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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 그 자체에서 이득은 없지만 그것은 세 명의 건실한 자식을 갖고 있다. 그들의 이름은 힘, 인내력, 동정심이다.

대체로 고난은 장래의 행복을 뜻하고, 그것을 준비해 주는 것이므로 나는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고난을 당할 때는 희망을 갖게 된다. 반대로 너무나 행복할 때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강의 범람이 흙을 파서 밭을 일구듯이, 병은 모든 삶의 마음을 파서 갈아 준다. 병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그것을 견디는 사람은 보다 깊게, 보다 강하게 , 보다 크게 거듭난다. 설령 병에 걸렸다 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자. 그것을 밑거름으로 더 나은 미래를 경작하자[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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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먼저 자신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 한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어떻게 남을 통솔할 것인가. 노여움 그 밖에 격렬한 폭발적인 감정 따위는 모두 자신을 통솔하지 못한 증거이다. 사람은 남에게 저항하는 것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저항해야 한다. 나 자신을 극복하는 것이 남에게도 이기는 것이다.

[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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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티, 좋은 글귀 보기]



♥기쁨은 스스로 기쁨을 얻기 위해 힘들게 노력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생활만 올바르게 한다면 오로지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다. 가장 단순하고 돈도 들지 않고 필요에 따라서 얻어지는 기쁨이 최상의 기쁨이다.


♥인간은 다만 두 가지 일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다. 그 두 가지 것은 바로 걱정거리와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끝없는 행복을 약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을 이겨 나갈 수 있는 평화를 약속하고 있다. 즉 요한복음 제14장 제27절에는 '평안을 그대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그대에게 주노라. 내가 그대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그대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였고, 또 마태복음 제11장 제28, 29절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고 말하였다.


♥인간이란 세상살이에서 괴로움이나 불행을 피할 수 없다. 반드시 그것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럴 경우 먼저 생각을 신중히 해야만 된다. 그다음에는 일시적인 가정을 초월해서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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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자기의 몸무게를 의식하지 못하고 지탱하고 있지만 다른 물체를 움직이려고 하면 그 무게를 느끼는 것처럼, 자기의 결점이나 부덕은 의식하지 못하고 남의 것은 눈에 띄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대신 모든 사람들은 타인 속에 하나의 거울을 갖고 있어 그 거울 속에서 자기의 온갖 부덕과 결함, 무례 및 고약한 성질 등을 분명히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거의 누구나 거울을 향해 짖어대는 개와 같은 짓을 곧잘한다. 개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것이 다른 개인 줄 알고 짖어대는 것이다.[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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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어서 구하면 늙어서 풍족하다." 괴테는 이 속담을 그의 회상의 첫머리에 인용하고 있다. 괴테는 모든 일을 자기 자신의 방식에 따라서 형성해 나가는 성격의 훌륭한 표본이기도 하다. 물론 누구든지 다 괴테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누구나 다 자기 자신일 수는 있다. 그가 아로새기는 표지가 훌륭하지 못한 것은 그것대로 좋다. 그러나 누구나 표지는 가는 곳마다 남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운명을 가리켜 자기 갈 길을 찾아내는 내부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다.[알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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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이 평안하다고 해서 상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건강에는 분명히 좋은 것이다. 행복한 사람은 자기를 망각하는 대로 방임해 둔다. 병에 대하여 행복은 가장 좋은 무기이다. 그런데 슬픔에 잠겨 있는 사람은 흔히 행복이 결과이며 원인이 아니라고 한다. 기쁨은 능숙한 의사보다도 더욱 솜씨 있게 육체를 그 내부로부터 처치한다. 그것은 모든 병을 악화시키는 병에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알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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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은 차라리 늦을수록 좋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빠른 성공은 사람의 나쁜 성질을 잡아 일으키고, 실패는 좋은 성질을 키워 내기 때문이다.


■ 충고는 눈(雪)과 같다. 조용히 내릴수록 마음에 오래 남고 마음에 스며드는 것도 깊어진다.


■ 침상에 누을 때, 내일 아침 일어나는 것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은 행복하다.


[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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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이상 너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와만 함께 호흡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만물을 둘러싸고 있는 이성과도 함께 사고하라. 마치 대기의 힘이 사방으로 쏟아져 그것을 호흡할 수 있는 자에게 제공되는 것 못지않게, 이성의 힘도 사방으로 쏟아져 그것을 끌어당길 수 있는 자에게 제공되기 때문이다.

