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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제바스티안 바흐(1685~1750)/출처: 위키백과]



헨델이 유럽 각 나라의 음악양식을 절충, 혼합한 것과 달리 바흐는 유럽 각 나라의 음악양식과 음악의 유산을 자신의 음악언어, 독일식 음악언어로 재해석, 바로크 음악어법을 족창적으로 완성시킨 음악가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헨델이 국제적인 명성과 음악가로서의 성공에 집착한 것과 달리 바흐는 기독교 신앙과 가정, 소시민적인 가치를 중시한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알려진다.

바흐의 초기작품은 북스테후데의 건반음악과 알비노니, 비발디의 합주음과 유사하다. 이후 바이마르(Weimar), 쾨텐(Cohtn), 라이프치히(Ldipzig)의 세 시기를 거치면서 자신만의 음악어법을 개발하게 된다. 바흐는 성악과 기악에서 모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키퍼 칸타타(1732)>, <농민 칸타타(1742)> 같은 세속 칸타타에서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를 적절하게 사용함으로 일상적인 에피소드, 생활 ㅅ고에서의 경험, 느낌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극음악에 대한 감각을 보여준다. <커피 칸타타>는 해설지, 아버지(Schlendrian), 딸(Lieschen)이 등장하는데 커피가 몸에 해롭다고 못 마시게 하는 아버지와 커피 없이 살 수 없다고 재치 있게 항변하는 딸의 대화가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작품으로 내용을 알고 들으면 독일어 가사를 못 알아들어도 얼마든지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곡이다.

<마태수난곡(1792)>은 라이프치히의 성토마스 성당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후 3년에 걸쳐 완성한 대작이다. 신약의 <마태복음> 중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 수난을 다룬 작품으로 78곡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체 연주시간만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이 작품에서 바흐는 합창단을 베네치아 악파처럼 두 개로 분리시켜 모노와 스테레오 음향의 대조를 이용한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였다. 그리고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다는 것과 같은 가사를 플루투가 스타카토로 연주하여 눈물의 느낌을 묘사하는 '가사 그리기' 기법을 사용하였다. 또한 극의 전개에 맞는 레치타티보와 아리아의 등장, 2개의 합창대가 만들어내는 다성음악과 화성적 구조 사이의 긴장감과 조화가 수난곡의 내용을 잘 살리고 있으며 바로크와 르네상스 말기 다성음악양식을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합리론자로 알려진 바흐는 특정감정표상법을 잘 이해하고 예술적으로 잘 적용한 작곡가일 것이다. 또한 평균율에 대한 바흐의 주장은 합리론자로서의 바흐의 면모를 다시 한 번 더 확인시켜준다. 바흐는 당시 조율체계였던 순정률의 불편함과 비합리성을 배격하고 대신 '한 옥타브를 12개의 균등한 음(반음)으로 분할'하는 평균율의 합리성과 편리함을 옹호했다. 평균율은 인위적으로 음의 간격을 나눈 것이기 대문에 아름답지 않다는 당시 사람들의 사고를 관습에 의존하는 비이성적인 편견으로 본 바흐는 평균율 조율법의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증명하기 위해 12개의 장조, 12개의 단조로 이루어진 <평균율> 곡집을 작곡하였다.

단일주제를 다양한 방식으로 모방, 변주하는 푸가 형식의 악곡들, 그리고 대위법과 화성구조를 통합한 <무반주 첼로 조곡>, <프랑스 조곡>, <영국 조곡>,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같은 기악곡들은 바흐의 합리론적 사고와 음악적 내응이 조화를 이루는 작품들이다. 피아노 초보자들이 주로 연주하는 <인벤션> 같은 건반악기용 소품은 바흐가 자녀들의 음악교육을 위해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스튜디오 녹음만을 고집했던 기인 피아니스트 굴드(Glen Gould, 1932~1982)의 독특한 해석 덕분에 유명해진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단순히 음형변주의 차원을 넘어서 리듬변주를 시도한 곡으로 변주의 교과서로 불리는 작품이다.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음향을 추구했던 말년의 작품들은 바로크 말기에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그의 음악에 나타나는 독창적이며 개성 있는 주제, 상반된 목표를 갖는 화성과 대위적 어법의 조화는 바로크 어법에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바흐의 작품을 분류할 때 사용하는 작품번호 BWV는 '바흐 작품 목록' 이라는 뜻의 독일어 'Bach Werke Verzeichnis'의 약자로 독일 음악학자 슈미더(Wolfgang Schmieder, 1901~1990)가 1950년에 정리한 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다.

[음악의 이해와 감상/김종수 권도희 김성혜 이지선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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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출처: 위키백과]



바흐가 생존 당시 자신이 거주하던 지역과 교회에서 잘 알려진 존경받는 음악가였던 것과는 달리 헨델은 바로크 말기 유럽의 '스타' 작곡가였다. 독일에서 태어난 헨델은 오페라 작곡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 로마와 나폴리로 유학을 떠난다. 이탈리아 유학시절 오페라 작곡가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이탈리아 오페라를 독일에 보급하는 데 실패한 헨델은 금전적인 대우가 좋은 영국에 정착, 생을 마감한다. 1726년 영국에 귀화한 헨델은 사망 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힐 만큼 영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영국' 작곡가이다.

