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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너무 오랜 시간 착 달라붙어 있으면

힘들어지는 게 당연합니다.

사랑을 할 때는

같은 지붕을 떠받치는,

하지만 간격이 있는 두 기둥처럼 하세요.


잡으려면 끝끝내 떠나고,

진정으로 놓아주려 하면

이상하게도 본인 의지로 떠나지 않아요.

사람들이 이 이치를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요.


사랑은 상대를 위해 무언가를 많이 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쩌면, 같이 있어주는 것이

더 깊은 사랑의 표현일 때도 있습니다.

-혜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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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이란 원래 정부에 대한 경제적 분석을 의미하는 것으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고전적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 데이비드 리카도 등의 정치경제학을 비판하며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켰는데, 여기서 도출된 이론과 방법론을 적용하여 대상을 분석하는 것을 흔히 정치경제학적 접근이라 부른다.

문화의 연구에서 이 정치경제학적 접근법을 채택하면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핵심 중 하나인 토대와 상부구조의 논리에 기초하여 경제가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결정하며 이데올로기는 단지 허위의식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즉 경제적 과정들과 문화 생산의 구조가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측면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문화 상품에 대한 푸랑크푸르트 학파의 논리를 이어받아 문화를 상품으로 보고 문화의 생산과 유통,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제 요인들을 분석하는 것에서 정치경제학적 접근방법의 대표적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또 대충매체의 정치경제학에서는 대중매체를 소유한 자가 문화를 생산하는 방식을 통제하고, 문화의 생산을 통제하는 자는 자본주의 지배계급에 속해 있으며, 대중매체는 현실 묘사를 통해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입장에 따르자면 대중매체의 현실 묘사 자체에만 관심을 두는 것은 그것을 결정하는 구조를 무시하는 결과가 된다. 이런 연구의 경향에서 정치경제학적 방법은 레이먼드 윌리엄스나 스튜어트 홀 등이 주도했던 문화 연구의 전형적 방법과 극명한 대조를 보이게 되는데, 문화 연구가 이데올로기 분석 등 내용적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면 정치경제학적 방법은 이 내용보다 내용을 만들어낸 정치경제적 구조에 더 큰 관심을 기울이는 연구 경향으로 요약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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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이란 집합적인 팬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제학적으로 보자면 팬은 고정 수요자로서 특이한 선호체계를 갖는 소비자를 가리킨다. 즉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 대량생산되어 대량분배된 오락이 레퍼토리 가운데 즉정 연기자나 서사체, 혹은 장르를 선택, 자신의 문화 속에 수용하는 존재가 바로 팬으로서,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상이 포함되면 다른 사람들의 선호와 관계없이 그 문화생산물을 끊임없이 소비하려는 욕망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소시키고자 하는 문화산업 생산자들에게 이상적인 소비자로서의 위상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팬덤은 종속적인 사람들의 문화 취향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대개 팬이ㅡ 주류가 여성들이며, 그중에서도 특히 10대 소녀들이 중심을 이루게 되는 것은 이들이 성과 연력의 양 측면에서 가장 배제된 집단을 이루고 있고, 그 결과 정체성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강력한 하위문화에 대한 욕구를 그만큼 많이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쨋든 이들의 이런 강력한 욕구 덕분에 이들은 문화산업의 영역 밖에서 일종의 그림자 문화경제를 형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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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평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리처즈(I. A. Ricahards)의 꼼꼼한 텍스트 중심의 작품 해석이다. 신비평 운동의 핵심 구성원은 영국으로 귀화한 시인 엘리엇(T. S. Eliot)과 미국 남부 출신의 세 명의 저술가 존 크로 랜섬(John Crowe Ransom), 앨런 테이트(Allen Tate John Orley), 로버트 펜 워런(Robert Penn Warren)이다.

영국 비평가인 리비스(Frank Raymond Leavis)나 윌리엄 엠프슨(William Empson),의 저작과도 중요한 연결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운동은 주로 북미의 현상이었다.

신비평은 묵학적 형식의 문제를 강조함으로써 언어의 가능성에 대한 시인의 관심을 표현했다. 이는 비평의 관심을 작가의 삶으로부터 이전시켜 문학 언어에 세밀하게 초점을 맞추는 미학 이론을 낳았고, 그 결과 주석학과 근원탐색, 문학적 전기로부터 텍스트 분석으로의 결정적인 전환이 이루어졌다.

