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훼손되기 직전의 모습을 담고 있는 사진들..

 

경복궁의 서쪽문인 영추문 붕괴사고 현장, 성벽 한쪽이 허물어져 있다.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1927년 조선총독부 건물이 들어서면서 이전되기 전의 모습.

 

창덕궁의 원래 위치인 보루각에 있을당시의 물시계 모습(하단부)

 

창덕궁의 원래 위치인 보루각에 있을당시의 물시계 모습(상단부)

 

1929년 건춘문 일대로 옮겨진 광화문에서 바라본 경복궁 동쪽 전경과 건춘문, 동십자각의 모습, 왼쪽 중학천의 모습과 반대편에 빽빽히 들어선 민가들이 보인다.

 

1935년 경복궁 건천궁 터에서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짓기 전 지진제를 지내는 모습, 일본의 전통 신도의 절차에 따라 제를 지내고 우가키 가즈시게 총독이 제를 올리고 있다.

 

1922년 일본 도쿄에서 살던 영친왕(이은)과 영친왕비(이방자) 일행이 일시귀국해 희정당으로 들어서는 모습

 

맨앞이 순정효황후,영친왕(이은)과 영친왕비(이방자)가 차례로 창덕궁 후원을 거닐고 있다.

 

경복궁의 자경전에 새겨진 꽃문양

 

일시 귀국한 영친왕 일행이 동경으로 다시 돌아가기전 창덕궁 인정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복궁 근정전 주변의 모습, 지금과는 달리 전각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경복궁 자경전의 모습,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1867년 조대비를 위해 지은 전각 이후 두차례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고종15년(1888년) 재건되었다.

 

창덕궁 인정전 앞모습, 일제에 의해 박석들이 파헤쳐지고 있다. 대한제국 문무고관들이 황제에게 하례를 하던 상징적인 공간이 일제에 파괴되고 있다.

 

지금도 경복궁이건 창덕궁이건 조선의 궁궐을 방문을 해보면 원래의 모습과 많은 차이가 있다. 이전 사진들에서 보듯 빽빽히 들어찬 전각의 모습들은 이제 그 터만 남긴채 빈터로 남아있다. 치욕의 역사인 일제강점기 상징적인 국가의 중심 공간이던 궁궐은 그 수난을 피해가지 못한채 뜯기고 헐리고 원형에 비해 너무나 초라한 모습으로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조금이나마 복원이 진행되었고, 또 진행계획이 일정부분 잡혀있다는 것이다. 비록 예전 원래의 모습을 100% 되찾기는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원형에 가깝게 복원이 되면 웅장하고 자랑스럽던 옛 궁궐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니 복원이 끝나는 그날이 기다려진다.

복원 작업이 잘 진행돼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으로 남게되길 기대해 본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