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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팔국의 난 전개도/ⓒ더위키 THE WIKI

제10대 내해왕(奈解王, 내해이사금奈解尼師今 이라고도 한다. 재위 196~230)이 자리에 오른지 17년 임진년(212년)에 보라국(保羅國, 지금의 나주지역)과 고자국(古自國, 지금의 고성), 사물국(史勿國, 지금의 사주泗州-사천지역) 등 여덟 나라가 힘을 합쳐 신라의 변경으로 쳐들어왔다. 왕이 태자 내음(㮈音)과 장군 일벌(一伐) 등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서 막도록 명령하자 여덟 나라가 모두 항복했다.

 

이때 물계자(勿稽子)의 군공(軍功, 전쟁 등에서 얻은 군사상의 공적)이 으뜸이었지만, 태자의 미움을 사 공을 보상받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물계자에게 말했다.

 

"이번 전쟁의 공은 오직 자네에게만 있는데, 상이 자네에게 미치지 않은 것은 태자가 자네를 미워하는 것인데 자네는 원망스럽지 않은가?"

 

물계자가 말했다.

 

"나라의 임금이 위에 계시는데 어찌 태자를 원망하겠는가?"

 

그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 일을 왕에게 아뢰는 것이 좋겠소."

 

물계자가 말했다.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여 이름을 다투고, 자신을 드러내어 남을 덮는 것은 뜻 있는 선비가 할 일이 아니네. 마음을 가다듬고 다만 때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이네."

 

10년(20년의 잘못이다.) 을미년(215년)에 골포국(骨浦國, 지금의 합포合浦) 등 세 나라 왕이 각기 군사를 이끌고 갈화(竭火, 지금의 울주다.)를 치자, 왕이 몸소 군사를 이끌고 나가 막으니, 세 나라가 모두 패했다. 이때 물계자가 적군 수십 명을 베었으나, 사람들이 물계자의 공적을 말하지 않았다. 물계자가 아내에게 말했다.

 

"임금을 섬기는 도리는 위태로움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어려움에 임해서는 자신을 잊고 절조와 의리를 지켜 생사를 돌보지 않아야 충(忠)이라고 들었소. 무릇 보라(지금의 나주羅州지역)와 갈화의 싸움이야말로 나라의 어려움이었고 임금의 위태로움이었는데, 나는 일찍이 몸을 잊고 목숨을 바치는 용기가 없었으니, 이것은 매우 충성스럽지 못한 것이오. 이미 불충으로써 임금을 섬겨 그 허물이 아버님께 미쳤으니, 어찌 효라 할 수 있겠소. 이미 충효를 잃어버렸는데 무슨 면목으로 다시 조정과 저자를 왕래하겠소."

 

물계자는 머리를 풀어헤치고 거문고를 지니고 사체산(師彘山, 어디인지 자세하지 않다.)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대나무의 곧은 성질이 병임을 슬퍼하며 그것을 비유하여 노래를 짓기도 하고, 산골짜기를 흐르는 물소리에 비겨서 거문고를 타고 곡조를 지으며 숨어 살면서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삼국유사 권 제5 피은(避隱) 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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