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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장자/네이버지식백과]

 

 제물론(齊物論)

 이상과 같은 관점에서 장자는 이 넓은 우주에 비교할 때 인간이란 존재는 소꼬리의 털에 붙은 벌레의 알보다도 미미한 존재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우주 자연의 중심도 아니며 인간이나 들풀이나 벌레나 만물은 모두 우주를 구성하는 각기 평등한 일원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편협한 이익과 생각만을 내세워 자연세계를 파괴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모두 잘못된 것이다. 이것이 그의 제물(齊物) 사상이다. 그리고 인간끼리 전쟁을 벌이는 것 또한 마치 달팽이 뿔 위에 둥지를 틀고 잇는 두 나라의 싸움에 불과한 부질없고도 어처구니 없는 짓일 뿐이다. 실로 우주 자연은 얼마나 광대하고, 그 안에는 얼마나 많은 존재들이 살아 가고 있는가.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다고 뽐내면서 그 어리석음에 빠져 남보다 멋있고 훌륭한 인간이 되기 위해 발버둥 칠 때조차 자연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그 본래 모습 그대로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 우리가 집착하는 가치 또한 편협하기 짝이 없는 인간 사회에만 통용되는 가치일 뿐 우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놓고 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아무리 아름다운 미인일지라도 다가가면 도망치지 않는 새가 없고, 사람이 아무리 더럽다고 기피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좋아하는 짐승들은 얼마든지 있다. 아름답고 더러운 것만이 아니다. 옳고 그름이나 귀하고 천함, 심지어는 살고 죽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사람들은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고 논쟁을 즐겨 하지만 그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제3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객관적인 제3자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주관, 곧 나름대로의 입장과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면 모든 가치 체계가 사라진다. 이쪽에서 옳은 것이 저쪽에서는 틀린 것이 될 수 있고, 이쪽에 귀한 것이 저쪽에서는 천한 것이 될 수 있다. 이것은 겉으로만 상대주의라고 말할 수 있으나 상대주의라는 것도 노자의 사상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은 아니다. 이것은 존재론적으로 말하여 사람들이 선악미추의 구분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미 그런 것은 없기 때문이다. 관점에 따라 다른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그런 구분이 없다는 것이며, 기본적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인 양 집착하는 것이다. 삶의 불행은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에 사람들이 집착하는 데서 나온다. 집착하지 않아야 할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그 욕망이 충족되지 않고, 욕망에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고통이 뒤따르는 것이다. 집착하지 말아야 할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노자가 예시하고 있는 것이 다름 아닌 도덕과 지식이다. 그렇다면 이런 인위적 가치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면 무엇이 남는가. 마음속의 자유가 남는다. 집착이란 나의 욕망 체계를 일정한 목표에 얽어매는 일이다. 나의 욕망은 자유롭고자 하지만 어떤 것에 집착함으로써 그것을 얻기 위해 전욕망 체계를 재편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자유롭지 못하고, 욕망도 자유롭게 실현되지 못한다. 노자나 장자는 모두 욕심을 없앨 것을 말하지만 그것은 사실 욕망을 완전히 제거해 버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틀에 얽매인 욕망 체계를 파괴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러한 욕망 체계를 파괴할 때 인간은 상상력이 시키는 바에 따라 자유롭게 욕구할 수 있으며, 자유로운 욕망을 통해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맛볼 수 있다.[행복에 이르는 지혜, 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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