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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함석헌(咸錫憲) 선생(1901.3.13~1989.2.4)/위키백과사전]


함석헌 선생과 노장 사상


독립운동가,종교인,언론인,출판인이자 기독교운동가, 시민사회운동가였던 함석헌 선생은 오늘날의 노장사상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그 분의 노자, 장자 사상을 대하는 태도를 그 분의 말씀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노자'에는 미명(微明)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보통 밝다면 환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모를 사람이 없지만, 그러나 이 천하만물을 살리는 참빛은 빛이 아닌 빛이다. 그러므로 이(夷)요, 희(希)요, 미(微)라고 한다. 숨은 빛, 가려진 빛이다. 예수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왜 숨겨져 있고 가려져 있나? 물건이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일은 힘의 표현이다. 힘은 강하지만 강하기 때문에 약하다. (중략) 모든 있음은 있음이 아닌 데서 나온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다. 모세가 당신이 누구십니까? 했을 때 온 대답이 '네가 왜 내 이름을 묻느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했다. 천지 만물은 자기 주장을 아니 하는 이, 자기를 무한히 내 주는 이, 스스로 희생하는 이가 있어야만 있을 수 있다. (중략) 세상에 악이 있고 불의가 있는 것처럼, 그 악과 불의가 있으면서도 세계가 서 가는 것은 진리가 있고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일은 없다.  노자는 이래서 도를 유(柔)한 것 약한 것으로 체험했다."


 "물질주의, 지식주의, 권력주의, 적극주의의 서구문명이 차차 사양길에 접어 들었고, 사람들은 그 산업 방법, 그 학문, 그 종교를 근본에서 고채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때를 당했다."라는 현실 인식에서 노자의 세 가지 보배, 즉 사랑(慈), 수수함(儉), 감히 천하에 앞장 못 섬(不敢爲天下先)의 카다란 가치를 이야기 하며, "하늘이 건져 주려 할 때는 사랑으로 둘러 준다(天將救之, 以慈衛之)."


 "사실 이날까지의 옛 글에 대한 모든 해석은 권위주의, 절대주의, 귀족주의, 고정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중략) 마지막으로 옛글을 고쳐 씹는 데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지금 있는 종교로부터 올 반대이다. (중략) 그럴 때 제일 문제되는 것은 권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는 석가나 예수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결코 형식에 거리끼지 않았다. 또 저쪽을 승인시키자는 것이 목적 아니었다. 그들에게 권위는 영(靈)에 있었지 글이나 제도에 있지 않았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새 해석을 하고 깨쳤다. 그러고는 옛날의 전통을 한 점 한 획도 무시하지 않노라고 했다. 눈으로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었다."


 "나는 노자, 장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숲 속에 깃들인 뱁새' 같이 '시냇가에서 물 마시는 두더지' 같이 날마다 그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이다. (중략) 나는 일제 시대에 '구약성경'의 '이사야', '예레미야'를 많이 읽었다. 그 압박 밑에서 낙심이 나려 하다가도 그들의 굳센 믿음과 위대한 사상에 접하면 모든 시름을 다 잊고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설 수가 있었다. (중략) 마찬가지로 이 몇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올 수 있는 것은 날마다 노자, 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산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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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학과 양명학의 차이점

 

1.본성이 이치인가 마음이 이치인가

 주자학의 기본명제는 "본성이 곧 이치이다."라는 의미의 '성즉리(性卽理)'이고, 양명학의 기본명제는 "마음이 곧 이치이다."라는 의미의 '심즉리(心卽理)'이다. 주자학에서는 모든 사물이 각각의 이치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사람에게는 사람의 이치가 있고, 개에게는 개의 이치가 있으며, 꽃에는 꽃의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치는 하늘이 정한 것이다. 하지만 양명학은 각각의 사물에 하늘이 정한 이치가 들어 있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모든 이치가 각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맹자가 "만물이 내게 갖추어져 있다."라고 한 말의 연장인 셈이다.

