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우리말에는 김치말고 '지'라는 말도 있다. 오이지, 짠지, 섞박지, 장아찌, 젓국지, 게국지 등의 여러 가지 김치 이름에 '지'가 붙고, 지금은 일본에서 유래된 다쿠앙도 단무지라고 부른다. '지'는 뒤에 붙기만 하는 말이 아니라 전라도와 경상도, 충청도의 일부 지역에서는 그대로 김치라는 뜻으로 쓰인다.

'지'는 '디히'에서 온 말로, 15세기 문헌에서 '겨울김치'를 '겨디히'라고 불렀다. 그 디히가 지히, 지이를 거쳐 지로 바뀐 것이다. 장아찌라는 말도 장에 절인 김치라는 뜻의 '쟝앳디히'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보다는 김치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이 쓰이고 있다. '김치'라는 말은 '담근 채소'라는 뜻의 한자어 '沈菜'에서 유래되었고, 김장도 '침장(沈藏)'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한자어 '沈菜'를 우리말로 어떻게 표기했는가 하는 것을 추적해 보면 김치의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한글이 창제되기 이전의 '沈菜'를 조상들이 어떻게 읽었는지는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침채의 한글 표기를 최초로 확인할 수 있는 문헌은 1527년에 편찬된 최세진의 '훈몽자회(訓蒙字會)'인데, 이 책에서 '저(菹)'를 '딤채 조'로 해석했다.


딤채(팀채) > 짐채(침채) > 김채(짐치) > 김치


그런데 1700년을 전후해서 '디'가 '지'로, '티'가 '치'로 바뀌는 구개음화가 진행되어 '딤채'는 '짐채'로 변했다.

그런데 '딤채'가 사용되던 시기에도 '沈菜'를 '팀채'로 읽은 사례가 적잖이 보인다. '훈몽자회'보다 약 50년 뒤에 간행된 '내훈(內訓)'이 그렇다. 물론 '팀채'도 1700년을 전후해서 구개음화의 진행으로 '침채'로 바뀌었다.

결국 '沈菜'는 초기에 '딤채' 또는 '팀채'로 불렸고, 18세기쯤에는 구개음화 현상으로 인해 '짐채' 또는 '침채'로 불렸다.

'딤채'와 '팀채'가 공존했던 16세기에 '沈'자의 공식적인 음은 '팀'이었다. 그런데 왜 일부 책에서 '딤채'라고 했을까? '딤채, 짐채'로 부른 '훈몽자회' '신증유합(新增類合)' '구황촬요벽온방(救荒撮要壁瘟方)' '두창경험방언해(痘瘡經驗方諺解' 등의 책은 어린이 또는 초보 학습자를 위해 간행한 책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일반서민들이 쉽게 보게 하기 위해 한글로 언해한 책들이다. 반면에 '팀채, 침채'로 부른 '내훈' '소학(小學)' '왜어유해(倭語類解)' '한청문감(漢淸文鑑)' 등의 책은 양반들의 수신서(修身書)이자 유교경전이며, 외국어 학습자들을 위한 전문서적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치를 '딤채'라 불렀는데 양반 식자들이 김치는 '沈菜'라는 한자말에서 온 것이니까 '팀채'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팀채'라는 말은 책에만 있던 말이지 일반인들이 일생생활에서 실제로 썼던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짜장면'이라고 하는데 방송에서만 유독 '짜장면'이 중국어 '자쟝미엔(炸醬麵)'에서 유래된 것이니까 '자장면'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출처: 전통사회와 생활문화/이해준 정승모 정연식 전경목 송찬섭 공저)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우리민족의 자랑스러운 발효음식, 김치! 우리나라 식탁이라면 빠질 수 없는 김치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어디에 어떻게 남아 있을까? 역사속 김치의 기록들을 살펴보자. 

