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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에는 각종 양념이 들어간다. 고추, 파, 마늘, 새앙, 부추 등 경우에 다라 여러 가지가 조합되어 참가되는데, 이런 양념들은 우리에게 철분, 비타민, 칼슘을 제공한다. 특히 마늘은 쌀밥을 먹을 때에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 B1의 흡수를 도와 각기병을 막아 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양념들이 맛과 향을 풍부하게 한다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다.


파슬리, 로즈마리, 육두구, 정향 등의 향신료(香辛料)는 음식의 맛과 향을 돋우기 위해 넣는 첨가물로서, 전세계 여러 민족은 모두 자신들이 즐기는 향신료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초기에 썼던 향신료로는 마늘, 새앙, 겨자, 천초 등이 있었다. '산가요록(山家要錄, 15세기 중엽에 국왕의 어의(御醫)였던 전순의(全循義)가 쓴 요리서)'에는 이 밖에도 정가, 노야기, 분디나무 잎 등 다양한 향신료가 있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정작 가장 중요한 고추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추는 본래 감자, 옥수수처럼 아메리카대륙에서 유럽을 거쳐 아시아로 건너온 식품이다. 다라서 신대륙이 발견되고 그곳의 물산이 아이사에 전해지기 전까지는 보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에서 고추가 전해지기 전까지 고춧가루의 역할을 대신했던 것이 천초(川椒)가루이다. 천초는 그냥 초(椒)라고도 하며, 촉초(蜀椒)라고도 부르며, 일본에서는 산쇼(山椒)라고 부른다. 천초는 지금은 거의 쓰이지 않지만 아직도 추어탕에 양념으로 쓰이고 있는데, 추어탕에 매운맛을 내는 짙은 갈색 가루가 바로 천초가루이다.


천초 껍질/ⓒ위키백과


천초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에 자생하는 초피나무 열매 껍질을 말려 가루로 만들어서 양념으로 쓰며, 쌉싸래하고 매운맛이 나는 향신료이다. 허균(許筠)이 지은 음식에 관한 책 '도문대작(屠門大嚼)(1611)에 '초시(椒豉)'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17세기에 천초로 고추장과 비슷한 형태의 장을 담갔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며, '요록(要錄)'(1680년경)이라는 요리책에도 오이김치를 담글 때에 겨잣가루와 함께 천초가루를 양념으로 쓰고 있다.


초피나무/ⓒ위키백과


그러다가 고려 중기에 우리나라에 후추가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서역에서 온 물건에 호(胡)자를 붙이는 경향이 있는데, 서역에서 온 복숭아처럼 생긴 과일을 호두(胡桃)라고 했듯이 서역에서 온 초(椒)라는 뜻에서 호초(胡椒)라고 부르던 것이 지금의 후추가 되었다.


후추열매/ⓒ학국학중앙연구원


후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입맛을 돋우는 최고의 향신료로 각광받았다. 유럽의 경우 오래 묵은 고기의 누린내를 없애 주는 중요한 향신료로서, 멀리 인도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값이 상당히 비싸서 알갱이 수를 세어 팔 정도였다.


후추는 우리나라에는 이인로(1152~1220)의 '파한집(破閑集)'에 처음 보이며, 신안 앞바다 해저에서 발견된 원나라 무역선의 물품 가운데에서도 발견된 일이 있다. 후추는 열대지방의 식물이라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되지 않으므로 값이 상당히 비쌌다. 그래서 왕의 하사품으로 등장했다.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에는 일본 사신이 잔칫상에 후추알을 뿌리자 조선의 악공(樂工)과 기녀들이 비싼 후추알을 줍느라고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던 일을 소개하고 있다.


유구국(琉球國: 현 오키나와)에서 수입해 오는 후추 값이 너무 비싸고 또 구하기도 어려워서 조선시대 15세기에는 국내에서 재배하려는 노력도 해 보았으나 우리나라 풍토에 맞지 않아 실패했다. 결국 너무 비싸서 음식의 양념으로 쓰기에는 적절치 않아 약재로 많이 쓰였다. 때로는 더운 여름날 후추알을 갈아 물에 타서 마시며 갈증을 가라앉히기도 했으니, 쌉싸래한 맛이 지금의 탄산음료를 마시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발발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에 고추가 전해졌다. 고추라는 이름은 고초(苦椒)ㅇ에서 온 것으로, '매워서 열이 나는 초'라는 뜻이다. 고추는 일본에서 온 매운 식품이라는 뜻에서 왜겨자(倭芥子)라고 했고, 때로는 서양 오랑캐 남만(南蠻)에서 들여온 초라고 해서 남만초(南蠻椒), 번초(蕃椒)라고도 했으며, 매운 가지라는 뜻의 날가(辣茄)라고도 불렀는데, 실제로 고추는 멕시코 원산의 가짓과 식물이다.


고추는 아마도 1600년을 전후하여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으로 생각된다. 고추에 관한 기록은 1614년경에 편찬된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 일종의 백과사전)에 처음 보인다. 그 측에 기록되기로는, 주막집에서 소주 안주로 고추를 놓았는데, 고추가 하도 매워서 그것을 먹고 죽은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물론 과장된 이야기로 생각되지만, 새로운 식품 고추가 주었던 강렬한 인상이 그렇게 이야기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고추를 안주로 먹었다는 기록은 있지만 당시 기록에도 고춧가루에 관한 내용은 없으므로, 그때의 고추는 말려서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어 양념으로 쓴 것이 아니라 통째로 그대로 식품으로 썼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1670년경에 쓴 '음식디미방'에서도 마늘김치에 고춧가루를 양념으로 쓰지 않고 천초가루를 양념으로 쓰고 있다.


고추가 가루 상태로 양념으로 쓰인 것은 1766년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에 처음 보이며, 이때에는 고춧가루뿐만이 아니라 고춧가루로 고추장을 담가 먹는 만초장(蠻椒醬)도 등장한다. 이때부터 우리의 식생활은 엄청난 변화를 겼었다. 서양에서는 근대에 접어들어 일어난 식생활의 혁명으로 18세기의 감자, 포크, 개인접시를 들고 있지만, 우리나라 식생활의 혁명은 고춧가루의 사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추도 김치처럼 우리 식품의 대명사처럼 인식되고 있다. 프랑스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Levi-Strauss)가 1980년대에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의 인상을 묻는 질문에 모든 음식이 빨간 것이 인상에 남는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전통사회와 생활문화(이해준 정승모 정연식 전경목 송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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