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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댁대왕신종(에밀레종)/ⓒ국립경주박물관

신라 제35대 경덕대왕(景德大王, 재위 742~765)이 천보(天寶, 당나라 대종代宗 이예李豫의 연호로 766년에서 779년까지 사용했다.) 13년 갑오년(754년)에 황룡사의 종을 주조했는데, 길이가 열 자 세 치고 두께는 아홉 치며 무게는 49만 7581근이었다. 시주(施主)는 효정이왕(孝貞伊王) 삼모부인(三毛夫人, 경덕대왕의 선비先妃)이며, 공장은 이상택(里上宅) 노복이었다. [당나라] 숙종(肅宗, 재위 756~762) 때 다시 종을 만들었는데 길이가 여섯 자 여덟 치였다. 또 다음해인 을미년(755년)에 분황사의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동상을 주조했는데, 무게는 30만 6700근이고 공장은 본피부(本彼部) 강고내말(强古乃末)이었다.

 

※참고: 신라시대 1근의 무게는 성덕대왕신종의 무게인 18.9톤을 통해 신라시대 당시 1근의 무게는 약 250g으로 추정

 

또 경덕왕은 황동 12만 근을 들여 선친 성덕왕을 위해 큰 종 하나를 주조하려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의 아들 혜공대왕(惠恭大王, 재위 765~780) 건운(乾運)이 대력(大歷, 당나라 대종 때의 네 번째 연호로 766~779까지 사용) 경술년(770년) 12월에 유사(有司, 어떤 단체에서 사무를 맡아보는 직책의 벼슬아치 또는 담당관리)에게 명하여 공장을 모아 종을 완성한 뒤 봉덕사에 모셨다. 이 절은 바로 효성왕(孝成王, 제34대 왕 재위 737~742)이 개원(開元 26년 무인년(738년)에 성덕대왕의 복을 빌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래서 종의 이름을 '성댁대왕신종지명(聖德大王神鐘之銘)/이칭으로 봉덕사종 별칭으로 에밀레종'이라 했다. 성덕대왕은 바로 경덕왕의 아버지 흥광대왕(興光大王)이다. 종은 본래 경덕왕이 아버지 성덕대왕을 위해 시주한 금으로 주조했기 때문에 성덕대왕의 종이라 한 것이다.

 

조산대부(朝散大夫) 전태자사의랑(前太子司議郞) 한림랑(翰林郞) 김필해(金弼奚, 김필오金弼奧라고도 한다, 생몰미상)가 왕명을 받들어 종의 이름을 지었는데 글이 번잡하여 싣지 않는다.

 

-삼국유사 권 제4 塔像 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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