헨델은 42편에 이르는 오페라를 작곡할 만큼 오페라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강했지만 거의 모든 오페라가 성공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오늘날 공연되는 헨델의 오페라 작품으로는 영화 <파리넬리>의 삽입곡으로 잘 알려진 '나를 울게 하소서(Lascia ch'io pianga)'가 들어있는 <리날도(Rinaldo, 1711/31>, <줄리어스 시저(Julius Ceasar, 1724)>, <알치나(Alcina, 1735)> 등이 있다.

오페라로 성공하고 싶은 바람과 달리 화려하고 웅장하면서 화성과 대위적 기법이 조화를 이루는 오라토리오를 통해 국제적 명성을 얻게 된 헨델이 오라토리오 작곡에 몰두하게 된 계기는 오페라 제작실패에 대한 자구책이었다고 한다. 오라토리오는 오페라와 같은 극음악이지만 쿠대가 필요 없고 독창보다 합창 위주이기 대문에 가수에게 지불할 비용이 적게 든다는 점에서 헨델은 극음악의 다른 종류인 오라토리오에 집중한다. 헨델의 오라토리오는 원래 이 장르의 성격과 달리 성경의 내용에 충실하기보다 작가의 상상에 의존한 인물의 인간적인 면, 성격묘사, 극적인 흐름에 집중하고 있어서 오페라 같은 느낌이 매우 강한 편이다. 29편의 오라토리오를 작곡한 헨델은 <메시아> 외에 <삼손(Samson, 1743)>, <솔로몬(Solomon, 1748)>을 작곡한다. 그가 오라토리오에 사용한 합창어법은 이후 하이든(Joseph Haydn, 1732~1809)과 베토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진다.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외에 관현악곡에서도 헨델의 재능이 돋보였는데 대표작으로 3개의 관현악 모음곡 <수앙음악(1717)>과 <왕궁의 불꽃놀이음악(1749)>이 있다. 특히 <수상음악>이란 이름은 조지 1세의 요구에 따라 템스 강의 유람선 위에서 연주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야외공연에 적합한 악기를 선택하기 위해 고심했던 헨델은 플루트, 오보에, 바순, 호른, 트럼펫 같은 관악기와 현악기의 음색을 잘 활용하여 유람선 위에서도 소리가 잘 전달되록 하였다.

루터교도였던 헨델이 좋은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준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여 루터교회에서 바흐, 슈츠와 함께 7월 28일 성인으로 바로크의 세 음악가를 기리고 있다. 헨델에 대한 당대인들의 존경심의 정도는 "내가 유일하게 만나고 싶은 사람, 이 세상에서 나(바흐 자신을 가리키는 말)를 제외하고 내가 유일하게 되고 싶은 사람" 이라는 바흐의 말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독일음악의 합리성, 프랑스 관현악합주의 웅장함, 이탈리아 벨칸토 창법, 화성과 다성음악이 조화를 이루는 영국식 합창전통의 장점을 절충시킨 헨델은 극적 긴장감과 성악적인 섬세한 표현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바로크음악의 이상을 실현해낸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음악의 이해와 감상/김종수 권도희 검성혜 이지선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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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의 어원

[Baroque:찌그러진 진주 라고 하는 뜻으로 포르투갈어에서 유래]



평소 중세나 르네상스시대 음악을 접할 일이 거의 없는 것과 달리 바로크 시기의 음악은 음악회나 라디오 프로그래, 드라마나 영화의 배경음악 등으로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래서 클래식음악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크음악들, 곧 <사계>, <메시아>, <아다지오>, <캐논>, <G선상의 아리아>,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들으면, 작곡가가 누군지는 몰라도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음악이란 생각을 할 것이다. 그리고 대충 바흐, 헨델, 비발디 같은 작곡가의 작품일 거라 짐작할 것이다.

 바로크음악의 친숙한 느낌과 달리 그레고리오 성가와 같은 중세시대의 음악, 그리고 르네상스시대 유럽음악계의 대스타인 조스캥 데 프레의 미사곡은 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서양음악과 다른 생소한 느낌을 주는 것일까? 바로크음악이 가깝게 느껴지고 그 이전의 유럽음악이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시대적으로 바로크가 현재와 더 가깝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바로크음악에 사용되었던 악기, 연주법, 음악용어는 물론 음악을 만드는 음조직인 음계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장, 단조체계와 거의 같이 때문일 것이다.