 

[사진 왕수인(왕양명)/네이버 지식백과]

 

 한번은 왕수인이 친구와 함께 유람할 때 한 친구가 절벽에 피어 있는 꽃나무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세상에 마음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였는데 꽃나무는 깊은 산속에 있으면서 제 스스로 피고 지는 것이니 과연 내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자 왕수인은 "그대가 이 꽃을 보기 전에는 이 꽃과 그대 마음이 모두 고요할 뿐이었지만, 그대가 와서 이 꽃을 보았을 때 비로소 꽃빛깔이 일시에 또렷해졌으니, 곧 이 꽃이 그대 마음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는가?"라고 답하였다.

이런 왕수인과 친구가 절벽에 핀 꽃을 보면서 나눈 대화가 양명학의 '심즉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사진 주희/네이버 지식백과]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주자학과 양명학 모두 이(理)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사유체계는 똑같이 관념론에 속한다. 다만 양자를 구분한다면 주자학은 내 밖의 사물이 객관적으로 있다고 보는 입장이므로 객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리고, 양명학은 객관적 존재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주관적 관념론이라고 불린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모두 유학이며 유학의 가장 큰 특징은 인본주의이다.

인본주의란 세계 만물의 기준을 사람으로 보는 인간중심주의를 뜻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사물에 대한 감각과 인식이 인간 개개인의 판단에 달여 있기 때문에 그 개별 인간 하나하나가 만물을 재는 자가 된다는 뜻이다. 얼핏 보면 유가의 인간중심주의와 같아 보인다. 그러나 유학의 또다른 특징은 도덕중심주의이다. '성즉리'와 '심즉리'의 이가 자연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도덕법칙인 것이며 그런 점에서 '성즉리'의 성은 도덕성이고, '심즉리'의 심은 도덕심이다.

 주희는 '성즉리'를 깨달아 가는 과정이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고 보았다. 하지만 예전부터 전해 오는 '대학'에서는 격물치지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다고 보고 정이천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더하여 새로 134자를 만들어 넣었다.

 '격물치지'는 '사물에 나아가(格物)' '앎을 완성한다.(致知)'는 뜻이다. 이 말만 보면 앎의 대상이 사물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궁극적인 탐구대상은 사물이 아니라 그 사물 속에 들어 있는 이(理)이다. 그렇기 때문에 '격물궁리(格物窮理)'라고도 한다. 주희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세상만물은 모두 각각의 이를 지니고 있고 사람에게는 그것을 파악할 수 있는 신령한 앎의 능력이 마음속에 있다. 그렇기 때문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이치를 바탕으로 매일매일 탐구해 가다 보면 마침내 하루아침에 모든 사물의 이치를 꿰뚫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물의 겉과 속, 정교하고 미세한 사물과 거친 사물 할 것 없이 사물의 이치가 다 깨달아질 것이며 내 마음의 온전한 본 모습과 그 마음의 활용이 밝아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주희의 말처럼 온 세상 만물을 다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주희는 독서를 통해 깨닫는 것과 함께 유추법을 제시하였다. 유추법이란 10개 가운데 7~8개를 깨달으면 나머지는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얼핏 보면 천하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 쉽게 이해 되지 않는다. 이 점은 이렇게 생각해 보자. 개와 고양이와 나무와 돌의 이치는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각각의 모습과 역할이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개의 이치는 어떤 것일까? 본래 성리학에서는 이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선(善)이라고 본다. 따라서 개의 이치를 따지는 일은 어떤 개가 가장 좋은(착한) 개인지를 찾는 일과 같다. 가장 좋은 개는 주인 잘 따르고 집 잘 지키는 개일 것이고 주인을 물거나 도둑을 보고 겁을 내는 개는 나쁜 개가 된다. 그리고 이런 평가 원칙은 지금 우리집에서 기르는 개만이 아니라 옆집 개와 뒷집 개,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한 다른 나라 개들까지도 모두 해당되며, 이미 죽은 개나 앞으로 태어날 개에게도 해당된다. 그렇기 때문에 성리학에서는 이치가 사물 존재보다 앞선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 좋은(착한) 고양이는 어떤 고양이일까? 쥐 잘 잡고 주인 잘 따르는 고양이가 착한 고양이일 것이며 이 원칙도 이미 죽은 고양이나 앞으로 태어날 고양이에게까지 해당된다. 나무도 마찬가지이다. 목재로 쓰기도 좋으면서 예쁜 꽃과 풍성한 열매를 맺는 나무가 좋은(착한) 나무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개와 고양이와 나무의 이치는 다르지만 좋은 나무, 좋은 고양이 좋은 개로 생각을 넓히면 그 이치는 모두 같아진다. 따라서 모든 만물의 이치는 결국 선의 이치라는 점에서 같다는 결론이 나오며 이러한 이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사실 위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사물의 이치를 따지는 것은 사람 중심의 논리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인 유학의 입장에서는 이상할 것이 없다. 그래서 깨달은 궁극의 진리는 그 이치가 내 속에 들어 있는 사람다움의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희는 만물의 이치를 다 합친 것이 태극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격물치지를 통해 궁극에는 태극을 깨닫는 것이 된다.

