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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454호 '경주 노서동 금팔찌'는 경북 경주시 노서리에 있는 무덤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유물로 지름 8cm 크기이다.

팔찌를 장식하는 용문양 등을 표현하는 데 쓰인 상감기법 등은 당시 뛰어난 금 세공기술을 엿볼 수 있는 걸작품으로 팔찌의 납작한 단면 바깥으로 각기 59개의 돌기를 내어 하나하나 옥을 상감하여 장식했다.

돌기의 좌우에는 비늘이 세밀하게 표현된 용들이 입을 벌리고 서로 다른 용의 꼬리를 무는 듯한 모습이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보물 454호 '경주 노서동 금팔찌'/ⓒ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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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17호 '천마총 금제 관식(나비 모양 관장식)'은 경북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에서 출퇴된 5~6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높이 23cm, 너비 23cm 크기이다.

새날개 모양 관장식과 마찬가지로 관모의 앞에 꽂아 장식하기 위한 장식구로, 새날개 모양 관장식과 비교했을 때 크기가 절반가량 작고 한 장의 금판으로만 제작되었으며, 뚫림 무늬나 달개의 배치 등에서 화려함이 다소 떨어지는 관장식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화려함이나 재질에서 다소 차이가 있지만 나비 모양 관장식도 새날개 모양 관장식과 마찬가지로 신라의 지방 수장 무덤에서 출토되는 위세품 중 하나이므로 향후 새날개 모양 관장식과의 연관 및 관계는 밝혀내야할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보물 617호 '천마총 금제 관식(나비 모양 관장식)'/ⓒ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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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18호 '천마총 금제 관식(새날개 모양 관장식)'은 경북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에서 출퇴된 5~6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높이 45cm 크기이다. 

유물의 이름 그대로 관모의 앞에 꽂아 화려하게 장식하기 위한 장식구로, 중앙부의 꼬다리와 양쪽의 날개 모양 금판 등 모두 3장을 연결하여 만들었다. 

꼬다리는 새의 머리와 같이 아래가 좁고 위가 넓으며, 단면은 "∧" 형태로 접혀있는데, 꼬다리의 양쪽에 붙는 날개모양 금판은 간략화된 용무늬 또는 넝쿨무늬가 촘촘하게 뚫리고, 400여개 이상의 달개를 매달았으며,  관식과 뚫음무늬 가장자리를 따라 두드려 돌출시킨 점을 연속적으로 배치하는 등 매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러한 금제 관식은 신라 왕실과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이며, 신라의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 수장의 무덤에서도 출토되는데 출토될 당시 무덤의 주인공이 직접 착용한 상태에서 발굴되는 금관과 달리 부장품궤에서 껴묻거리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 특징이 있다.

보물 618호 '천마총 금제 관식(새날개 모양 관장식)'/ⓒ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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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24.8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8.4cm, 입지름 10.5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9.6cm, 입지름 10.4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13cm, 입지름 10.1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되었다.

유리병과 잔은 주변의 빛을 빨아들일 듯한 신비로운 연녹색으로 그리스의 오이노코에(Oinochoe)라고 하는 유리병과 형태가 거의 유사한데, 시리아 등지의 지중해 동부 주변에서 주로 만들어졌으며 비단길 및 바닷길을 통해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병의 주둥이 모양은 나팔잎 모양으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주둥이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봉수병 鳳首甁'이라고 불리게 됐다.

병의 주둥이와 목에 파란색 띠를 붙인 것은 당시에 유행했던 장식기법이며, 손잡이에 감긴 금실은 부러진 손잡이를 수리하기 위한 용도로 추정된다.

이와같은 유리 그릇들은 금관이나 금 허리띠와 같이 정치, 사회적 신분이 높은 왕릉급 대형 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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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92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2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는 길이 120cm, 너비 3.6cm 크기의 4~5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되었다.

신라 왕족의 무덤에서는 금으로 화려하게 제작된 허리띠가 거의 예외없이 출토가 되는데, 이러한 허리띠의 모양과 재질을 통해 무덤속 주인공의 사회적 신분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같이 신라의 화려한 장례문화는 6세기 이후의 사회변화와 함께 점차 사라지게 된다.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는 넝쿨무늬를 투조(판금, 목재, 석재 등과 같은 기본 재료의 뒷면까지 완전히 도려내 일정한 형상을 나타내는 조각 세공 기법의 하나)하여 만든 방형판에 심엽형 수하식이 매달려 있으며, 심엽형 수하식에는 둥근 달개가 매달려 있다. 드리개는 방형과 타원형 금판을 연결하고 끝에는 약통, 물고기, 숫돌, 곱은옥 등 다양한 상징물들을 매달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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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91호, 기마인물토기(하인상)/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1호 기마인물형토기(하인상)은 기마인물형토기(주인상)과 함께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 금령총에서 출토된 높이 23.4cm 크기의 토기이다.

말과 사람의 모습이 매우 비슷하며, 말을 탄 인물은 넓은 밑받침에 서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조각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이 비어 있고, 잔모양의 수구(受口)가 있는 동물형 토기이다.


[관련글: 기마인물형토기(주인상) 보기]


말의 궁둥이 쪽에는 안으로 구멍이 뚫린 수구와 그 가장자리에 뾰족하게 나온 장식이 있고, 가슴에 긴 귀때(주전자의 부리와 같이 생긴)가 있어 수구로 물을 부으면 귀때로 물이 나오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토기에 보이는 인물은 그 차림새와 크기에 따라 각각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하인상은 기본적인 형태는 주인상과 유사하지만, 세부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상투머리에 수건을 매고 있고, 웃옷은 입지 않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오른손에 방울 같은 것을 들고 있고, 말갖춤 장식도 주인상에 비해 간략하고 발걸이와 다래는 아예 표현되어 있지 않다.

주인상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토기라고 보기 보다는 제사와 같은 의식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토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글: 기마인물형토기(주인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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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은 경북 경주시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은잔으로, 신라시대 유물이다. 은잔의 겉면은 연꽃무늬로 위아래 단을 나누고 3각, 5각, 6각형의 무늬를 겼으며, 가운데에 거북이 등껍질 모양 안에 각각 노루, 새, 호랑이, 말, 뱀, 가릉빈가, 사슴, 사람 등의 무늬가 양각되어 있다.

바닥은 보상화잎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그 씨방 안에는 고루려벽화에서 보이는 삼족오(三足烏)가 새겨져 있는데, 바닥 안쪽에서 바깥으로 두드려 돌출시켜 놓은 형태로 보인다.

겉면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무늬들은 모두 두드린 후 날카로운 칼 등으로 세부 무늬를 정교하게 다듬는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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