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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 잘 가는 사람은 수레바퀴 자국과 발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트집 잡을 흠이 없다. 셈을 잘하는 사람은 산가지를 쓰지 않는다. 문을 잘 닫는 사람은 빗장과 자물쇠 없이도 열 수 없게 한다. 잘 묶는 사람은 새끼줄로 묶지 않더라도 풀 수가 없게 한다. 그런 방법으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들을 잘 구제하기 때문에 돌보지 않고 버려지는 사람이 없게 된다. 언제나 물건을 잘 구원하기 때문에 돌보지 않고 버려지는 물건이 없게 된다. 이것을 거듭 밝히는 것, 곧 습명(襲明)이라 부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훌륭한 사람은 훌륭하지 않은 사람의 스승이며,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란 훌륭한 사람의 자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스승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그러한 자원을 아낄 줄 모른다면, 비록 지혜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크게 미혹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노자,제27장 교용(巧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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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선(善)이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의 선함은 만물(萬物)을 이롭게 해주면서도 다투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위치에 처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의 도(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처신은 땅과 같아야 하고, 훌륭한 마음은 심연(深淵)과 같아야 하며, 훌륭한 남과의 사귐은 인(仁)하여야 하고, 훌륭한 말은 신의가 있어야 하며, 훌륭한 정치는 잘 다스려져야 하고, 훌륭한 일은 능력이 있어야 하며, 훌륭한 행동은 때에 알마자야 한다. 그러면 다투는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아무 탈도 없게 되는 것이다.[노자-역성(易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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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신실하지 않다. 훌륭한 사람은 말을 잘하지 않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훌륭하지 않다. 정말로 아는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정말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성인은 재물을 축적하지 않는다. 모두 그것을 남을 위해 쓰지만 자기는 더욱 많이 갖게 된다. 모두 그것을 남에게 주지만 자기는 더욱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해 주지만 해치지는 않고, 성인의 도는 일을 하지만 다투지는 않는다.[노자/현질(顯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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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함석헌(咸錫憲) 선생(1901.3.13~1989.2.4)/위키백과사전]


함석헌 선생과 노장 사상


독립운동가,종교인,언론인,출판인이자 기독교운동가, 시민사회운동가였던 함석헌 선생은 오늘날의 노장사상의 토대를 만든 분이다. 그 분의 노자, 장자 사상을 대하는 태도를 그 분의 말씀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노자'에는 미명(微明)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보통 밝다면 환한 것이어서 어느 누구도 모를 사람이 없지만, 그러나 이 천하만물을 살리는 참빛은 빛이 아닌 빛이다. 그러므로 이(夷)요, 희(希)요, 미(微)라고 한다. 숨은 빛, 가려진 빛이다. 예수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왜 숨겨져 있고 가려져 있나? 물건이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일은 힘의 표현이다. 힘은 강하지만 강하기 때문에 약하다. (중략) 모든 있음은 있음이 아닌 데서 나온다. 하나님은 이름이 없다. 모세가 당신이 누구십니까? 했을 때 온 대답이 '네가 왜 내 이름을 묻느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했다. 천지 만물은 자기 주장을 아니 하는 이, 자기를 무한히 내 주는 이, 스스로 희생하는 이가 있어야만 있을 수 있다. (중략) 세상에 악이 있고 불의가 있는 것처럼, 그 악과 불의가 있으면서도 세계가 서 가는 것은 진리가 있고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증거 하는 일은 없다.  노자는 이래서 도를 유(柔)한 것 약한 것으로 체험했다."


 "물질주의, 지식주의, 권력주의, 적극주의의 서구문명이 차차 사양길에 접어 들었고, 사람들은 그 산업 방법, 그 학문, 그 종교를 근본에서 고채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되는 때를 당했다."라는 현실 인식에서 노자의 세 가지 보배, 즉 사랑(慈), 수수함(儉), 감히 천하에 앞장 못 섬(不敢爲天下先)의 카다란 가치를 이야기 하며, "하늘이 건져 주려 할 때는 사랑으로 둘러 준다(天將救之, 以慈衛之)."


 "사실 이날까지의 옛 글에 대한 모든 해석은 권위주의, 절대주의, 귀족주의, 고정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중략) 마지막으로 옛글을 고쳐 씹는 데 하나 더 생각할 것은 지금 있는 종교로부터 올 반대이다. (중략) 그럴 때 제일 문제되는 것은 권위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점에서는 석가나 예수의 태도를 배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결코 형식에 거리끼지 않았다. 또 저쪽을 승인시키자는 것이 목적 아니었다. 그들에게 권위는 영(靈)에 있었지 글이나 제도에 있지 않았다. (중략) 그렇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새 해석을 하고 깨쳤다. 그러고는 옛날의 전통을 한 점 한 획도 무시하지 않노라고 했다. 눈으로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의 자리에서 읽었다."