텍스트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하는 신비평의 주장은 예술 작품을 영원하고 자기충족적인 인공물로 이해한 결과였다. 텍스트의 물질성에 대한 관심에서 텍스트 생산과 관련된 문제를 건드리기도 했으나, 신비평은 주로 문학을 사회적 맥락에서 절연시켜 대부분 종이 위에 씌어진 단어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 주요 대변자들의 출판물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클린스 브룩스(Cleanth Brooks)와 로버트 펜 워런의 교과서 시리즈, 그중에서도 '시의 이해(Understanding Poetry)'(1938)와 브룩스의 '잘 빚어진 항아리(The Well Wrought Urm)'(1949)가 가장 대표적인 저작들이다. 이 외에 먼로 비어즐리(Monroe Beardsley)와 블랙머(R. P. Blackmur)도 신비평의 대표주자로 꼽을 수 있다.

[출처: 앤드루 애드거, 피터 세즈윅 편(박명진 외 역), '문화 이론 사전', 한나래, 2003. pp. 258~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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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는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으로서, 프로이트(S. Freud)가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개념을 발명하여 더욱 유명하게 된 인물이다.

오이디푸스의 삶을 그린 작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다.

그의 아버지 라이오스는 아내 이오카스테(호메로스에 따르면 에피카스테)에게서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에게 죽으리라는 예언이 있어서, 아이가 생기자 발목을 쇠꼬챙이로 꿰어 산에 갖다 버리게 한다.

하지만 그 일을 맡은 목자가 이웃 코린토스의 목자에게 그 아이를 넘겨주었고, 아이는 코린토스 왕의 양자가 되어 자란다. 어느날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주워온 아이라는 말을 듣고 자신의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자 델포이에 신탁을 구하러 간다.

신은 묻는 것은 가르쳐주지 않고 "너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다." 라고 엉뚱한 신탁을 내린다.

청년 오이디푸스는 겁이 나서 자기가 고향으로 생각하는 코린토스로 돌아가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한다. 좁은 길목에서 마차를 몰고 오는 사람을 만났고, 길을 비키는 것 때문에 싸움이 난다. 신탁을 듣고 가슴속에 울분이 있어서 그랬는지 상대방 일행을 모두 죽여버린다. 그때 오이디푸스는 알지 못했지만 그가 죽인 것은 친아버지 라이오스 일행이었다.


귀스타브 모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1864


그리고 간 곳이 테바이다. 거기에는 스핑크스가 나타나서 수수께끼를 내고, 문제를 풀지 못한 사람을 죽이고 있었다. 그 수수께끼는 "두 발이기도 하고, 세 살이기도 하고, 네 발이기도 한데, 이름은 한 가지이며, 발이 가장 많을 때 발힘이 가장 약한 것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요즘 우리가 이 수수께끼의 답을 다 알고 있는 것은 오이디푸스 덕이다. 그는 '인간'이라고 답을 맞혔고, 스핑크스는 좌절하여 날개 달린 존재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모르지만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보통 스핑크스는 여성의 얼굴에 사자 몸을 하고 날개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그냥 여자 얼굴에 몸뚱이는 새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그 수수께끼를 풀고 백성을 질곡에서 해방시킨 공로로 오이디푸스는 왕의 미망인과 결혼하고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다. 하지만 아이가 넷 태어난 다음에 모든 사실이 드러나 이오카스테는 스스로 목매어 죽고, 오이디푸스는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채 방랑의 길을 나서게 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따르면 오이디푸스는 안티고네의 시중을 받으며 이리저리 떠돌다가 나중에 아테나이 근교의 콜로노스에 이르러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테바이 인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딸 안티고네와 함께 유랑 길에 오르는 장님 오이디푸스, 네이버지식백과



참고로, 오이디푸스와 관련해서 중요한 것 중에 다른 작가들에 따르면 얘기가 조금씩 다른데,

'일리아스'에 따르면 오이디푸스는 장님이 된 것이 아니라 그 후로도 왕 노릇을 하다가 아마도 전쟁터에서 죽은 듯하며, 성대한 장례식 경기까지 받았던 것으로 되어 있다. '오뒷세이아'에 따르면 그의 아내 에피카스테는 결혼 후 곧 사실을 알고(아마도 아이를 낳지 않고) 자살했으며, 오이디푸스는 어머니가 보낸 고통을 당했다고 한다. 에우리피데스의 '포이니케 여인들'에 따르면 이오카스테(에피카스테)도 자살하지 않고 자기 두 아들이 서로 죽일 때까지 살아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출처: 신화의 세계, 방종성 강대진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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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인 기표와 기의는 기호를 구성하는 두 가지 요소를 가리킨다. 기표는 기호가 나타나는 물질적 형태로써, 말해지거나 쓰여진 단어나 대상 등이 이에 해당된다.