 바로크음악에 익숙한 우리에게 르네상스와 중세음악이 낯설고 생소한 것처럼 바로크가 시작되던 1600년대 무렵 살았던 유럽인들 역시 과거 음악과 전혀 다른 이 새로운 음악이 많이 낯설게 느꼈졋던  것 같다. 서양음악사에서 1300년경 아르스 노바에 이어 두 번재 등장한 새로운 음악이 당시에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은 1600년경부터 시작된 음악에서의 새로운 사조를 바로크(Baroqe)로 불렀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다. 이 '바로크'라는 말은 포르투갈어의 '찌그러진 진주(barock)'에서 비롯된 말이다. 찌그러졌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과거와 다른 바로크음악의 새로움을 1600년경 무렵의 사람들은 기괴하고 그로테스크(grotesque)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중세와 르네상스시대를 풍미했던 종교적인 내용의 다성음악과 전혀 다른 형태의 새로운 음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초기 바로크음악을 '누오베 무지케'라고 부른다. 이 '누오베 무지케' 라는 말은 1602년 '카치니'가 발표한 새로운 형식의 가곡집에서 유래한 것이다.

 바로크의 시작을 1600년경으로 보는 이유는 고대 그리스연극을 부활시키려는 시도에서 만들어진 노래극(오페라)이 이 무렵 등장하면서 다성음악과 전혀 다른 방식의 음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크 끝을 1750년경으로 보는 것은 이해헤 바로크 이념을 음악적으로 가장 잘 구현한 작곡가로 알려진 바흐가 세상을 떠나면서 실질적으로, 상직적으로 바로크라는 한 시대가 막을 내린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음악의 이해와 감상/ 김종수 권도희 김성혜 이지선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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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악음악의 발달 그리고 '클래식'

'특정감정표상법'이란 이론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에 작곡된 서양음악은 기악곡이 많다.

 이는 이전 시대 까지 내려온 전통적인 시각 즉, 인간을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하는 위험하고 자극적이며 비이성적인 음악이라는 고대 그리스의 사고와 이후 종교적인 믿음, 철학적인 전통에 따라 기악음악을 천대하고 금지하던 천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후, 바로크시대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기악음악을 다른시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부터 시작된 것이다.

 바로크음악을 '누오베 무지케'로 부르는 또 다른 이유는 이 시기에 기악음악이 성악과 다른 독자적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렇다면 바로크시대에 들어서면서 기악음악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바뀌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오랫동안 기악을 천대했던 바로 그 이유, 즉 추상성과 감정을 자극하는 음악이라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바로크시대 기악음악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기악음악의 발전은 합리론을 주장함으로 17세기 유럽사상을 주도했던 데카르트와 관련이 있다. 서양철학의 전통을 계승한 데카르트는 이성을 인간의 가장 중요한 능력으로 규정하고 그동안 이성과 다른, 반대되는 영역으로 취급되던 감정을 이성의 하위영역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말년에 저술한 '마음의 정념에 관한 논고(Traite des passions de l'ame, 1649)'에서 데카르트는 "감정은, 이성과 달리, 자발적으로 발생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자극을 주어야지만 유발되는데 음악, 특히 가사가 없는 추상적인 선율은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감정을 작동시키는 기능을 한다."고 서술한다.

 데카르트의 가설을 받아들인 당시의 음악론가들은, 성악음악은 감성의 자극보다 가사의 의미를 전달하는 기능을 먼저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기악음악보다 감성을 자극하는 능력이 열등하다고 주장하게 된다. 또한 6가지 '기본감정(기쁨,슬픔,미움,사랑,욕망,감탄)'을 자극하는 '특정음형'을 들려주면 잠자고 있는 감정이 발생한다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하나의 '특정감정'과 연관된 '특정음형들'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이어지면서 '특정감정표상법(Doctrine of Affection)'이란 이론이 힘을 얻게 된다. '특정음형으로 특정 감정을 그린다.'는 뜻의 특정감정표상법에 따르면, '기쁨'의 감정을 유발시켜줄 수 있는 '기쁨'의 음형을 들려주면 마음속에서 '기쁨'이 만들어져서 듣는 사람이 '기쁨'을 느낀다는 것이다.



 특정음형 한 개를 반복해서 들려줌으로 특정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바로크적 사고는 바흐의 '푸가(Fuga)'나 '인벤션(Invention)'이 왜 한 가지 유형의 음형과 리듬, 다시 말해 단일주제(mono theme)로 이루어졌는지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동일한 음형과 리듬패턴을 곡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하는 바흐의 '푸가'나 '인벤션'이 바로크음악의 이상을 음으로 구체화한 거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감상시 조금 다른 느낌이 들 것이다.

 철학적인 주장을 다양한 방식으로 소화, 적용시킴으로써 결국 기악음악이 성악음악보다 열등하지 않은 음악이며 성악이 할 수 없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가치관이 확산되면서, 바로크시대 기악음악은 성악과 별개로 독자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바로크 기악음악의 발달을 '해방'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가사에 대한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기악음악이 독자적인 역할과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서이다.[음악의 이해와 감상/김종수 권도희 김성혜 이지선 유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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