 "나는 노자, 장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숲 속에 깃들인 뱁새' 같이 '시냇가에서 물 마시는 두더지' 같이 날마다 그들을 만나고 대화하면서 살아 가는 사람이다. (중략) 나는 일제 시대에 '구약성경'의 '이사야', '예레미야'를 많이 읽었다. 그 압박 밑에서 낙심이 나려 하다가도 그들의 굳센 믿음과 위대한 사상에 접하면 모든 시름을 다 잊고 다시 하늘을 향해 일어설 수가 있었다. (중략) 마찬가지로 이 몇십 년의 더러운 정치 속에서도 내가 살아올 수 있는 것은 날마다 노자, 장자와 대화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양철학산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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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위와 행복

 사람이 하는 일이 많으면 도리어 혼란을 초래하고, 공(功)을 서두르면 도리어 파멸에 빠지는 일이 흔한 법이다. 그래서 노자는 오히려 무위(無爲)가 뜻을 크게 이루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무위(無爲)의 술(術)이란 구체적으로는 유약과 겸손을 가르치는 것이고, 무지와 무욕을 궈장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그리하여 노자는 무위의 상징으로서 물(水)과 어린이 그리고 여성 등 이른바 비공격적인 약자들을 예찬한다. 유가가 말하는 인의예지나 번잡한 법제금령은 말세의 것으로 배척하고, 태고의 소박한 세상을 이상으로 삼는다. 노자 제19장에는 "성스러움을 끊어 버리고 지혜를 내버리면 백성들의 이익은 백 배로 늘어날 것이다. 인을 끊어 버리고 의를 내버리면 백성들은 효도와 자애로움으로 돌아갈 것이다. 기교를 끊어 버리고 이익을 내버리면 도둑들이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것들에 대해서는 글로써 표현해도 부족하기 때문에 설명을 덧붙여야만 한다. 본시의 바탕을 드러내고 소박함을 지니며, 사사로움을 줄이고 욕망을 적게 가져야만 한다."라고 적혀 있다. 성지(聖智)를 끊고, 인의(仁義)를 버려 교리(巧利)를 낮추는 것에 의해서 민리(民利)도 백 배가 되고, 백성도 효자(孝子)에 복귀하는 것이며, 그리하여 도적 없는 안녕의 세상이 실현되는 것이다. 요컨대 소박함과 적은 욕심이 사람의 본래 자연의 모습이며, 이것으로 돌아감으로써 사람은 모두 그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도가 사상은 인간의 무지와 탐욕을 통찰력 있게 되돌아보며 발상의 전환을 통해 현실의 역경을 뚫고 삶의 의미를 새롭게 모색하는 사상이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피폐한 정치현실 속에서 도덕규범 체계가 이미 사회적 약자가 되어 버린 자신들에게 압제로서 작용한다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러한 생각을 인간 근원에 관한 존재론적인 문제로까지 밀고 들어가 과연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배적 지위를 누릴 만한 자격과 지위가 있는가를 근본적으로 되돌아 본다. 이런 까닭에 노자와 장자의 많은 부분은 인간이 얼마나 하잘것없는 존재인가를 설명하는 데 할애되어 있다. 그리하여 노장은 인생론에 있어서도 인의예지 등 사회 규범과 질서를 중시하기 보다는 그것이 갖는 기득권적 성격을 비판함으로써 집단이나 권력 중심적 태도를 거부하고 개체 중심적 탈권력적인 태도를 지향한다. 도가 사상이 오늘날 개인의 자유로운 욕망의 관점에 서서 이성과 권력의 해체를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계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사진 노자/네이버지식백과]


 결국 노장 사상에 의하면 인간의 행복은 세간의 이른바 "남부럽지 않은 권세와 부를 누리면서 떵떵거리며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세속의 이익을 버리는 데서 생긴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서경'이 제시하는 오복과 육극을 권하거나 피하게 하는 상고시대의 정치철학과 크게 다른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더욱이 '노자'에는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사상이 있다. 제80장은 다음과 같다.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어야 한다. 유용한 도구들이 수백 종류 있지만 결코 쓰려 하지 않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소흘히 생각지 않게 하고 멀리 떠돌지 않게 한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타고 다닐 필요가 없고, 투구와 갑옷이 있지만 쓸 일이 없으며, 백성들도 문자를 버리고 다시 옛날처럼 새끼줄을 묶어 일을 기록하도록 한다. 그들로 하여금 거친 음식이 달고 거친 옷이 아름다우며 초라한 습속이 즐겁고 사는 집이 편안하다고 생각하도록 한다. 이웃나라가 서로 보이고 닭이 울고 개짖는 소리가 서로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도록 서로 왕래하지 않는다." 이것이 이상국가의 모습이다. 혼자됨을 즐기고, 사람과 싸우지 않고, 부작위와 소심, 이런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에 몸을 맡기고 소박한 삶으로 돌아가, 거기서 유유자적함을 얻는 것이 노자의 삶의 방법이며, 유가의 삶의 방법과 다른 행복관의 발상이다.[행복에 이르는 지혜,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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