 햇살은 '확장되다'(ekteinesthai)란 말에서 유래하여 '확장자들'(aktines)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햇빛이 좁은 틈을 뚫고 어두워진 방에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되면 너는 햇살이 어떤 것인지 볼 수 있을 것이다. 햇빛은 직선으로 확장되며 공기가 통과할 수 없는 더 단단한 물체를 만나면 굴절한다. 그곳에서의 빛은 정지할 뿐 미끄러지거나 아래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신의 쏟아짐과 사방으로 퍼져 나감도 그런 것이어야 하고, 쏟아져 없어짐이 아니라 확장이어야 하며, 장애물들과 무리하게 격렬히 충돌하거나 아래로 떨어져서는 안되고, 버티고 서서는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비춰야 한다. 그러나 정신을 통과 시키지 않는 것은 스스로 햇살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에피쿠로스,스토아학파의 행복론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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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행복한 토끼/온라인 커뮤니티]

 

 플라톤의 행복론은 그리스 고유의 전통적 세계관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으로 온갖 다양한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몫을 누리면서 다른 것들과 조화와 공존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의 모습이고 사람이 또 본래 살아야 할 모습이며 나라가 추구해야 할 가장 올바른 상태이다. 이러한 모습을 플라톤은 정의로운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정의롭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를 갖는다. 정의롭고 올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은 받으시 행복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그리스 공동체란 발칸반도 곳곳에 산재한 각각의 도시국가들이 제 나름의 특징과 역할을 가지고 다른 이웃 도시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고, 행복한 나라라 함은 한 도시국가에 속하는 여러 다른 계층, 즉 통치자 계층, 전사 계층, 생산자 계층들이 서로 상대방의 역할을 간섭하거나 침해하지 핞고, 그들 각자의 본성과 소질에 맞게 자기 역할을 최고의 상태로 수행하면서 서로 조화와 공존을 이루면서 그 나라 전체의 평화와 평온을 이룩하며 사는 것이다.

 요컨데 사람이 사회적으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여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하고 자기가 누려야 할 것을 잘 누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것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서로 조화와 질서를 이루고 공존해 가는 것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인간 각각의 내면의 행복한 상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즉 개인적으로 행복하다는 것은 인간 내면의 세 가지 측면, 즉 냉철한 이성의 측면과 자존심과 명예를 중시하는 기개의 측면, 그리고 감각적인 욕심과 충동에 따라 살려는 욕망의 측면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이런 세 가지 서로 다른 부분이 인간 영혼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들 가운데 어떤 한 부분이 나머지 부분을 억누르거나 지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플라톤이 이성주의자라고 해서 개인 내면의 이성이 나머지 기개나 충동을 억눌러서 금욕적으로 사는 것을 플라통이 말하는 행복한 삶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신나게 노는 자리에 가면 욕망의 측면이 조화를 이끌어 가면서 잘 놀아야 하고 자존심 내세우거나 용기를 발휘해야 할 곳에서는 기개의 측면이 그렇게 해야 한다. 이처럼 개인적으로행복하다는 것은 인간 내면의 영혼의 세 부분이 각각 훼손됨이 없이 각각의 부분이 마치 오케스트라가 조화를 이루면서 때로는 빠른곡, 때로는 평정한 곡을 연주하듯 내적인 조화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제멋대로 본능을 충족시키거나 금욕주의자처럼 일체의 본능을 따르지 않거나 하는 것은 모두 행복한 삶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행복론은 인간의 다층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고 있는 매우 균형잡힌 행복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진 플라톤/네이버 지식백과]

 

 플라톤이 말하는 행복론의 요체는 '수분자족(守分自足) 하며 살아야 한다.' 즉, '분수를 지키고 스스로 넉넉함을 느낀다'라는 동양적인 금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자기 분수와 직분, 자기 할 일을 잘 알고 그것에 충실하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다. 물론 수분자족하며 살자는 말은 자기는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분수를 알고 그 정도로나마 만족해야지 하는 패배주의적인 자기 위안 내지 자기 합리화로 들리기도 한다. 하기는 강자나 지배자는 수분자족이란 말을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말은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기면서 하는 말 같은 느낌도 든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플라톤이 말하는 행복론, 이른바 수분자족론은 약자에게만 강요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별들이 각각 제자리에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코스모스를 이루듯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계층에게 요구되고 적용되는 것이다. 통치 계층은 나라를 잘 다스리려는 욕망과 흥미를 가지고 있으니 적성과 소질대로 나라를 잘 다스리면 당연히 행복할 것이고, 군인 계층은 소질대로 용기와 명예를 가지고 나라를 지키는 것이니 통치자의 역할을 넘보거나 생산자의 물건들에 눈을 돌리지 않고 나라를 잘 수호하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생산자 계층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신발을 만들거나,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잘하면 당연히 그 때문에 행복할 것이다. 이렇게 한 사회는 서로의 적성과 소질을 실현해 가면서 서로 의지하고 조화를 이루며 사는 것이다. 적성과 소질은 각각 다른 뿐 어느 것이 보다 좋은 것인가는 문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 사람 사는 사회를 채우고 귀하고 소중한 가치이고, 각자는 누구의 간섭이나 침해 없이 자신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기가 맡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각자가 자신의 적성에 따른 고유한 역할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해 가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기본적으로 행복한 나라, 행복한 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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