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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으로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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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의 주요내용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인해 약화된 한국불교의 부흥을 위해 한국불교 개혁과 민중불교를 주창한 한용운의 저서, 1913년 백담사에서 집필, 발행


[사진 만해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한국민족문화 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1) 교육을 통한 유신 주체의 확립:

만해는 승가 개혁을 통하여 앞으로 불교의 유신을 이끌어 나아갈 주체상을 확립한다. 만해는 주로 교과 과정에 대한 개혁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당시의 승가 교육에 일반 상식적 지식이 전무함으로 해서 승려들이 지나치게 무지하다고 본다. 만해가 주장하는 교육 개혁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된 승가에게 사회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우선 승려들이 역사적 상황에 적극 대처할 능력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 일반상식적 학문인 보통학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2) 생산을 통한 승려의 인권 회복:

만해는 한말 승려가 성직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천시받는 것은 승려가 생산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적극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보살행도보다 적극적인 방면으로 실천할 것을 주장한다.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생산 활동을 하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여 복지 사업과 같은 행동을 통해 회향할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3) 승려의 결혼:

만해는 승려의 결혼 문제도 언급하였다. 당시 승려들은 계율을 엄격히 지키지도 않으며 또 주지를 비롯한 부유한 승려들을 중심으로 축첩이 알게 모르게 횡행하고 있었다. 만해의 의도는 이것을 비공식적으로 숨어서 할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합법화하여 떳떳하게 행동한다면 오히려 포교에도 좋고, 독신이 싫어서 절을 떠나는 승려들의 환속 현상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인구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4) 사원행정의 개혁과 교단의 조직화:

만해에게 있어 불교의 궁극적 목표점은 민중 불교이다. 그러기 위해서 억불 시대에 산으로 쫓겨갔던 사찰을 다시 도심으로 환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찰이 도심으로 내려와야 하는 이유가 민중과 함께 호흡하기 위해서이지만 산이라는 곳이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진보의 사상이 없어지는 것, 모험적인 사상이 없는 것, 구세의 사상이 없는 것, 경쟁하는 사상이 없는 것이다.


5) 선거를 통한 주지의 선출과 경쟁적 동기 부여:

만해는 사찰 행정의 총수인 주지에 큰 책임과 임무를 부여하고 있다. 한 사찰의 운명이 주지의 손에 달렸으므로 대중적 풍모와 지도력을 갖춘 스님을 주지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그 결정권을 대중에게 부여하여 대중의 선택에 맡기고자 하는 것이 만해의 주장이다. 그래서 한 사찰의 성쇠를 좌우하는 주지 선출을 대중의 손에 의해 뽑는 선거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6) 신앙의 통일과 미신의 배격:

만해는 절에서 신봉하는 각종 소회의 철폐를 주장했다. 불교 신앙에 있어서 미신적 요소와 신앙에 혼선을 초래하는 상황을 일소하고 불교를 보다 부처님의 근본적 가르침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 각종 미신적 소회를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7) 염불당의 폐지와 참 염불의 실천:

만해는 입으로 하는 염불로 극락에 왕생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염불당(念佛堂)의 폐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의 마련을 위해 두 가지 측면에서 정토론(淨土論)을 반박한다. 즉, 하나는 화엄사상에 의한 교리적 비판이고, 둘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연기법(緣起法)에 의한 비판이 그것이다.


8) 불교 의식의 통일과 간소화:

만해는 복잡한 의식을 통폐합하여 간소화함으로써 불교를 제사주의적 관행(祭祀主義的 慣行)으로 부터 구하려고 했다. 신앙적 측면에서 본다면 소회의 폐지와 염불당의 폐지, 그리고 의식의 통폐합은 결국 불교의 이지성을 회복하자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해는 부처를 재공양의 대상으로 모시는 것을 반대한다. 만해는 불교를 제사주의적 관행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근본적 교리에 입각한 이성적 불교로 환원하고자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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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萬海,卍海) 한용운(한유천),시인]

 

 

오직 민족을 위해 살다간 민족시인, 만해 한용운의 유명한 술회 내용..

 

나는 왜 중이 되었나?

