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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2140호 데니 태극기 정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2140호 데니 태극기 반대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2140호 '데니 태극기'는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미국인 데니(Owen N. Denny, 1838~1900)가 1890년 5월 청의 미움을 받아 파면되어 미국으로 돌아갈 때 고종으로부터 선물로 하사 받아 가져간 것으로, 데니가 1900년 자식이 없이 죽은 후 다른 가족에 의해 보관되어 오다가 1981년 데니의 후손인 윌리엄 랠스턴(William Ralston)이 우리나라에 기증하면서 국내로 돌아왔다.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태극기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이 태극기에서 특이한 것은 태극기의 태극 문양과 태극기를 게양할 때 매달기 위한 끈의 위치인데, 태극 문양은 비슷한 시기 만들어진 다른 태극기와 비교했을 때 4괘의 위치와 태극문양이 차이가 있는데, 이는 태극 문양 박음질을 하면서 실수로 좌우를 바꿔 뒤집은 모양으로 박음질 하면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 태극기를 매다는 끈의 위치가 우측에 있는 것은 당시 글을 쓰는 방향이 우측에서 좌측으로 쓰던 관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며, 당시에는 태극기를 국기봉에 매달 때 우측 부분을 매달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86년부터 1890년까지 고종의 외교 고문을 지낸 데니(Owen N. Denny, 1838~1900)는 한자식 이름으로 덕니(德尼)라고 불렀다. 미국 오하이오주의 모르간 카운테에서 출생하였으며, 오리건주에서 성장하였다. 레바논 아카데미를 거쳐 윌리엄에테 대학에서 법학 공부 후 1862년 변호사가 되어, 1868년까지 와스코 카운티의 판사를 역임, 1870년에서 1874년까지 오리건주의 포틀랜드에서 즉결 심판소 판사를 지냈다. 1876년부터 1877년까지 오리건과 알레스카에서 정부의 세금 징수관을 역임하다 같은 해 청나라 천진(天津) 주재 미국영사 1880년 상해(上海) 주재 미국영사로 재직하였으며, 1886년 청나라 정치인 이홍장(李鴻章·1823~1901)의 추천으로 조선 정부의 외교 및 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하였다. 그는 외교고문을 지내는 동안 '청한론(淸韓論, China and Corea)' 저술을 통해 근대 국제법 이론에 근거하여 조선이 청에 속한다는 속방론을 부정하고 조선에 대한 청의 간섭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조선은 엄연한 독립국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데니가 쓴 '청한론'은 총 47쪽으로 구성되었으며, 크게 3가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첫째, 서구의 국제법적 이론을 토대로 조선이 독립국임을 밝혔으며, 청의 조선 속방론과 내정간섭을 부정. 둘째, 원세개(袁世凱, 위안스카이 1859~1916, 청나라의 북양군(北洋軍)에 기반을 둔 중국의 군벌 세력 수장이며, 중국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로 알려진 인물)의 비리를 폭로. 셋째, 통치권자로서 고종의 능력을 높게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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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618호 국새 칙명지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18호 국새 칙명지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18호 국새 칙명지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681호 국새 칙명지보(國璽 勅命之寶 또는 금은제 칙명지보金銀製 勅命之寶)는 1897년 10월 당시 조선의 국왕이었던 고종이 서울에 있는 환구단(圜丘壇,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제단)에 올라 대한제국이라는 국호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이후 기존의 조직과 관직, 제례 등을 황제국의 품격에 맞도록 다시 만드는 조치를 하였는데, 그 중 하나의 조치로 새롭게 만들어진 국새이다. 따라서 기존에 사용해왔던 거북이 장식을 버리고 황제를 상징하는 용의 형상을 넣어 장식하였으며, 천은(天銀, 순도가 100%인 은을 십성은十成銀 또는 천은天銀이라고 한다.)에 금을 도금하여 만들었다. 국새를 허리에 찰 수 있도록 만든 끈 장식인 인수(印綬)는 잃어버린 상태이며, 일제강점기 후 일본에 빼앗겼던 국새와 어보(御寶, 국가와 왕권을 상징하는 예물로 보통 왕·왕비·왕세자 등 왕실의 의례용 도장을 통칭한다.)는 해방 후 총무처에서 관리하다 625전쟁 당시 많이 잃어버리고 현재는 대원수보(大元帥寶, 군대 운영과 관련된 업무에 사용), 제고지보(制誥之寶, 고급 관원의 임명에 사용), 칙명지보(勅命之寶, 통신조서에 사용) 3개만이 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 중이다.

 

크기

가로 9.2cm X 세로 9.2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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