 

 우리나라의 김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삼국지다. 삼국지 위서 30권에 동이전(東夷傳) 중 고구려 편에 나타나는데-삼국지 위서 동이전(東夷傳)은 비록 중국측의 기록이지만 고대사 기록이 대부분 소실된 우리민족의 고대사를 연구할 때 귀중한 사료 중 하나로써 동이(東夷) 즉,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왜 등에 관한 기록이 남아있다.-내용을 보면 "고구려인은 술 빚기,장 담그기, 젓갈 등의 발효음식을 매우 잘한다" 고 기록돼 있다. 이는 이미 이 시기에 저장발효식품이 보편화 되고 생활화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러나 우리민족이 언제부터 김치를 만들어 먹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나라 문헌에서는 김치를 주로 '저(菹)'로 표기했으며 그밖에도 여러가지 한자어가 사용되었다. 침채(沈菜), 염채(鹽菜), 함채(鹹菜), 엄채(醃菜), 저채( 菹菜), 침저(沈菹), 침지(沈漬) 등이 그것이다.

 김치를 뜻하는 낱말이 문헌에 처음 보이는 것은 10세기 고려시대이다. 즉 983년(성종 2년)에 환구(圜丘)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에 차려 놓는 음식 가운데 미나리김치[근저(芹菹)], 죽순김치[순저(筍菹)], 순무김치[청저(菁菹)], 부추김치[구저(韭菹)] 등이 보이는데, 이것들이 우리나라 문헌에 처음으로 분명히 보이는 김치이다.

 하지만 10세기에 처음으로 김치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10세기 전에, 오래전부터 김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지금까지 남은 기록에 그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에서는 김치를 '저(菹)'로 기록하여, 오이를 깎아 절여서 만든 '저(菹)'가 '시경'에  처음으로 보인다. 그때의 저는 공자가 콧잔등을 찡그리며 먹었다는 것으로 보아 오이를 시큼하게 절인 것으로서, 아마도 지금의 오이피클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에는 8세기의 동대사(東大寺) 정창원(正倉院)의 문서에 제조방법이 비교적 상세하게 소개된 '츠케(漬)'가 등장한다. 그것은 김치를 말하는 것으로서, 지금도 일본에서는 김치를 '츠케모노(漬物)'라고 부른다.

 중국의 경우 오래전부터 김치가 있었고, 6세기에 편찬된 '제민요술( 濟民要述)'이라는 책에 김치 제조법이 소개되어 있으며, 일본에도 8세기에 김치가 있었으므로, 중국과 일본의 문화적 가교 역할을 했던 한반도에도 일본에 김치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김치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정창원 문서에 수수보리지(須須保理漬)라는 순무김치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수수보리는 일본에 누룩으로 술 만드는 법을 알려 준 백제사람 이름이므로 그 순무김치도 백제에서 제조법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치가 수천 년 전부터 중국에 있었고 8세기 일본의 기록에 김치가 등장하므로 우리나라에도 김치가 그 전부터 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김치는 꼭 다른 나라에 전파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생적으로 생겨날 수도 있다.

 김치의 종류가 수백 가지가 넘는다는 말도 있듯이, 어떤 채소든 절여서 먹을 수만 있다면 김치가 될 수 있다. 음식물이 풍부하지 않던 시절에 생선은 바닷가에서나 구할 수 있고, 고기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먹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은 곡식과 채소였다. 그런데 김치의 재료는 꼭 밭에서 나는 채소뿐이 아니었다. 고려 말의 시에도 여뀌풀에 마름을 넣어 소금에 절였다는 말이 있듯이 야생초도 절여 먹으면 김치가 된다. 흉년이 들면 나라에서 진휼식품으로 나누어 주었던 것이 쌀, 콩, 장, 미역국이었는데, 장을 나누어준 것은 야생초를 그냥 먹으면 탈이 나기 때문에 장으로 조리를 해서 먹으라는 것이었다. 결국 김치는 가장 널리 퍼져 있던 음식이었다.

[전통사회와 생활문화/이해준,정승모,정연식,전경목,송찬섭]





[쿠쿠정수기, 공기청정 제습기, 비데 렌탈, 쿠쿠1번지]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