 나는 왜 중이 되었나? 내가 태어난 이 나라와 사회가 나를 중이 되지 아니치 못하게 하였던가? 또는 인간 세계의 생사병고 같은 모든 괴로움이 나를 시켜 승방에 몰아넣고서 영생과 탐욕을 속삭이게 하였던가? 대체 나는 왜 중이 되었나? 중이 되어 가지고 무엇을 하였나? 무엇을 얻었나? 그래서 인생과 사회와 시대에 대하여 어떠한 도움을 하여 왔나? 이제 중이 된 지 20년에 출가의 동기와 그동안의 파란과 현재의 심경을 생각하여 볼 때에 스스로 일맥의 감회가 가슴을 덮는 것을 깨닫게 한다.

 나의 고향은 충남 홍주였다. 지금은 세대가 변하여 고을 이름 조차 홍성으로 변하였으나, 그때 나는 어린 소년의 몸으로 선친에게서 나의 일생운명을 결정할 만한 중요한 교훈을 받았으니, 그는 국가 사회를 위하여 일신을 바치는 옛날 의인들의 행적이었다. 그래서 마냥 선친은 스스로 그러한 종류의 서책을 보시다가 무슨 감회가 계신지 조석으로 나를 불러다가 세우고 옛사람의 전기를 가르쳐 주었다. 어린 마음에도 사상에 밫나는 그분들의 기개와 사상을 숭배하는 마음이 생기어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되어 보나 하는 것을 늘 생각하여 왔다. 그러자 그해가 갑진년 전해로 무슨 조약이 체결되어 뜻있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경성을 향하야 모연든다는 말이 들리었다. 그래서 좌우간 이 모양으로 산속에 파묻힐 때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하루는 담뱃대 하나만 들고 그야말로 폐포파립(弊袍破笠)으로 표연히 집을 나와 서울이 있다는 서북 방면을 향하여 도보하기 시작하였으니, 부모에게 알린 바도 아니요, 노자도 일푼 지닌 것이 없는 몸이며, 한양을 가고나 말는지 심히 당황한 걸음이었으나 그때는 어쩐지 태연하였다. 그래서 좌우간 길 떠난 몸이매 해지기 전까지 자꾸 남들이 가르쳐 주는 서울길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날은 이미 기울고 오장의 주림이 대단하게 되자 어떤 술막집에 들어 팔베개 베고 그 하룻밤 자느라니 그제야 무모한 걸음에 대한 여러 가지 의구가 일어났었다. 적수공권으로 어떻게 나랏일을 돕고 또한 한학의 소양 이외에 아무 교육이 없는 내가 어떻게 소지를 이루나, 그날 밤 야심토록 전전반측하며 사고 수십 회에 이를 때에 문득 나의 아홉 살 때의 일이 유연히 떠오른다. 그것은 아홉 살 때 [서상기]의 통기 1장을 보다가 이 인생이 덧없어 회의하던 일이라, 영영일야(營營日夜) 하다가 죽으면 인생에 무엇이 남나? 명예냐, 부귀냐? 그것이 모두 아쉬운 것으로 생명이 끊어짐과 동시에 모두 다가 일체 공이 되지 않느냐. 무색하고 무형한 것이 아니냐. 무엇 때움에 내가 글을 읽고 무엇 때문에 의식을 입자고 이 애를 태우는가 하는 생각으로 5,6일 밥을 아니 먹고 고로(苦勞) 하던 일이 있었다.

인생은 고적한 사상을 가지기 쉬운 것이라, 이에 나는 나의 전정을 위하여 실력을 양성하겠다는 것과 또 인생 그것에 대한 무엇을 좀 해결하여 보겠다는 불같은 마음으로 한양 가던 길을 구부리어 사찰을 찾아 보은 속리사로 갔다가, 다시 더 깊은 심산유곡의 대찰을 찾아간다고 강원도 오대산의 백담사까지 가서 그곳 동냥중, 즉 탁발승이 되어 불도를 닦기 시작하였다.

[三千里, 1930.5.1]

 

비밀(한용운)

비밀입니까, 비밀이라니요. 나에게 무슨 비밀이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대하여 비밀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마는,

비밀은 야속히도 지켜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비밀은 눈물을 거쳐서 당신의 시각(視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한숨을 거쳐서 당신의 청각(聽覺)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의 비밀은 떨리는 가슴을 거쳐서 당신의 촉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밖의 비밀은 한 조각 붉은 마음이 되어서 당신의 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소리없는 메아리와 같아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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