반면 기의는 기호가 지시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단어가 있다면 사과라는 글자가 기표이며 사과라는 단어를 볼 때 우리가 머릿속에 떠올리는 대상이 바로 기의가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상식적 생각과 달리 기의가 실재 세계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대상이나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사과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어느 특정한 사과가 아니라 사과 일반을 가리킨다.

소쉬르가 기의를 설명하면서 기표가 지시하는 대상이라고 설명하지 않고 기표가 환기시키는 대상의 심적 영상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또 하나의 기표가 반드시 하나의 기의하고만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의 기표가 다수의 기의를 가질 수 있고 반대로 하나의 기의가 다수의 기표를 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과라는 기표는 과일로서의 사과 외에 맥락에 따라 어느 지역(일테면 사과의 주산지)이나 특정한 기념일(사과데이) 등을 의미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장미꽃이나 향수, 포옹 등이 모두 사랑이라는 기의를 표현하는 기표가 될 수 있다.

의성어와 같이 지시 대상에 대한 모방적 성격이 두드러져 상대적으로 자의성이 약한 기호의 사례도 없지 않지만, 이들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는 대체로 자의적이며 그 언어 공동체의 문화적 관습에 따라 결정된다.

[출처: 앤드루 애드거, 피터 세즈윅 편(박명진 외 역), '문화 이론 사전', 한나래, 2003. pp. 9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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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가인 잰슨은 20세기 회화의 주요 사조를 세 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자신 및 세계에 대한 미술가의 정서적 태도에 중점을 둔 표현 미술과

둘째, 미술 작품의 형태적 구성을 강조하는 추상 미술,

셋째, 상상력의 세계, 특히 상상력의 자발적인 비합리적 특질을 탐구하는 환상 미술로 구분하면서 동시에 이 사조들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또 재현적인 것부터 비재현적인 것에 이르기까지의 광범위한 조형 영역을 포함한다고 말하고 있다.

[잰슨, '미술의 역사' 중 '20세기의 회화에 관한 논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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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파이스토스, 출처: 위키백과, Jastrow (2006)


불과 대장간의 신인 헤파이스토스(Hephaistos)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기도 하고, 헤라 혼자 낳은 것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이 신은 다리를 저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에게 특별한 재주가 있다는 표시일 수도 있고, 흔히 현실사회에서 이동이 불편한 장애자가 대장장이 일을 맡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헤파이스토스의 아내는 많은 이야기책과 그림들에서 아프로디테로 되어 있고, 그녀가 아레스와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일리아스'는 그의 아내가 카리스(우아함)라고 소개한다. 아마도 그의 작업 결과가 항상 우아했기 때문에 이런 짝지음이 나왔던 것 같다.

한편 그의 아내가 아프로디테라는 다른 이야기는 희랍인의 균형감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장 못생긴 신의 아내가 가장 아름답다는 것은, 갖아 몸이 불편한 신이 가장 재주가 좋은 것과 비슷하다.

헤파이스토스는 두 번이나 하늘에서 땅으로 내동댕이쳐진 것으로 되어 있다.

한 번은 제우스와 헤라가 다투는데 헤파이스토스가 끼어들었다가 제우스가 내던져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태어났을 때 헤라가 그랬다는 것이다.

후자는 앞에 아테네의 탄생 부분에서 설명했던 것인데, 사실은 다리가 불구였기 때문에 던져진 것인지 아니면 그때 다리를 다쳐셔 절게 된 것인지는 불분명하게 되어 있다.(보통은 앞의 것이 정설처럼 되어 있지만, 신이 다친 것을 치유하지 못하고 계속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조금 이상한 부분이다.)

