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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22호 천마총 자루솥/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에서 발견된 보물 622호 '천마총 자루솥'은 5~6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높이 20.5cm, 몸통 지름 18cm, 손잡이 길이 13cm 크기이다.

이러한 유물은 대부분 왕릉과 같은 지배층의 큰 무덤에서 출토되는데, 양머리 모양의 주구가 달린 청동으로 만든 솥으로 측면에 손잡이가 달려있고, 짐승다리 형태의 다리 3개가 있다. 이러한 자루솥(鐎斗 초두)은 술이나 음식 약 등을 끓이거나 데우는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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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에서 발견된 보물 623호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는 4~5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너비 2.1cm, 지름 7.2cm 크기이다.

이러한 금제 및 은제 장신구는 신라 지배층 무덤에서 예외없이 발견되는데, 그만큼 팔찌와 귀걸이, 과대 등은 신라 지배층의 장례풍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는 2개의 금판을 이용해 만들어졌는데, 바깥쪽 금판에는 금실과 금알갱이로 문양을 만들고, 문양에는 보석류를 박아넣어 장식하고, 안쪽에 또다른 금판을 덧대어 안쪽에서 밖으로 둥굴게 말아 마무리를 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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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국립중앙박물관]



국보 207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가로 53cm, 세로 73cm 크기로 1973년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에서 발견되었다.

말의 안장 장니(말다래)에 그려진 그림으로 중앙에 꼬리를 세우고 구름 위를 달리는 모습의 흰색 천마가 그려져 있고, 테두리에는 흰색, 붉은색, 검은색 덩굴무늬가 표현되어 있다. 천마도가 그려진 바탕은 자작나무 껍질을 두 겹 겹치고 가장자리 쪽에 비단을 대어 만들었는데, 천마도는 신라의 그림으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예가 매우드물어 그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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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411호, 임신서기석/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411호 '임신서기석'은 최대 높이 32cm, 최대 너비 12.3cm의 크기로 1934년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터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석의 제작연대는 비석의 비문에 새겨진 임신년(壬申年)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화랑도가 번창하던 552년 또는 612년 경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첫머리에 임신년(壬申年)이라는 간지(干支,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한 연대표)가 있고, 별도의 구획선 없이 5행 74자를 새겼는데, 화랑도의 기본정신에 따른 충도의 실천으로 신라에 충성을 서약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으므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라고 명명했다.


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해 기록하며,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집지하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이서약을 어기면 하늘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크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모름지기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즉 시, 상서, 예기, 전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써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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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24.8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8.4cm, 입지름 10.5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9.6cm, 입지름 10.4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13cm, 입지름 10.1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되었다.

유리병과 잔은 주변의 빛을 빨아들일 듯한 신비로운 연녹색으로 그리스의 오이노코에(Oinochoe)라고 하는 유리병과 형태가 거의 유사한데, 시리아 등지의 지중해 동부 주변에서 주로 만들어졌으며 비단길 및 바닷길을 통해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병의 주둥이 모양은 나팔잎 모양으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주둥이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봉수병 鳳首甁'이라고 불리게 됐다.

병의 주둥이와 목에 파란색 띠를 붙인 것은 당시에 유행했던 장식기법이며, 손잡이에 감긴 금실은 부러진 손잡이를 수리하기 위한 용도로 추정된다.

이와같은 유리 그릇들은 금관이나 금 허리띠와 같이 정치, 사회적 신분이 높은 왕릉급 대형 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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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92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2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는 길이 120cm, 너비 3.6cm 크기의 4~5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되었다.

신라 왕족의 무덤에서는 금으로 화려하게 제작된 허리띠가 거의 예외없이 출토가 되는데, 이러한 허리띠의 모양과 재질을 통해 무덤속 주인공의 사회적 신분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같이 신라의 화려한 장례문화는 6세기 이후의 사회변화와 함께 점차 사라지게 된다.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는 넝쿨무늬를 투조(판금, 목재, 석재 등과 같은 기본 재료의 뒷면까지 완전히 도려내 일정한 형상을 나타내는 조각 세공 기법의 하나)하여 만든 방형판에 심엽형 수하식이 매달려 있으며, 심엽형 수하식에는 둥근 달개가 매달려 있다. 드리개는 방형과 타원형 금판을 연결하고 끝에는 약통, 물고기, 숫돌, 곱은옥 등 다양한 상징물들을 매달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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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91호, 기마인물형토기(주인상)/국립중앙박물관]



국보 91호 기마인물형토기(주인상)은 기마인물형토기(하인상)과 함께 경상북도 경주시 노동동 금령총에서 출토된 높이 26.8cm 크기이 토기이다.

말과 사람의 모습이 매우 비슷하며, 말을 탄 인물은 넓은 밑받침에 서 있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마치 조각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속이 비어 있고, 잔모양의 수구(受口)가 있는 동물형 토기이다.


