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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국립중앙박물관

국보 86호 '개성 경천사 터 십층석탑(1962 지정, 開城 敬天寺址 十層石塔)은 일본 제국주의 시대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국문화재 수난사를 대표 한다고 할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재로 1907년 순종의 가례에 일본 특사로 온 궁내대신 다나카 미스야키(田中光顯)가 주민들과 당시 군수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한밤중 밀반출이라는 불법 약탈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에 '대한매일신보'는 10여차례 이상의 기사와 논설로 석탑 약탈에 대한 불법성을 알리게 되고, 다행히도 '코리아 리뷰(Korea Review)'의 발행인인 미국인 헐버트(Homer B. Hulbert)와 '코리아 데일리 뉴스(Korea Daily News)'의 발행인인 영국인 베델(Ernest T. Bethell)의 지속적인 기고를 통해 결국 계속되는 반환 여론을 조성하게 되었고, 1915년 11월 15일 국내로 반환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적인 문제로 재건은 보류되었고, 40여년 간 경복궁 회랑에 보관되어 오다 1962년 비로소 국보 86호로 지정되고,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재개관에 맞추어 현재의 전시실에 석탑의 불법 반출 이후 100여년 만에야 비로소 재조립 되어 웅장한 위용을 다시 드러내게 됩니다.

경천사 10층석탑 구조 설명/ⓒ기호일보

석탑의 제1층 옥신 이맛돌에 조탑명(造塔銘)이 새겨져 있으며 '지정 8년(至正八年)'이라는 기록을 통해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 석탑이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당시의 정치적 환경으로 말미암아 중국탑의 영향이 많이 반영되었다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신라시대의 석탑 양식을 이어 평면 사각형의 석탑 또는 새로운 양식으로 다각(多角) 석탑이 나타나는데, 이런 것과 달리 특수한 형태를 보이는 것이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입니다. 평면과 부재의 구조 등에서 각기 특수한 양식을 보여주고 전체의 균형이 아름다워 주목되는 탑이며, 기단 평면은 아자형(亞字形)으로 3단을 이루고 있으며, 탑신부는 1, 2, 3층이 기단과 같은 평면이지만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고, 4층부터는 탑신이 사각형을 이루었는데 층마다 옥신(屋身, 층과 층 사이를 이루는 몸돌) 밑에는 난간을 돌리고 옥개(屋蓋) 밑에는 다포집 양식의 두공(枓栱, 전통적인 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들기 위해 기둥 위에 복잡하게 엮은 일종의 결구물) 형태를 조각하였습니다. 윗면에는 팔작지붕 형태의 모양과 기왓골이 표현되어 있으며, 기단과 탑신에는 불, 보살, 인물, 용, 천부(天部, 불상의 분류에서 여래, 보살, 명왕에 이어서 최하위에 놓여진 존상의 총칭으로, 제천부, 천이라고도 한다.) 등이 빈틈없이 조각되어 장식이 풍부하고 조각수법이 상당히 정교한데, 이런 형태의 석탑이 조선시대 초기에 다시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유례가 없는 희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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