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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은 이양선 선생이 기증한 보물 1151호 '청동 옻칠 발걸이'는 말을 탈 때 사용하던 것으로 청동으로 만들었고, 흑칠을 한 것이 특징이다. 전체 모양은 덧버선과 흡사한데, 덮개에는 선을 촘촘하게 배치해 장식했고, 위쪽과 아래쪽에 구름 형태의 문양을 새겼다. 정확한 제작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일본 쇼소잉[일본 나라(奈良)의 도오다이지(東大寺)에 있는 목조 건출물,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발걸이와 비교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높이 14.7cm, 길이 12.1cm의 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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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325-4호 칠곡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국립중앙박물관]



보물 325-4호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사리장엄구(은제도금수형장식구)'는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송림사 오층전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 유물로 높이 22.3cm 크기이다.

1959년 송림사 오층전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는데 금빛이 살아있는 화려한 장식구이지만 탑과 관련된 뚜렷한 목적과 용도는 현재까지 알 수 없다.

송림사 오층전탑을 수리하는 과정에 2층 탑신에서 출토된 석함 안쪽 벽에 놓여져 있었으며, 나무줄기와 가지가 대칭적으로 뻗어있고, 긑은 보주형(寶珠形, 둥근 공 모양 구슬) 으로 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약 2배겨여개의 작은 원형 영락을 달아 장식했으며, 밑부분의 밋밋한 부분은 다른 물체에 꽂기 위한 용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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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40호 금동 당간 용두/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성내 2동 236번지에서 우연히 발견된 보물 1410호 '금동 당간 용두'는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길이 80cm 크기의 유물이다.

'금동 당간 용두'는 말 그대로 당간 머리를 장식하는 용머리 장식이다. 전체 형태는 입안에 여의주를 물고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는 위풍 당당한 형태로 입안 가득 물고 있는 여의주 뒤로 줄을 거는 도르래가 감추어져 있다. 도르래에 걸린 줄이 용의 턱 아래 뚫린 구멍으로 내려져 깃발을 올리고 내릴 수 있게 고안된 구조로 통일신라 당간 용두로 매우 희귀한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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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26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에서 발견된 보물 626호 '황남대총 북분 금제 고배'는 5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높이 9.1cm, 입지름 10.4cm, 바닥 6.5cm 크기이다.

전체 형태는 일반적으로 껴묻는 굽다리접시(접시에 높은 굽을 붙인 형태로 고대 식기의 하나)와 모양이 같은데, 굽다리 중간 부분을 돌출시키고 2줄의 돌대를 만들었으며, 끝 부분에 금판을 덧대어 두툼하게 처리하는 등 흙으로 만든 고배와 그 형태를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고 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금제 유물은 신라 지배층의 화려한 장례문화를 잘 보여주는 유물로써, 비슷한 시기 고구려나 백제의 장례 부장품과 비교했을 때 발견되는 유물이 무척 화려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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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622호 천마총 자루솥/국립중앙박물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천마총에서 발견된 보물 622호 '천마총 자루솥'은 5~6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높이 20.5cm, 몸통 지름 18cm, 손잡이 길이 13cm 크기이다.

이러한 유물은 대부분 왕릉과 같은 지배층의 큰 무덤에서 출토되는데, 양머리 모양의 주구가 달린 청동으로 만든 솥으로 측면에 손잡이가 달려있고, 짐승다리 형태의 다리 3개가 있다. 이러한 자루솥(鐎斗 초두)은 술이나 음식 약 등을 끓이거나 데우는데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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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북분에서 발견된 보물 623호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는 4~5세기 신라시대 유물로 너비 2.1cm, 지름 7.2cm 크기이다.