어떤 학자는 헤파이스토스의 추락 이야기를 운석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운석이 금속으로 되어있는 것과 대장장이의 기술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헤파이스토스는 불의 신이기 때문에 나중에는 화산과 연결되었다. 그래서 시칠리아의 아이트나 산 밑에 그의 대장간이 있으며, 그는 거기서 제우스에게 벼락을 만들어주었다는 퀴클롭스들을 거느리고 작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일리아스'에 나오는 판본, 그러니까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가 아들의 무장을 새로 만들러 올림포스에 있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방문한다는 얘기와는 맞지 않는다.

다만, 신화에서는 이러한 모순점이 있을 수 있다.

소아시아지역에서는 대장장이의 기술이 신적 지혜로 여겨져 정치적 권력과도 연결되었지만, 희랍에서 헤파이스토스는 좀 주변적인 지위만을 가지고 있다.


헤파이스토스신전 ,출처: 위키백과, Longbow4u


하지만 그는 아테나이에서만큼은 상당한 지위를 갖고 있는데, 이는 한편으로 그가 아테네 여신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아들 에릭토니오스가 아테나이의 왕이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아테나이 시민들은 이 신의 후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인데, 지금도 아테나이의 옛날 아고라 위쪽에는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이 아테네의 파르테논을 바라보며 거의 완전한 형태로 서있다.

그림으로 나타나는 헤파이스토스는 거의 언제나 불집게를 가지고 있으며, 때때로 다리가 불편하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발목이 뒤로 돌아간 형태로 그려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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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은 많은 의미, 또는 뉘앙스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옷차림의 스타일(멋있는 스타일과 그렇지 않은 스타일)이나 음악 연주의 스타일(멋진 연주와 평범한 연주) 등의 용법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어런 예들은 스타일이 특정한 가치가 부여된 채 사용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경우 스타일은 어떤 선호된 미적 가치를 가리킨다. 그리고 좀 더 중립적인 의미에서 스타일은 여러 요소들(옷, 음악 연주, 글쓰기 등의 구성요소들)의 의미 있는 조합을 가리킨다.

중립적 의미의 스타일에 있어서, 요소들의 선택과 그 요소들이 조합되는 규칙은 기호적 약호(semiotic codes)로 분석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의 스타일은 가치의 표현으로, 그리고 사회적 집단들의 정체성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스타일을 선호된 미적 가치라는 의미로 사용할 때 스타일은 취향(taste)이라는 개념과 중첩되는 영역을 지니게 된다.

스타일과 마찬가지로 취향 역시 선호된 미적 가치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많은 학자들은 취향이 지속적이고 안정된 선호체계를 의미하는 것인 반면 스타일은 일시적이고 유동적인 선호체계라고 구분한다.

그리고 이런 특성 때문에 스타일은 젊은 세대의 문화를 특징짓는 것으로 설명한다.

[출처: 앤드류 애드거, 피터 세즈윅 편(박명진 외 역), '문화 이론 사전' 한나래, 2003, p.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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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위키백과, Marie-Lan Nguyen (2009년 9월)


전쟁의 신인 아레스는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 태어난, 몇 안되는 자식 가운데 하나이다.

아레스에게는 별 이야기가 없는데, 이는 그가 희랍(希臘) 신들 가운데 가장 덜 인격화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에서 발휘되는 폭력적인 힘의 상징으로서 한편으로는 꼭 필요한 존재로 여겨지지만, 다른 한편 모든 이의 미움을 받ㄷ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레스가 희랍의 북쪽지역인 트라키아 출신인 것으로 되어 있는 것도 그의 거친 성격과 더불어 그의 소외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그림이나 조각에서 대부분 완전무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아레스는 로마의 신 마르스(Mars)와 같은 것으로 여겨지며, 그래서 마르스의 이름이 붙은 행성인 화성(火星, Mars)의 위성에도 아레스의 아들들 이름이 붙어 있다.

아레스가 전장에 나타날 때는 보통 두려움(데이모스)과 공포(포보스)를 대동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이 둘이 화성의 위성 이름으로 쓰이는 것이다.

아레스가 관련된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프로디테와의 연애사건이다.


출처: 위키백과, 산드로 보티첼리 - National Gallery, UK


헤파이스토스가 일터로 간 줄 알고 항상 그랬듯 밀회를 나누러 갔다가, 기술 좋은 대장장이신이 설치해놓은 보이지 않는 그물에 걸려 여러 신 앞에서 창피를 당한 이야기이다.

이 연애사건 역시 희랍인의 균형감각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는데, 모든 것을 죽이는 전쟁과 모든 것을 생겨나게 하는 사랑을 짝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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