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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萬海,卍海) 한용운(한유천),시인]

 

 

오직 민족을 위해 살다간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의 유명한 술회 내용..

 

나는 왜 중이 되었나?

 나는 왜 중이 되었나? 내가 태어난 이 나라와 사회가 나를 중이 되지 아니치 못하게 하였던가? 또는 인간 세계의 생사병고 같은 모든 괴로움이 나를 시켜 승방에 몰아넣고서 영생과 탐욕을 속삭이게 하였던가? 대체 나는 왜 중이 되었나? 중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하였나? 무엇을 얻었나? 그래서 인생과 사회와 시대에 대하여 어떠한 도움을 하여 왔나? 이제 중이 된 지 20년에 출가의 동기와 그동안의 파란과 현재의 심경을 생각하여 볼 때에 스스로 일맥의 감회가 가슴을 덮는 것을 깨닫게 한다.

 나의 고향은 충남 홍주였다. 지금은 세대가 변하여 고을 이름 조차 홍성으로 변하였으나, 그때 나는 어린 소년의 몸으로 선친에게서 나의 일생운명을 결정할 만한 중요한 교훈을 받았으니, 그는 국가 사회를 위하여 일신을 바치는 옛날 의인들의 행적이었다. 그래서 마냥 선친은 스스로 그러한 종류의 서책을 보시다가 무슨 감회가 계신지 조석으로 나를 불러다가 세우고 옛사람의 전기를 가르쳐 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사상에 밫나는 그분들의 기개와 사상을 숭배하는 마음이 생기어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보나 하는 것을 늘 생각하여 왔다. 그러자 그해가 갑진년 전해로 무슨 조약이 체결되어 뜻있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경성을 향하야 모연든다는 말이 들리었다. 그래서 좌우간 이 모양으로 산속에 파묻힐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하루는 담뱃대 하나만 들고 그야말로 폐포파립(弊袍破笠)으로 표연히 집을 나와 서울이 있다는 서북 방면을 향하여 도보하기 시작하였으니, 부모에게 알린 바도 아니요, 노자도 일푼 지닌 것이 없는 몸이며, 한양을 가고나 말는지 심히 당황한 걸음이었으나 그때는 어쩐지 태연하였다. 그래서 좌우간 길 떠난 몸이매 해지기 전까지 자꾸 남들이 가르쳐 주는 서울길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날은 이미 기울고 오장의 주림이 대단하게 되자 어떤 술막집에 들어 팔베개 베고 그 하룻밤 자느라니 그제야 무모한 걸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의구가 일어났었다. 적수공권으로 어떻게 나랏일을 돕고 또한 한학의 소양 이외에 아무 교육이 없는 내가 어떻게 소지를 이루나, 그날 밤 야심토록 전전반측하며 사고 수십 회에 이를 때에 문득 나의 아홉 살 때의 일이 유연히 떠오른다. 그것은 아홉 살 때 [서상기]의 통기 1장을 보다가 이 인생이 덧없어 회의하던 일이라, 영영일야(營營日夜) 하다가 죽으면 인생에 무엇이 남나? 명예냐, 부귀냐? 그것이 모두 아쉬운 것으로 생명이 끊어짐과 동시에 모두 다가 일체 공이 되지 않느냐. 무색하고 무형한 것이 아니냐. 무엇 때움에 내가 글을 읽고 무엇 때문에 의식을 입자고 이 애를 태우는가 하는 생각으로 5,6일 밥을 아니 먹고 고로(苦勞) 하던 일이 있었다.

인생은 고적한 사상을 가지기 쉬운 것이라, 이에 나는 나의 전정을 위하여 실력을 양성하겠다는 것과 또 인생 그것에 대한 무엇을 좀 해결하여 보겠다는 불같은 마음으로 한양 가던 길을 구부리어 사찰을 찾아 보은 속리사로 갔다가, 다시 더 깊은 심산유곡의 대찰을 찾아간다고 강원도 오대산의 백담사까지 가서 그곳 동냥중, 즉 탁발승이 되어 불도를 닦기 시작하였다.

[三千里, 1930.5.1]

 

비밀(한용운)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視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聽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밖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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