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문경 아자개 장터


01

02

03

문경 가은 아자개 장터 

 문경 가은 아자개 장터

문경 가은 아자개 장터



조선시대 향시는 15세기 말부터 삼남지방(충청남북도,전라남북도,경상남북도)에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는 성종 1년(1470년)의 흉년으로 전라도의 농민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이듬해부터 서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들고 나와 장을 열었는데, 이것을 장문(場門)이라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부 인구 밀집 지역에서 일어난 현상으로 이때까지도 지방은 성읍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하여 살던 때여서 성 외곽에 정기적인 장이 설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하였던 것 같다. 또 장이 있었다고 해도 5일 간격으로 하루 왕복거리인 30~40리 마다 교통요충지에 장이 들어서게 된 것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의 현상이다. 즉 임진왜란 전후인 선조 때에 이르러 미약하나마 5일 간격으로 각 지역이 연결되는 시장권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장시의 개설은 더욱 진전되어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이르게 되면 전국적으로 확대된다. 이처럼 장시가 활성화되는 주요 원인으로 주거지의 확산과 수공업의 활성화, 대동법 시행, 그리고 이에 다른 상품 화폐경제의 발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의 시장도 마찬가지지만 18세기 이후 장시가 전국적으로 활성화 됨에 따라 시장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람과 물자가 만나는 곳으로 전국을 거미줄 처럼 연결시키는 연결망 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시장은 경제적 행위를 하는 곳을 넘어 각종 민속놀이는 물론 연회를 하는 장소로도 각광받게 되고 각종 정보도 시장을 통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역할을 하는 이른바 '장터 문화'를 만들어 내게 된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