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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미래의 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마음에 달려 있나니, 그러나 현재에 관해서는 "하루를 일생으로 간주하여"(세네카) 그 유일한 현실인 '시간'을 되도록 즐겁게 보내야 한다.


 인간은 활동 범위를 제한하는 데서 행복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다양한 관계를 되도록 단순하게 하고, 생활방식을 한 가지 형식으로 하는 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만든다. 간소하고 단순한 생활 자체는 삶에 무거운 짐을 덜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은 강물처럼 파도도 일지 않고 소용돌이도 치지 않으면서 조용히 흘러간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결국 마음이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가, 그리고 그 마음이 무엇에 의하영 움직이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 순수한 지적 생활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다만 이 지적인 생활을 감당하고 즐기려면 뛰어난 정신적인 소양이 있어야 한다. 만일 현실적인 일을 활발히 해 나가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잠시 내면생활은 중단하는 것이 상책이다.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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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그림자는 항상 함께 있고,

잘못 또한 없는바 아니지만,

그러나 안에서 빛나는 광명은,

밖의 암흑을 밝게 하나니,


절실히 완성하기를 염원하지만,

이 세상에서는 얻지 못한다.

그러나 완성만을 찾고자 애쓰는 자는,

그 영혼에ㅔ 평화를 얻으리니.

[독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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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람이 말하고 행하고 생각한 것에 마음 쓰지 않고, 오직 자신이 행하는 것이 올바르고 신의 마음에 들도록 마음 쓰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여가를 버는가. 선한 사람이라면 주위의 나쁜 성격들을 둘러볼 것이 아니라, 좌고우면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곧장 달려가야 한다.


♥인간사란 얼마나 덧없고 하찮은 것인지 보라. 어제는 한 방울 진액이었다가 내일은 미라나 재가 된다. 따라서 이 짧은 시간을 자연에 맞게 보내고 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떠나도록 하라. 올리브가 다 익은 뒤 낳아 준 대지를 찬미하고 길러 준 나무에 감사하며 떨어지듯이.


♥앞으로 너에게 고통을 가져다주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잊지 말고 다음의 원칙을 적용하라. "이것은 불운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을 용감하게 참고 견디는 것은 행운인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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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티, 좋은 글귀 보기]



♥기쁨은 스스로 기쁨을 얻기 위해 힘들게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생활만 올바르게 한다면 오로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가장 단순하고 돈도 들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얻어지는 기쁨이 최상의 기쁨이다.


♥인간은 다만 두 가지 일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다. 그 두 가지 것은 바로 걱정거리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끝없는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평화를 약속하고 있다. 즉 요한복음 제14장 제27절에는 '평안을 그대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그대에게 주노라. 내가 그대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그대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였고, 또 마태복음 제11장 제28, 29절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말하였다.


♥인간이란 세상살이에서 괴로움이나 불행을 피할 수 없다. 반드시 그것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경우 먼저 생각을 신중히 해야만 된다. 그다음에는 일시적인 가정을 초월해서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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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당할 때마다 상기하라. 고통은 수치스런 것도 아니며 키를 잡고 있는 마음을 더 열등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마음은 이성적인 한, 공동체적인 한, 고통으로 파괴될 수 없기 때문인다. 그 밖에도 대부분의 경우 "네가 그 한계를 생각하고 상상력으로 거기에 뭔가를 덧붙이지만 않는다면, 고통은 참을 수 없는 것도 아니고 영원한 것도 아니다."


♥네 인생 전체를 그려 보고 낙담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네가 겪었고 겪게 될 온갖 어려움을 한꺼번에 떠올리지 말고, 그때그때 현재의 일과 관련하여 "이번 일에서 참을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해 보라. 스스로 시인하기가 부끄러울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너를 짓누르는 것은 미래도 과거도 아니고 언제나 현재라는 것을 상기하라. 그러나 현재는 네가 그것만을 떼어서 살펴보고, 또 네마음이 그런 사소한 것도 감당하지 못할 경우 네 마음을 나무라고 나면 그 의미가 축소될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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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사람, 만족한 바보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


♥모든 의견에 평등한 자유가 인정되는 것이 인류에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양심적으로 인정하는 마음이 우러나야 하고, 이러한 마음이 우러나는 인내의 태도야말로 추천하고 권할 만한 값어치가 있는 유일한 관용이며, 또 무척 높은 도덕관념을 가진 인간에게 가능한 단 하나의 관용인 것이다.