 그러나 젊어서 주자학을 공부했던 왕수인은 주희의 격물치지 이론을 직접 실험해 보았다. 1주일 동안 대나무 앞에 앚아서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고 대나무만 바라보며 대나무의 이치를 탐구하다가 병을 얻었다. 그런데도 대나무는 대나무대로 나는 나대로 있음을 경험하였다. 왕수인이 깨달은 것은 내 마음이 대나무에게 갈 때 대나무가 비로소 존재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내 마음 속에 들어 있는 타고난 양지를 잘 기르면 그만이라는 것이었다. 이 같은 왕수인의 생각은 생 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다.

 

 여우는 하던 이야기로 되돌아 갔다. "내 생활은 단조로워. 나는 닭을 쫓고, 사람들은 나를 쫓지. 닭들은 서로 비슷하고, 사람들도 모두 비슷해. 그래서 난 좀 권태로워. 그러나 네가 날 길들인다면 내 생활은 햇빛을 받은 것처럼 밝아질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와는 다르게 들릴 너의 발자국 소리를 나는 알게 될 거야. 만일 다른 발자국 소리가 나면 나는 땅속으로 숨을 거야. 네 발자국 소리는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리고 저길 봐! 밀밭이 보이니? 나는 빵을 먹지 않아. 밀은 나한테 쓸모가 없어. 밀밭을 보아도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아. 그래서 슬퍼! 그러나 네 머리카락은 금빛이야. 그래서 네가 날 길들인다면 정말 신날 거야! 밀밭도 금빛이기 때문에 밀은 너를 기억하게 해줄 거야. 그래서 밀밭을 스치는 바람 소리까지 사랑하게 될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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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리학과 양명학의 의미와 사상사적 영향

 성리학은 중세 시기 동아시아 3국 모두의 보편적 세계관이 되어 700년 이상을 이어 왔고, 양명학 또한 인간 주체와 실천을 강조하면서 근대적 사유의 싹이 되었다. 그러나 주자학은 명대 이후 사회구조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교조주의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으며 양명학 또한 인륜이나 사회기강을 거부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사진 태극도설/네이버 지식백과]

 

 주자학은 특히 중세 봉건왕조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 사상적 유연성이나 새로운 발전의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고착화하는 경향을 보였고, 양명학 또한 개인 주체를 강조하고 실천을 중시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래서 명말 청초에 이르면 양명학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갖는 새로운 학문 경향이 등장한다.

 

[사진 황종희/네이버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사진 고염무/네이버 지식백과]

 

 그러한 경향의 처음을 연 사람은 황종희, 고염무, 왕부지 등이다. 황종희는 양명학의 폐단을 비판하고 개인적 도덕 수양의 한계를 넘어선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면서 계몽사상가적 정치 이론을 전개하였다. 고염무 또한 경전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세론을 찾으려 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훈고학과 비슷한 고증학을 새로운 학문 방법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왕부지는 고대부터 내려온 기철학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상을 마련하였으며 이러한 흐름은 대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19세기 후반 들어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근대로의 전환이 일어났으며 그 과정에서 서구의 충격과 그에 대한 대응이 복잡하게 전개된다. 크게는 봉건제를 유지하면서 성능이 우월한 무기를 중심으로 서구의 우월한 과학기술만을 받아들이려는 양무파(洋務派)와 이를 넘어서서 정치,경제의 개혁까지를 주장한 변법파(變法派)가 대립하였다. 주자학과 양명학은 모두 근대 이전까지 사회를 이끄는 사상으로 기능하였으며 서구 문물의 유입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늘날 다시 서구 중심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대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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