이러한 금제 및 은제 장신구는 신라 지배층 무덤에서 예외없이 발견되는데, 그만큼 팔찌와 귀걸이, 과대 등은 신라 지배층의 장례풍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황남대총 북분 금팔찌'는 2개의 금판을 이용해 만들어졌는데, 바깥쪽 금판에는 금실과 금알갱이로 문양을 만들고, 문양에는 보석류를 박아넣어 장식하고, 안쪽에 또다른 금판을 덧대어 안쪽에서 밖으로 둥굴게 말아 마무리를 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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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343-7호 연꽃 구름무늬 벽돌/국립중앙박물관]


보물 343-7호 '연꽃 구름무늬 벽돌'은 가로 29cm, 세로 29cm 두께 4cm의 크기이다.

7세기 백제시대 제작된 것으로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무늬벽돌이다.

벽돌 중앙에 원형으로 장식이 되어 있는데, 작은 원 안에 연꽃무늬를 표현했고, 연꽃 주변에 소용돌이 형태의 구름무늬를 표현했으며, 벽돌의 네 모서리 부분에도 연꽃무늬를 두어 화려하면서도 전체적으로 균형잡힌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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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1411호, 임신서기석/국립중앙박물관]



보물 1411호 '임신서기석'은 최대 높이 32cm, 최대 너비 12.3cm의 크기로 1934년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금장리 석장사터 부근에서 발견되었으며,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석의 제작연대는 비석의 비문에 새겨진 임신년(壬申年)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아 정확한 연대를 알 수 없으나 아마도 화랑도가 번창하던 552년 또는 612년 경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첫머리에 임신년(壬申年)이라는 간지(干支, 십간과 십이지를 조합한 연대표)가 있고, 별도의 구획선 없이 5행 74자를 새겼는데, 화랑도의 기본정신에 따른 충도의 실천으로 신라에 충성을 서약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으므로 '임신서기석(壬申誓記石)'이라고 명명했다.


비문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 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倫得誓三年.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해 기록하며, 하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집지하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약 이 이서약을 어기면 하늘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약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크게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모름지기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즉 시, 상서, 예기, 전을 차례로 습득하기를 맹세하되 3년으로써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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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240호 백자 청화 투각 모란 넝쿨 무늬 항아리/국립중앙박물관]


보물 240호 '백자 청화 투각 모란 넝쿨 무늬 항아리'는 18세기 조선시대 작품으로 높이 26.4cm 크기의 청화백자이다.

전체적으로 우수한 품질과 유색으로 보아 왕실에서 특별히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며, 조선왕조 도자기는 보통 단순하고 간결한 것이 주요 특징인 것에 비해 '백자 청화 투각 모란 넝쿨 무늬 항아리'는 복잡한 투조 문양으로 장식한 희귀한 예로 볼 수 있다.

원통형의 내호와 모란꽃을 투각한 장식외호의 이중으로 구성된 것이 특이하다. 어깨 부분에 넝쿨 무늬 대를, 몸체 아래에는 한줄의 양각선과 여의두 무늬를 두르고 그 사이 전면을 모란 무늬로 채웠는데, 담청을 머금은 맑고 깨끗한 백자유약이 얇게 칠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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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24.8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8.4cm, 입지름 10.5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9.6cm, 입지름 10.4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높이 13cm, 입지름 10.1cm/국립중앙박물관]



국보 193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은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되었다.

유리병과 잔은 주변의 빛을 빨아들일 듯한 신비로운 연녹색으로 그리스의 오이노코에(Oinochoe)라고 하는 유리병과 형태가 거의 유사한데, 시리아 등지의 지중해 동부 주변에서 주로 만들어졌으며 비단길 및 바닷길을 통해 신라로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병의 주둥이 모양은 나팔잎 모양으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주둥이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봉수병 鳳首甁'이라고 불리게 됐다.

병의 주둥이와 목에 파란색 띠를 붙인 것은 당시에 유행했던 장식기법이며, 손잡이에 감긴 금실은 부러진 손잡이를 수리하기 위한 용도로 추정된다.

이와같은 유리 그릇들은 금관이나 금 허리띠와 같이 정치, 사회적 신분이 높은 왕릉급 대형 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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