♥자유라는 이름에 합당한 유일한 자유는, 우리가 타인의 행복을 탈취하려고 시도하거나, 행복을 성취하려는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 자신의 선을 추구하는 자유이다.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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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여생은 얼마 남지 않았다. 산 위에서처럼 살아라. 어디서나 우주의 시민으로 사는 것이라면 여기에서 사나 저기에서 사나 아무런 차이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너에게서 자연에 맞게 사는 진실한 인간을 보고 인식하게 하라.


♥항상 시간의 전체와 실체의 전체를 상상하라. 그리고 모든 개별 부분들은 실체에 비하면 무화과씨에 불과하고, 시간에 비하면 송곳 한 번 돌리는 순간에 불과하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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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적 힘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도덕적 힘은 사용될 때만 향상된다.


■ 만일 기독교인들이 이교도들이 기독교에 공평하게 대하기를 가르치려고 한다면, 그들 자신이 이교도에게 공평해야 한다.


■ 인간은 선과 악을 구별하도록 서로 돕고, 선을 선택하고 악을 기피하도록 장려해야 할 의무를 상호 간에 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고귀한 재능의 활용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그리고 우매하기보다는 현명하고, 비천하기 보다는 고양적인 대상과 사상에 대한 그들의 감정과 목표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서로를 계속해서 자극해야 한다.


■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종교를 믿도록 만드는 것이 한 사람의 의무라는 생각은 이제껏 자행되어 온 모든 종교적 박해의 근원이며, 만일 이 생각이 수용된다면 모든 박해는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다.

[존 스튜어트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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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로운 생활을 어느 정도 참아 나가는 능력은 어렸을 때 길러 두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 대하여 오늘날 부모들은 실수가 많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연극이나 맛있는 음식 같은 너무나 소극적인 오락만 즐겨 제공한다. 그리하여 날마다 같은 생활을 되풀이하는 것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가를 모르고 있다. 특수한 경우는 예외로 치고 어린이의 기쁨은 노력과 창조를 통하여 자기 환경 속에서 스스로 찾아낼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과 마찬가지로 대지에서 영양을 섭취한다. 대지에서 우러나는 생명의 리듬은 매우느리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대지의 필연적인 순환이다. 휴식은 운동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리고 이 오랜 생명의 성쇠를 함께 맛보는 것은 어른들보다 어린이에게 더욱 필요한 일이다.



지구의 생명과 접하는 기쁨은 어딘가 모르게 깊은 만족감이 따른다. 이 기쁨은 소멸되어도 그것이 가져온 행복은 그대로 남게 마련이다. 이 기쁨은 물론 자극적인 오락만큼 강하지는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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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도담삼봉에 있는 정도전 동상/출처: Steve46814 at ko.wikipedia.com]


 정도전(1342~1398)의 호는 삼봉(三峯). 자는 종지(宗之), 본관은 봉화로서 아버지는 정운경(鄭云敬)이고 어머니는 우연(禹淵)의 서녀(庶女)이다. 당시 유학자로서 명망이 높았던 이색(李穡)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362(공민왕 11)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1375(우왕 1)년 북원(北元) 사신을 맞이하는 관리로 임명된 것에 반발하였다가 나주로 귀양갔다. 1388년 이성계(李成桂)가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권력을 잡자 그의 천거로 요직에 등용되었다. 이듬해 창왕을 폐위하고 공양왕을 옹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공신에 책봉되었다. 1391(공양왕 3)년 과전법(科田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반대파의 탄핵으로 봉화로 유배되었다가 이방원(李芳遠)이 정몽주(鄭夢周)를 제거한 뒤 중앙으로 복귀하였다. 이 해에 조준(趙浚), 남은(南誾) 등과 함께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하여 실권을 장악하고 반대파를 숙청하였다. 개국 후 태조의 두 번째 부인인 강씨의 둘째 아들 방석(芳碩)을 세자로 책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군사와 재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조선의 국가 체제를 정비하였다. 1396년 명나라에서 외교 문서의 내용을 문제삼아 정도전에게 명나라로 입조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병을 핑계로 거부하였다. 1397년 요동 정벌을 주도하였으나 이듬해 이방원에 의해 피살되었다.



