 조금 작게 만든 나침반을 함께 배치해 시간과 함께 방향도 함께 파악할 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시간과 방향 표시 문자는 각각 모두 음각으로 새겨 칠을 했는데, 측면에 절기와 북극고도가 새겨져 있고, 바닥 면에는 '동치신미맹하하한(同治辛未孟夏下澣)'이라고 하는 연대와 '진산인(晉山人) 강건제(姜健製)라는 낙관 2과가 새겨져 있어 휴대용 앙부일구가 1871년(고종 8년)에 본관이 진주인 강건이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강건은 유명한 사대부 문인화가인 표암 강세황(1713~1791)의 증손자로 고종 때인 1899년에서 1900년에 걸쳐 한성판윤을 지냈다. 따라서 강건이 휴대용 앙부일구를 직접 제작했다기 보다는 어떤 목적에 의해서 제작하는 과정에서 앙부일구에 새겨진 문장을 지었거나 제작 책임을 맡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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