[관련글: 기마인물형토기(하인상) 보기]


말의 궁둥이 쪽에는 안으로 구멍이 뚫린 수구와 그 가장자리에 뾰족하게 나온 장식이 있고, 가슴에 긴 귀때(주전자의 부리와 같이 생긴)가 있어 수구로 물을 부으면 귀때로 물이 나오도록 고안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토기에 보이는 인물은 그 차림새와 크기에 따라 각각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이며, 주인상은 호화로운 관모를 쏙, 갑옷을 입고 있다.

인물의 생김새는 다소 이국적인 느낌이 드는데, 날카로운 콧날과 깊게 패인 눈매가 우리의 전형적인 모습 보다는 이국인의 모습과 가깝다.

또한 주인상 토기에 나타나는 투박하지만 사실적인 의복 묘사를 통해 당시의 옷차림과 말 장비에 대한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도 평가받고 있다.

말에는 말띠드리개, 말띠꾸미개, 말다래, 안장, 혁구 등의 말갖춤을 완전하게 표현해 놓고 있는데, 말의 이마에 마치 코뿔소의 뿔처럼 영수(纓穗, 옷이나 기물 따위에 장식으로 다는 술)가 붙어 있는 것 등으로 보아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토기라고 보기 보다는 제사와 같은 의식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토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글: 기마인물형토기(하인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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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456호 '금목걸이'/국립중앙박물관]


보물 456호 '금목걸이'는 경북 경주시 노서동 215번지 무덤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유물이다.

경주시 노동동과 노서동에 모여있는 큰 무덤들은 대부분 5세기~6세기 전반에 걸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대형 무덤은 보통 왕이나 왕족 등 신라 최상류층의 무덤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노서동 215번지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 또한 신라 최상류층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6세기 전반이 되면 목걸이뿐만 아니라 금관이나 귀걸이 모두 매우 장식적으로 변하는데, 이 '금목걸이'는 굵은 고리귀걸이의 샛장식에 사용하는 작은 고리를 여러 개 연결하여 또 하나의 둥근 구슬모양으로 엮어 만든 것이 특징이다. 작은 고리에는 새김눈(‘目’자처럼 가로 또는 세로로 조각한 눈금선 문양) 장식이 있고, 하트(heart) 모양의 달개를 여러개 매달아 보다 풍성하고 화려하게 장식을 했다. 목걸이의 하단 가운데에는 한 개의 곡옥(曲玉)을 넣어 장식효과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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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국립중앙박물관]



보물 627호 '황남대총 북분 은잔'은 경북 경주시 황남대총 북분에서 출토된 은잔으로, 신라시대 유물이다. 은잔의 겉면은 연꽃무늬로 위아래 단을 나누고 3각, 5각, 6각형의 무늬를 겼으며, 가운데에 거북이 등껍질 모양 안에 각각 노루, 새, 호랑이, 말, 뱀, 가릉빈가, 사슴, 사람 등의 무늬가 양각되어 있다.

바닥은 보상화잎으로 가장자리를 두르고 그 씨방 안에는 고루려벽화에서 보이는 삼족오(三足烏)가 새겨져 있는데, 바닥 안쪽에서 바깥으로 두드려 돌출시켜 놓은 형태로 보인다.

겉면에 나타나 있는 이러한 무늬들은 모두 두드린 후 날카로운 칼 등으로 세부 무늬를 정교하게 다듬는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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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금관총 금허리띠/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금관총에 출토된 국보 88호 금허리띠는 신라시대 유물로, 얇은 금판으로 제작된 40매의 허리띠꾸미개와 허리띠고리, 허리띠끝장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금허리띠 그리고, 금허리띠에 화려하게 달려 있는 총 17줄의 허리띠드리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허리띠꾸미개는 혁대에 고정되는 사각형 판에 심엽형(풀이나 나무 우듬지의 가운데에서 돋아 오르는 잎 모양) 장식이 달려 있으며, 금판 위에 인동무늬를 간략화시킨 세잎무늬를 표현했고, 둥근 달개를 금실로 꼬아서 매다는식으로 보다 화려하게 보이도록 한 것이 특징입니다.

허리띠드리개는 타원형 판과 방형 판을 교대로 연결했는데, 가장 긴 것은 타원형 장식이 10개로 구성되어 있고, 끝에는 3개의 방울이 매달려 있습니다.

나머지 장식 가운데 13줄은 3개의 타원형 장식과 5~6개의 방형장식을 연결했으며, 맨 아래에 곱은옥, 용무늬 맞새김장식, 물고기장식 등이 매달려 있습니다.

나머지 3줄은 사슬과 속이 빈 금구슬을 사이사이에 연결해 드리웠으며 끝부분에는 향주머니가 달려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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