정도전의 삼봉집(三峯集)

위로는 음양을 조화롭게 하고 아래로는 서민을 편안하게 하며, 안으로는 백성을 밝게 다스리고 밖으로는 오랑캐를 진정하고 무마하는 것이니 국가의 포상과 형벌이 여기에 관련되며 천하의 정치와 명령이 여기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사진 삼봉집/한국학중앙연구원]


'삼봉집'은 정도전의 사상과 정치적 지향을 담고 있는 책이다. 우왕 말년에 작성된 권근(權近)의 서문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 때 처음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1397(태조 6)년에 아들 정진(鄭津)에 의해 증보 간행되었는데, 이 때까지는 서문이 중심이었다. '삼봉집'은 이후 세 차례에 걸쳐 중간되었다. 1465(세조 11)년에 손자 정문형(鄭文炯)이 '경제문감(經濟文鑑)',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 불씨잡변(佛氏雜辨)', '심기리편(心氣理篇)', '심문천답(心問天答)' 등을 추가하여 간행하였다. 이어 1481(성종 18)년에는 정문형이 시부(詩賦) 100여 수와 '경제문감별집(經濟文鑑別集)'을 추가하여 간행하였다. 그리고 1791(정조 15)년에 왕명에 따라 성종대의 판본을 정리하여 다시 간행하였는데, 현재 전해지는 판본의 대부분은 정조 때 간행된 것이다.

 '삼봉집'은 모두 1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권 1에서 권 4까지는 각종 시문과 악장(樂章)이며, 권 5는 '불씨잡변', 권 6은 '심기리편'과 '심문천답', 권 7은 진법(陣法)과 습유(拾遺), 권 8은 부록, 권 9와 권 10은 '경제문감', 권 11과 12는 '경제문감별집', 권 13과 권 14는 '조선경국전'이다.

 이것을 다시 분류하면 대체로 시문(詩文), 경세서(經世書), 사상서(思想書), 병서(兵書), 악장(樂章) 등 다섯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삼봉집'은 고려를 대신한 조선 국가의 사상적, 법제적 기초를 닦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사상적 관점에서 보면, 불교를 대신하는 성리학의 이념적 위치를 확립하였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불씨잡변'은 고려 말에 활발히 제기된 배불론을 집대성한 것이면서 종래의 단선적 비판을 넘어 체계적 비판을 시도한 것이다. 물론 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제시된 비판이 아니라 불교에 대한 성리학의 우위를 제시한다는 정치적 목적성이 강하게 반영되어 논리가 일방적 성향을 띠고 있다. 하지만 불교에 대한 체계적 비판은 성리학의 정착을 위한 기초작업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후 기존 이념에 대한 비판의 수준을 넘어 당대의 이념으로서 그 내용을 심화시킬 수 있었다.

 한편 법제적 관점에서 보면, 15세기 조선 국가 체제 정비의 초석을 놓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조선은 태조대에 '경제육전'의 편찬을 시작으로 육전 체제에 입각한 법전의 정비를 모색하였고, 이것은 영구히 지켜 나갈 법전으로서 '경국대전'을 반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조선경국전'은 바로 법전에 입각한 국가 운영이라는 정책 지향의 출발이 되는 것이다. 이는 육전의 내용 중에서도 '헌전'을 특히 강조하며 후서(後序)를 덧붙인 데서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삼봉집'은 조선 국가의 중심 이념이라 할 수 있는 성리학과 법전 체제의 바탕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실제 조선 당대에 지성사적으로 높이 평가받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정도전이 태종과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제거되었던 사정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후대의 학인들은 정치적 측면에서 정도전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에 따라 '삼봉집'도 주목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까지 '삼봉집'에서 제시한 조선 국가 체제의 이념적 원리가 부정된 것은 아니었다. 1791(정조 15)년에 왕명으로 '삼봉집'이 다시 간행된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정조는 1785(정조 9)년에 '대전통편(大典通編)'을 편찬하여 법전 체제의 재정비를 도모한 바 있다. '삼봉집'의 재간행도 그러한 관심의 한 반영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점에서 '삼봉집'은 조선 일대에 걸쳐 국가 체제의 토대가 된 저작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동서양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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