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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사람들이 타고 다니던 기구로는 수레와 가마가 있었다. 수레와 가마를 구분하는 기준은 바퀴의 유무이다. 바퀴가 있는 것은 수레라 하고 바퀴가 없는 것은 가마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 수레는 널리 쓰이지 못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소가 끄는 수레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 후로는 수레가 널리 사용되었던 흔적을 찾기 어렵다. 18세기에 박제가(朴齊家)가 '북학의(北學議)'에서 수레의 좋은 점을 열거하며 수레를 사용하자고 열렬히 주장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레의 사용은 거의 진전이 없었다.


무용총 우거도-중국 길림성 집안현 소재 고구려 무용총 벽화 中/ⓒ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그렇게 된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운송수단이 발달하려면 그에 맞추어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19세기 초 영국에서 돌을 잘게 부수어 도로를 포장하는 매커덤공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전 세계적으로 도로의 포장에 커다란 진전이 없었다. 유럽에서도 16세기 후반에 초보적인 형태의 사륜마차가 나타났고, 여럿이 함께 타는 합승마차는 17세기에 가서야 등장했던 것도 도로 포장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도로사정은 땅의 자연적인 상태가 도로에 적합한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평탄한 땅이 넓게 펼쳐져 있으면 수레가 통행하기 쉬웠다. 하지만 한반도 지형은 산이 많고 그에 다라 골짜기도 많아서 바퀴 달린 수레가 통행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의 고대 전투에서 전차(戰車; Chariot)전투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기마전투가 발달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개개인이 들고 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상품을 파는 보부상(褓負商)의 활약이 두드러졌던 것도 수레의 사용이 어려워 물자 운송이 대량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사람의 힘만으로 물건을 운반할 수 없을 때에는 소나 말의 등에 물건을 실어 운반할 수는 있으나, 바퀴 달린 수레에 소나 말을 매어 운반하는 방법은 일반화되기 어려웠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수레가 쓰이기는 했지만 사람이 타는 승용보다는 물자를 운반하기 위한 운송용으로 쓰였다.


그러나 적지만 승용수레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승용수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초헌(軺軒)이다. 초헌은 초거(軺車)라고도 하는데, 바퀴 하나가 달린 높다란 수레를 말한다. 즉 의자에 기다란 끌채가 좌우로 붙고, 의자 아래에는 기둥이 있고, 그 밑에 커다란 바퀴 하나가 달려 있다. 옛날 중국에서 일반적으로 수레라 하면 말 네 마리가 끌었는데, 초(軺)는 한두 마리 말이 끄는 가볍고 작은 수레를 말했다. 그리고 헌(軒)은 높다란 집을 뜻했다. 따라서 초헌은 사람이 올라타는 부분이 높이 있는 간단한 외바퀴 수레를 말한다.


초헌/ⓒ네이버지식백과



초헌은 1440년(세종 22)에 만든 우리나라 고유의 수레이다. 그래서 중국 사신이 초헌을 보고는 신기해하여 잠시 태워 준 일도 있었다. 이 초헌은 가마와는 뚜렷이 다른 독특한 탈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무나 타는 것이 아니었다. 중앙의 육조 판서, 참판이나 지방의 도 관찰사급에 해당하는 2품 이상의 관원이 타는 것이었다. 고위관원뿐 아니라 왕자나 왕의 사위인 부마도 타고 다녔다.


초헌, '기산풍속도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초헌의 기다란 끌채에는 가로로 길게 멍에목을 끼워 앞뒤로 양쪽에서 초헌을 끌고 가므로 초헌을 움직이려면 서너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당연히 격이 높은 수레로 높은 벼슬의 상징과 같은 수레였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나 형과 아우가 나란히 초헌을 타고 가는 것을 가문의 영예로 알았다. 그러나 불편한 점도 있었는데, 바퀴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바닥의 진동이 그대로 전해져서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심하게 덜거덕거렸다.


좌거, 김홍도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국립중앙박물관



초헌 외에 흔히 보기는 어려웠지만 좌거(坐車)라는 수레도 있었다. 좌거는 흔히 중국에서 사용되었지만, 중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조선에도 있었다. 좌거란 말 그대로 앉아서 타고 가는 수레로, 형태는 가마와 같은데 바퀴가 달려 있고 말이 끄는 것이다. 이는 1786년에 김홍도가 그린 안주목사 부임행렬 그림에 등장한다. 구체적인 모양은 유옥교자(有屋轎子)처럼 지붕과 벽체가 있고, 사면에 휘장이 둘려 있으며, 바퀴가 둘 달려 있다. 가마부분의 옆으로 뻗은 멍에목을 앞뒤로 네 사람이 잡고, 맨 뒤에서 다시 한 사람이 끌채를 잡아 균형을 유지하며 가는 가마형 수레이다. 그러나 이런 수레가 널리 사용되지는 않은 듯하다.

-전통사회와 생활문화(이해준 정승모 정연식 전경목 송찬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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