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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자화상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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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부탁했다네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신에게 건강을 부탁했다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네. 더 의미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달라고 부탁했다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네. 신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신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삶을 선물했다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 받았다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받받은 자라네.


(작자 미상/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적힌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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