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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과학이 무엇인지 간단히 알아보자. 과학은 검증 가능성이란 최고의 기준을 만족해야 하지만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 검증 가능성의 폭을 제한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수준에서 참(true)으로 검증 가능했던 사실도 나중에 거짓으로 판명될 수 있다. 과학은 그 점을 두려워하는 폐쇄된 것이 아니라 열린 창을 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과학은 현재 수준의 검증 가능성에 매달려 있다.

 예를 들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고전역학은 더 이상 물리학의 주역이 될 수 없으며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등이 과학적 사실의 주역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을 이해하는 경향이 많다. 즉, 현대과학의 자연관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전적인 의미의 환원주의와 기계론적 결정론을 통해서 과학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마땅히 비판되어야 한다. 이렇듯 현대 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의 대상인 화석화 되어 고립된 대상을 다루는 학적 체계에서 많은 부분 벗어나 있다.

 현대 자연과학의 대상은 요소들의 계량적 합으로서의 닫혀진 전체가 아니라 자기 창조적인 열려진 전체이다. 열려진 전체 속에서 개체들의 현상은 끝없는 무질서로 보일 수 있지만 그들 안에는 내재적인 질서가 존재한다. 내재적 질서의 경험적 발견이 곧 숨겨진 변수이며, 이로부터 자연의 인과성이 드러난다. 그러므로 인과율은 선험적으로 주어질 수 없으며, 항상 자연속에서 찾아져야 한다. 기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바로 이러한 열린 과학의 입장에서 수행되어야 한다. 이는 기에 대한 과학적 탐구의 기본적인 접근방법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에 접근하는 과학적 방식은 기존의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존재론적 의미에서 기 혹은 인식론적 의미에서 기의 현산은 모두 물리적인 존재 혹은 현상으로 환원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있으며, 그렇게 환원되지 않으면 기와 기의 현상은 관념에 지날 뿐이라는 입장이다. 강하게 말한다면 물리적으로 환원 가능할 경우에만 가의 현상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둘째,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과학적으로 검증될 것이며, 현실의 기술적인 문제로만 안 되지, 원리적으로 그리고 미래의 기술력을 통해 검증 가능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셋째, 불가지론의 입장이다. 원리적으로는 환원되어야 하지만, 시간이 흐른다고 환원적 방법에 의존한 과학기술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기는 기계론적이고 환원적인 과학방법론으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혈의 위치와 운동의 흐름을 림프구와 림프선 그리고 전자기이론 등으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면 기를 자연과학적으로 검증한 셈이다. 한때 북한의 김봉한은 양의사로서 기를 자연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경성제대 의학부를 졸업한 김봉한은 1960년대 초 경락의 흐름과 흐름의 실체를 당시 최고의 과학 측정장비를 동원하여 검증하려고 했고, 이를 봉한액 및 봉한소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이 이론은 당시 소비에트와 일본 학자에 의해서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었지만 1960년대 중반 이후 북한 정권에 의해 알지 못할 이유로 김봉한이 숙청당하면서 그의 연구는 단절되었다.

 김봉한은 동위원소 p32를 고전 동양의학에서 말하는 경락의 위치에 투입하여 경락을 통한 기의 흐름을 나름대로 해명하였다. 그는 전통 침술과 자연과학을 접목시켰으나 무작정 서구 과학방법론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 고유의 방법론을 개발하는 것이 주요 급선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임파선이나 압통점과 같은 물리적 차원의 신체 지도 이론이 아닌 영위론(營衛論), 상한론에 근거한 장부론, 변증논치(辨證論治)의 고유 방법론에 의해 봉한소체 이론을 제시하였다. 물론 현재는 김봉한 봉한소체는 신경 말단의 감각수용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일부 평가가 있기는 하지만, 해부학적 감각수용기로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모종의 존재를 열린 과학으로 접근하려 했다는 점에서 김봉한 연구는 재평가될 만하다.

[동양철학산책/김교빈 최종덕 김눙용 전호근 김제란 김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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